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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 읽기의 재미? - 삼국연의 1회 제목 斬黃巾英雄首立功

참그놈 2020. 9. 24. 12:28

요즘 나오는 한문 관련 책들은 띄어쓰기와 구둣점 등이 표시되어 나오는 경우가 많지만 원래의 한문은 띄어쓰기도 구두점도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문에만 쓰이는 구두점이나 표점 등이 있다고도 하지만 보통 옛날 한문책을 찍어놓은 사진 등을 보면 글자들만 가득합니다. 

 

삼국연의 1회의 제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宴桃園豪傑三結義 (도원에서 호걸 셋이 결의를 맺고 잔치를 열다)

斬黃巾英雄首立功 (황건적을 참-목을 벰- 하고 영웅이 처음으로 공을 세우다)

 

그런데 제목의 두 번째 斬黃巾英雄首立功을 위와 같이 해석하려면 斬黃巾, 英雄首立功과 같이 끊어 읽으면 되는데,  斬黃巾英雄, 首立功과 같이 끊어 읽는 부분을 바꾸면 "황건영웅을 참하고, 처음 공을 세우다"가 됩니다.

 

아시다시피 삼국연의에서 황건적은 도적으로 나옵니다. 그런데 제목의 글을 어떻게 끊어 읽느냐에 따라 황건적이 도적이 아니라, 황건적 역시 영웅일 수 있다는 묘한 해석이 나옵니다. 그걸 발견하고 이건 작가나 편집자가 의도적으로 이렇게 제목을 붙인 것일까? 하는 생각도 해 봤습니다. 그리고 영웅이나 호걸이 도무지 뭐냐? 하는 생각도 해 봤습니다. 영웅이나 호걸이라는 말을 자주 듣지만 정작 어떤 사람을 영웅이나 호걸이라고 하는지 정확한 정의를 뚜렷이 알지 못하고 있는 저 자신을 발견하게 된 것이죠. 그냥 "뛰어난 사람"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영웅이나 호걸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검색을 몇 시간 동안 해 봤는데 역시나 아직 어떤 사람을 영웅이라고 하고 또 호걸이라고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어쨌거나 삼국연의를 보면 황건적이나 유비 관우 장비 제갈량 할 것 없이 모두 죽고, 정작 나라는 사마의가 진(晉)을 건국하는 것으로 마무리 됩니다. 황건적이며 유관장 결의 3형제, 조조, 손권 등등 누구나 할 것 없이 장강물 흘러가듯 사라졌습니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고 하지만, 영웅이나 호걸은 난세와 함께 사라지는 존재이기도 하죠. 누구는 도적이고 누구는 영웅이며 또 누구는 호걸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