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고루한지라 위당 정인보 선생의 조선사 연구가 발간된 것을 알게 된 것이 한 달쯤 되었나 그렇습니다. 발간된 것을 알고서도 책을 구입해야 할지 구입하지 말아야 할지 고민도 했습니다. 책이 너무 두껍고, 비싸기도 한데다가 이해를 할 수 있을지 자신도 없고... 또, 솔직히 위당 정인보 선생이 어떤 분이었는지 알지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단재 신채호 선생에 대한 일화는 고등학교때 국사 수업시간에도 들었지만, 그 이후에도 살면서 가끔 듣는 경우는 있었어도 위당 정인보 선생에 대해서는 이름은 들어본 기억이 있습니다만 어떤 활동을 하셨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위당 정인보 그 양반을 내가 알아야 돼? 라는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위당 정인보 선생에 대해서 알아보려는 노력 역시 한 적이 없다는 뜻입니다. 차라리 위당 정인보 그 양반을 내가 알아야 돼? 라는 생각을 했다면, 오히려 그것은 위당 정인보 선생을 안다는 전제가 필요합니다. 고루하고 무지한 삶이었는지라 그로 인한 무관심이었지요. 미움이나 증오보다 더 치명적이라는 무관심... 정확히는 무지와 무식이지만.
어쨌거나 결국 위당 정인보 선생의 "조선사 연구"를 구입했고 서문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서문을 읽다가 알게 된 것인데 조선사 연구는 한글이 하나도 없는 순 한문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혹시 조선사 연구를 펴낸 우리역사 연구재단에서 조선사 연구 원문을 볼 수 있을까? 해서 들렀는데 그런 것은 없었습니다. 몹시 실망했습니다. 그렇다고, 조선사 연구를 역주한 문성재 라는 분을 비판하거나 비난하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역사 연구재단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저는 문성재 박사에 대해서 잘 모르는데, 낙랑군 호구 관련 기록에서 별(別)자가 중국에서 쓰던 한자 쓰임(어법)이 아니라는 것을 밝힌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만한 역주본을 내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을 하셨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한문본 원문이 공개되지 않은 것이나 발행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심히 유감스럽습니다.
조선사 연구 서문을 읽어 보면, 1935년경부터 동아일보에 280여회에 걸쳐서 연재했지만 일제가 동아일보를 강제 정간시켜 연재가 이어지지 못했고, 나중에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는 설명이 있습니다. 그런데, 처음 출간된 조선사 연구 단행본에는 오자가 수두룩하고 뭐 그렇다는군요. 그렇게 수 십여년이 지나고 1980년대에 연세대에서 다시 한문본을 출간했답니다. 연세대학교가 어딥니까? 대한민국에서 똑똑한 걸로는 손가락으로 꼽아주는 사람들이 가는 곳이에요. 그럼에도 처음 출간된 책과 똑같이 오자와 누락된 부분이 전혀 고쳐지지 않은 채 오히려 문제점을 덧붙여 출판이 되었다고 합니다. 헛똑똑이들이었을까요? 아니면 한문을 그때도 잘 못했던 것일까요? 뭐 잘은 모르겠습니다. 어쨌거나 문성재 박사가 그렇게 잘못된 글자들을 바로잡아 가면서 이런 역주본을 내얼을텐데 정작 원본은 출판도 공개도 하지 않은 것은 이해가 어렵네요.
저 한문 못합니다. 그럼에도 조선열전이나 기타 역사 관련 원전을 한문 원문으로 읽어보겠답시고 삼국연의도 박기봉님이 번역한 것을 최근에 구입해서 읽고 그랬습니다. 이는 단지 저 자신의 노력에 불과하지만, 우리나라에서 한자 교육의 일환으로 한자 자격증 제도를 도입한 지 20년은 되는 것 같은데, 그리고 사서나 오경 등에 관해 검색을 하면 알게 모르게 한문 고수분들이 많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한자를 익히게 하려는 것이 역사나 전통, 고전과의 연결고리를 위한 것이라면 당연히 조선사 연구 한문본도 간행이 되었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한글! 좋지요.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창제하고 반포하지 않으셨다면, 저를 포함해서 현재 대한민국에 읽고 쓸 수 있는 사람들이 몇 명이나 되었을까요? 세종대왕을 넘어 진정 하느님의 축복이라고까지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누천년 우리의 기록 대부분이 한문에 의존하였으므로 우리의 역사나 전통을 자세히 알기 위해 한자나 한문을 배우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 바램에 상응하는 수준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번역을 무시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번역은 번역이지요. 본래 한글로 기록되지 않은 것을 번역본만 덜렁 내 놓는 것은 무책임한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하긴, 한문본을 책으로 발행한다고 해서 몇 부나 팔리겠습니까만.
원문 없는 사기열전 번역본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터넷에서 사기 조선열전 원문을 구해 읽으려고 자전을 뒤지고 하던 중에 단지 의자에서 일어나는 것이 귀찮아 인터넷에서 조선열전 해석을 검색했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사기 조선열전의 번역보다 제가 보기에는 훨씬 이해가 쉽고 훌륭했습니다. (해당 번역에 대한 예를 여기에 표시할 수도 있지만 생략하겠습니다.)
저는 한자교육을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한자교육 말고 한문교육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입장인데, 한자 단어들 상당부분이 일본에서 제작되었고 유입되었다는 것 때문이 아닙니다. 가령, 경제(經濟)라는 단어를 예로 들면, 꼭 한자로 經濟로 표시해야 하나요? Economics라고 표시하면 안되나요? 이미 영어 교육이 수학과 더불어 학생들 교육 전반을 차지하고 있지 않나요? 요즘은 아닌가ㅡㅡ? 저 고등학교 다닐 때는 영수영수영수영수 오로지 영수(英數)... 그랬지요. 경제를 한자로 표기하지 않은채 사람들에게 경제가 뭐냐고 한글로 한 번 써보라고 하는 경우, 그리고 그 글을 읽어서 경제가 무엇인지 이해가 불가능한 상황이 되나요? 영어 학습하면서 어휘(Vocabulrary)만 배우나요? 그리고 몇 년 지나면 다 잊어버리고? 문법이나 어휘 등 기본적인 것을 배운 후 어휘력 확장을 위해서 배우는 것 아닌가요? 한자 교육이 한문 읽기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한자 교육은 아이들의 노력과 주의력과 집중력을 소모시키는 아주 몹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자교육이 제대로 된 교육이 되기 위해서는 한자 급수에 병행하는 한문 원전 학습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나중에 3급 이상이 되면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조선사 연구 등도 한문 원문으로 함께 읽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생각있는 부모들이라면 단지 한자 자격증 취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문 고전을 읽히고 있을 것이라 생각은 합니다.
역사를 전공하지도 않았고 역사 관련 서적을 꾸준히 읽은 것도 아니면서 이런 불평을 토로하는 것이 사실은 어불성설일 수도 있습니다. 더구나 현재의 한자 자격증 시험 등과 관련한 추세도 사실은 모릅니다. 그러나, 혹시나 이 포스트를 우리역사 연구재단 관계자가 보게 되는 경우가 있다면 한 번 고려해 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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