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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녕대군은 진정 패륜아였을까?

참그놈 2020. 6. 18. 18:31

양녕대군을 아시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세종대왕의 큰형님이십니다. 그러나 어느 때부터 뭐가 잘못되었는지 큰아버지 정종의 애첩을 범하고 곽모 라는 재상의 애첩을 범한 것도 모자라 나중에는 아들의 처, 즉 며느리마저 범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패륜을 저지릅니다. 그러나 진정 양녕대군이 패륜아여서 그런 행위들을 했을까요?

 

태종임금님이 안정된 왕권을 아들에게 물려주려고 많은 신하들을 죽였습니다. 그 중에는 왕자들의 외숙부들도 포함이 되었습니다. 민무구, 민무질 등등. 만약이지만 양녕대군이 보위를 이어받았다면, 태종 임금님의 지시를 받았다고 하지만 여러 공신들 특히 왕자들의 외숙들을 죽이는데 앞장선 신하들 및 그 식솔들은 무사할 수 있었을까요? 어쩌면 양녕대군은 당시 돌아가는 판세를 보고 스스로 왕권을 포기했을 수도 있어 보입니다. 태종 임금님 때 그렇게 피를 흘렸음에도 자신이 왕위를 이으면 또 다시 피를 뿌려야 했을테니까.

 

세종대왕이 후세에는 훌륭한 성군으로 알려졌지만 세종대왕 당시에 모든 신하들이 세종대왕을 무조건 지지했을까요? 천문이라는 영화만 봐도 그렇지 않습니다. 드라마 속 내용이지만, 한글 창제 과정에서도 최만리 같은 신하들은 한글 창제를 극구 반대합니다. 태종 임금님이 워낙 많이 죽이는 바람에 왕권이 위태롭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안정적이지만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왕이 되지 못하는 또는 못한 왕자들의 삶에 대해서 자세히는 모르지만 그런 왕자들은 왕재를 보이면 위험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보보경심이라는 중국 드라마를 봤는데 14명의 황자들이 하나씩 하나씩 거의 다 죽더군요. 충녕대군이 보위를 이어 후세에 세종대왕이라는 칭호를 받고 있지만 양녕대군이 기행을 일삼기 전에는 지지하는 사람들(세력가들)이 많았던 것으로 압니다. 즉, 천문을 연구하고 한글을 창제하는 등의 활동을 하는 임금은 중국에 대한 반역자이므로 왕위를 되돌려 받아야 한다며 누군가 양녕대군의 옆구리를 계속 찔러댔을 수도 있습니다. 역사드라마에서 양녕대군이 큰아버지 정종의 애첩을 범하고 재상의 애첩을 범한 것까지는 극중에서 재연이 되었으므로 알 수 있었지만 며느리까지 범했다는 것은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며느리까지 범하는 기행을 해야했던 것은 어쩌면 그 시기까지 세종대왕의 정치를 반대하는 세력들이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사대의 예에 어긋나니까요.

 

유튜브에 올라오는 "천문"이라는 영화의 리뷰를 보니까 왕과 신하의 브로맨스다. 뭐 그렇게 설명을 하던데, 불과 100여년 전, 즉 고종 황제가 대한제국을 선포하기 전까지만 해도 하늘을 올려다 보고 우리나라의 시간이 중국과 다르다거나 하는 말을 하면 그날로 죽습니다. 어찌어찌 도망을 다닌다고 해도 산 목숨이 아니지요. 왜냐하면 천문을 연구하는 것은 중국(하늘 또는 천자天子)에 대한 반역이거든요.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주변의 나라들 중에서 천문을 독자적으로 관측할 수 있는 나라는 없었습니다. 오직 당시 아시아에서는 중국만이 천문을 관측하고 달력을 제작할 수 있었습니다.

 

요즘이야 누가 달력에 대해서 짜드리 신경을 쓰겠습니까만은 조선시대에는 우리나라 달력이 없었어요. 고려시대는 모르겠네요. 고려는 그래도 칭제건원하던 자주국이었으므로 어쩌면 고려에서 만든 달력은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어쨌거나 중국 황제가 달력을 만들어서 보내주면 "황은이 망극하옵나이다" 또는 "황은이 하해와 같사옵나이다" 이러면서 큰절하고 받아다가 그걸 종묘에 두나? 뭐 어쨌든 금덩이 보다 더 귀하게 모셔두고 중국이 보내온 달력의 날짜에 맞추어 나랏일을 진행하였지요. 영화 천문에서 세종대왕 역을 맡은 한석규씨가 방 안에서 뚫어진 문틈으로 하늘을 보는 장면을 보고는 그냥 눈물이...

 

양녕대군은 나중에 단종 임금님의 폐위에도 관여합니다. 단종 임금님이 폐위되고 세조가 등극하는 과정에서 김종서를 포함한 여러 대신들을 죽이지요. 태종 임금님이 왕위에 오른 후 여러 공신들을 죽인 것처럼 왕권이 권신들의 입김에 흔들리지 않도록 하는데 앞장을 섰다고 해야할까요?

 

역사를 잘 모르지만, 그런 전후사정을 보니 양녕대군이 진정 패륜아였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만약이지만 진정 나라의 안정, 왕권의 안정을 위해서 그렇게 한 것이라면 참으로 독하고 모진 분이지요. 아들의 처까지 범해가면서 동생 충녕대군의 보위를 지키려 했다는 말이 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