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상록

문화재 번호지정체계 내부 관리용으로만 쓴다

참그놈 2021. 2. 19. 18:35

우리나라 국보 1호는 남대문(숭례문)이었습니다. 1962년도에 국내 전문가들이 그렇게 정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왜 남대문이 우리의 국보 1호인지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남대문 외에 국보가 300여개? 정도 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사실 저는 남대문 외의 다른 국보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전혀 모릅니다. 국보 몇호다 이러면서 사진과 설명을 몇몇 본 기억이 있기는 하지만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네요. 어쨌거나 국보 하면 남대문 밖에 연상되지 않았기 때문인지 남대문이 국보 1호라는 것은 더더욱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여러분들은 국보들을 많이 알고 계신가요?

 

이 나라에 태어나서 50년을 넘게 살았는데 남대문이 국보 1호로 정해진 근거도 전혀 보거나 들은 적이 없습니다. 단지 서울을 다니기 위한 남쪽 출입문에 불과할 뿐인데 국보로 정해졌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조선시대에 한강 이북에 살던 사람들도 서울을 가려면 동서로 빙 둘러 북대문, 동대문, 서대문을 다 지나치고 남대문 쪽으로 이동한 다음 남대문을 통해 서울에 들어갔을까요? 그런 뻘짓을 뭣하러 하겠어요. 서울쪽에 북쪽 지방 또는 동쪽 지방으로 통하는 문이 있었을 것입니다.

 

한편, 남대문의 별칭이 숭례문(崇禮門)이라는 것 때문에 어쩌면 국보 1호로 정해졌을 수는 있다는 생각을 하기는 합니다. 예를 숭상한다는 뜻인데, 조선왕조는 유학의 나라였고 주자학의 나라였기 때문이지요. 주자학이던 양명학이던 유학의 근간이 예(禮)인데, 왕은 남면하고 백성을 포함한 신하는 북면하므로, 왕도정치의 이상에 따라서 숭례문(남대문)을 국보 1호로 정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언젠가 하기는 했습니다.

 

반면, 임진왜란때 가토 기요마사라는 일본군 장수가 숭례문을 통해 서울로 진입했기 때문이 대일항쟁기에 남대문을 남겨놓았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숭례문 주변의 성벽도 대일항쟁기에 헐었다고 하더군요. 즉, 일제의 잔재로 남대문이 국보1호가 되었다는 논리입니다.

 

숭례문이 국보 1호로 지정된 근거에 대해서 왕도정치 운운한 것은 저 자신의 뇌피셜이고 가토 기요마사가 지나간 문이라서 남대문이 국보 1호가 되었다는 설은 인터넷상에 유포되어 있는 내용입니다. 즉, 남대문이 국보 1호로 지정된 공식적인 근거는 한 번도 들어본 적도 읽어본 적도 없다는 것입니다.

 

문화재청에서는 문화재에 서열이 있는 것이 아니다. 즉, 국보 1호, 2호 등의 번호는 관리상의 편의를 위해 붙인 번호에 지나지 않는다고 설명하기는 합니다. 그러나, 국보 1호만 기억하는 저의 입장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중요한 보물이라는 인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라에서 제일 중요한 보물인데 왜 남대문이 제일 중요한 보물인지 이해할 수 없는 모순 속에 살고 있었던 셈이지요. 어쨌거나, 이젠 국보 몇 호 하는 그런 체계를 사용하지 않는답니다.

 

아래 영상에 남대문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www.youtube.com/watch?v=dpRivEaV_IA

 

문화재 번호지정체계를 내부 관리용으로만 쓴다고 하지만 그 관리번호에는 변동이 없을 거라는 말이 되긴 합니다. 표면적으로는 국보 몇호다 하는 표현이 없어지겠지만 여전히 문화재 관리 대장에 국보 1호는 남대문(숭례문)일테지요? 혹시나 국민 투표로 국보의 순서를 지정할 수 있다면, 저는 국보 1호로 한글을 택하겠습니다.

 

저는 우리나라에 얼마나 많은 문화재가 남아 있는지 모릅니다. 그 많은 문화재에 대해서 역사적 연원 뭐 그런 것도 모릅니다. 다만, 저 혼자서 국보라고 생각하는 몇 가지가 있는데 그건 다음과 같습니다.

 

한글(훈민정음)

활(국궁)

온돌

금속활자

거북선

다뉴세문경

청동검

 

등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국보 1호부터 5호까지 혹시 번호를 붙인다면 위와 같은 순서로 불이겠습니다. 거북선은 아직까지 원형을 복원하지 못했다고 하지요? 그래도 거북선. ^^;; 뭐 기술적으로 따지면, 다뉴세문경은 요즘 기술로도 복원이 힘들다고 합니다. 그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