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일의 한국통사를 한 번 다 읽기는 했는데 읽고 나니 "이 책 이덕일씨가 쓴 거 맞아?" 싶은 생각이 드네요.
표지에 다시 찾는 7000년 우리 역사 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서문이나 본문에는 기원전 거의 1만년을 말하고 있습니다. 제목과 내용의 년대가 맞지 않는 겁니다. 물론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 시대 이전에는 문헌으로 기록된 것이 불분명하다는 문제가 있기는 있습니다. 책의 제일 후반부에 고구려 백제 신라 등 역대 왕조의 계보를 기록했는데 단군에 대한 계보는 없습니다. 47세 단군은 아니더라도 7천년이라고 하려면 환웅천왕과 단군왕검의 신시개천 년도나 단군조선 개국 년도는 표시하는 것이 맞지 않나요? 계보도는 환웅천왕의 신시개천으로 해도 6000년이 아직 안되는 것으로 압니다. 제목에는 7000년이라고 쓰고 역대 왕조계보도에는 환웅천왕이나 단군왕검은 없고 내용에는 기원전 거의 1만년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평소 이덕일 박사가 김태식 교수나 기타 가야사 관련 교수들의 저서를 언급하면서 제목에는 가야사 700년 등으로 쓰고는 실제 내용은 700년이 되지 않는다는 말씀을 유튜브 등지에 업로드 되어 있는 영상에서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이덕일의 한국통사도 그렇게 치면 그닥 다를 것이 없어 보이네요.
뭐 사소한 것을 가지고 이덕일 박사를 비판하거나 비난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평소 이덕일 역사TV 등을 유튜브에서 보지만 저 자신이 역사 관련 사적을 진지하게 읽거나 하면서 살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한 역사지식은 없지만 그렇다고 어느 누군가를 무고건 믿는다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몇 자 끄적인 것입니다. 하긴 국사교과서 만들면서 일본학자들 설을 따라 만드는 나라이니...
이덕일의 한국통사 326쪽에 세종대왕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 세종 이도는 태조 6년(1397) 4월 한양 준수방(현 통의동-옥인동)에서 왕실의 일원으로 태어났다. 이는 세종에게 신분제를 하늘의 법칙으로 여기게 하는 그릇된 시각을 갖게 만들었다. (중간 생략) 사대부들의 이익과 일반 백성들의 이익이 충돌할 때 부왕 태종과 달리 사대부의 손을 들어주었다. 국가의 이익이 일반 백성들의 이익과 일치할 때 태종은 과감하게 백성들의 편에 섰지만 세종은 달랐다"
라고 되어 있는데, 책의 겉표지 조선왕조 실록을 소개하는 글에서는 다르게 써져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는 이덕일씨가 쓴 조선왕조 실록 광고의 일부이고 이덕일의 한국통사 본문 내용은 아니지만 해당 소개글에
"즉위 초기 세종은 여전히 양녕을 지지하는 사대부들을 자기편으로 만들기 위해 사대부들을 위한 정책을 가장 앞자리에 놓았다."
라고 적혀 있습니다. 상반된 관점인 것은 아닐까요? 뭐 어쨌든 책을 읽다가 조금 석연치 않다고 생각되는 몇 가지와 제가 발견한 오탈자를 여기다 적으려 합니다.
p20. 성장한 외형에 걸맞은 역사를 가질 때가 되었다.
서문에 나오는 말인데 외형이 달라지면 역사도 계속 수정되어야 한다는 말일까요? 남한과 북한이 통일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역사는 아직 정확하게 기술되었다고 할 수 없기는 합니다만 외형적 성장에 따라 역사도 달라져야 한다는 것은 역사 수정주의적 관점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p24. 잉여 생산물을 소유한 자가 지배계급이 되었다.
계급의 발생 원인이 잉여 생산물 때문이다?. 이건 자본주의적 발상인지 아니면 마르크스주의적 발상인지 모르겠네요. 자본가는 계급이 아니니까요. 잘은 모르지만 자본가와 노동자를 계급 투쟁의 관계로 본 것은 마르크스였거든요.
p38. p39. 동신취?
38쪽 지도에는 "동신취"라고 적혀 있는데 39쪽 "요하문명의 내용"을 설명하는 첫 단락에서는 "동산취"라고 되어 있네요.
p57. 대신 성이(成已).
위만 조선의 멸망을 다룬 다른 책에서는 대신 성기(成己)라고 되어 있습니다.
p67. 위만 조선이 붕괴한 서기 2세기 무렵부터 열국시대가 시작된다.
이 문장은 위만 조선이 고조선의 종통을 이은 것으로 오해할 소지가 있어 보이네요. 이덕일씨가 예전에 쓴 "고조선은 대륙의 지배자였다" 라는 책에 부록으로 제공되는 지도를 보면 위만 조선이 위치한 지역은 고조선의 서쪽 변방에 불과합니다. 고조선을 여러 거수국을 거느린 제국으로 설명하면서 중심인 고조선이 서쪽 변방에 위치했을까요? 윤내현 교수가 쓰신 "고조선 연구"에는 단군조선만을 고조선으로 여긴다고 되어 있고 위만 조선은 고조선의 종통이 아니라 서쪽 변방을 차지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고대사 사료가 거의 없다시피 하니까 어떤 주장이 맞는지 아직 알 수 없지만 오해의 소지가 있는 서술이라고 생각합니다.
p326. 세종은 신분제를 하늘의 법칙으로 여기에 되는 VS 겉표지 양녕 대군 지지세력을 달래기 위해
포스트 앞 부분에 설명했습니다.
p398. p418. 당쟁을 구분한 표의 내용이 서로 다르네요. 정철은 동인입니까? 아니면 서인입니까?
p158. LL. 17 삭녕장군 한자가 바뀌었네요.
p158. LL. 25 관중장군의 한자가 관군장군으로 되어 있습니다.
p230. LL. 7 씨앗일 -> 씨앗이 라고 써야
p313. LL. 25 한씨 소생의 네 아들 -> 태종 이방원은 한씨 소생의 다섯 번째 아들 아닌가요? 네 아들?
p341. LL. 5 모든 소리를 적을 수 있는 "언어"가 아니라 "문자"라고 적어야 하지 않을까요?
p518. LL. 11 이루어지면 -> 이루어지며 로 써야 맞는 것 같네요.
이상은 제가 발견한 오탈자들(더 있을 수도 있습니다)과 뭔가 석연치 않게 느껴지는 몇 가지를 적었습니다. 위에 적은 것들 외에도 책을 읽다보면 "황제국"이라는 말이 종종 나옵니다. 왜 황제국을 강조하는 지는 모르겠습니다. "황제" 라는 말은 왕(王)이나 공(公) 등과 같이 단지 임금이라는 뜻일 뿐이거든요. 다만 차이는 황제는 보통 왕중왕이란 뜻이고 자주국이고 독립국이라는 뜻입니다. 황제국이라는 말이 의미가 있으려면 "자주국"이나 "독립국"이라는 뜻이 강조되어야 하리라고 봅니다. 즉 하늘의 별들을 살펴서 달력을 제작할 수 있고 자신을 칭할 때 과인(寡人)이나 고(孤) 등으로 말하지 말고 짐(朕)이라고 한다거나 하는 차이들이 있기는 하지만요. 황제국이라는 말을 되풀이 하기보다 차이가 무엇이지 부연설명이 있었으면 좋겠네요. 달력을 우습게 보면 안됩니다. 불과 100여년 전만 해도 달력을 만들려고 들면 최소한 조선에서는 역모로 3족이 몰살을 당하고 중국이라면 9족이 몰살하게 되는 대역죄였으니까요. 영화 천문(天問)이 알고 보면 참 서러운 영화랍니다.
본문 제일 마지막 단락에 독립운동에 대해 말하면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이야기는 없습니다. 통사이므로 자세히 기술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한 두 문장만 추가하면 2020년 현재와 연결고리가 될 것 같은데, "건국절" 논쟁 때문인지 빠진 듯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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