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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서기 읽는 법 3 : 일본 고대에는 왕이 없는 기간이 많다 (이덕일 박사)

참그놈 2021. 9. 10. 21:01

유튜브에 일본서기 읽는 법 3이라는 제목으로 이덕일 소장이 업로드 한 영상입니다. 영상을 보시면 중국 정사 삼국지나 삼국사기 등의 기년을 비교하며 설명을 하시는데, 영상 5분 쯤에 일본 고대에는 왕이 없는 시기가 많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왕조국가에 왕이 없는 해가 많다는 것이 이해가 힘드네요. 보통 왕조국가에서 왕이 죽으면 수 일 내에 다음 왕이 즉위합니다. 다만, 년도 표시를 할 때는 삼국사기의 경우 즉위한 그 해에 원년(元年)이라고 하거나, 중국의 경우 그 다음 해 1월 1일부터를 원년(元年)이라고 표기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XFQUr96eEdI&list=TLPQMTAwOTIwMjFCiw6WxahBRg&index=2 

 

일본서기는 년대(기년)가 맞지 않는 희안한 역사서라고 하더니 왕이 없는 기간이 군데군데 있다는 것을 보니 역사에 문외한인 제가 생각해도 희안한 역사서 같네요. 고대로 올라갈수록 문치보다는 무사적인 성격이 더욱 강하다는 것이 상식으로 알고 있습니다. 더구나 일본은 지금도 사무라이 정신을 말할 정도로 무사적 전통이 강한 나라입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누가 왕이 되느냐 또는 누구를 왕으로 세우느냐를 가지고 왕자들이나 영주들 간에 왕위쟁탈전 같은 것이라도 있어야 하는 것이 정상이지 않을까요?

 

왕은 최고 의사결정권자일 뿐만 아니라 다양한 상징성 역시 가지고 있습니다. 하늘 천(天) 자의 뜻에 임금이나 아버지의 뜻도 있는데 해(日)에도 임금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해가 뜨지 않는 날이 있습니까? 왕조시대의 임금은 최고 의사결정권자이기 이전에 하늘이고 태양이었는데, 임금이 없다는 것은 해가 뜨지 않았다는 말이고 하늘이 없어졌다는 것과 같습니다. 역사를 전문으로 하시는 이덕일 소장 같은 분은 중국 정사 삼국지나 우리나라 삼국사기 등과 년대를 비교하여 설명을 하시지만 역사에 문외한인 일개 서민이 봤을 때는 왕이 없는 년도가 군데군데 끼어있다는 것만 가지고도 역사서가 문제가 아니라 고대 일본이 왕조국가가 아니었다는 것으로 이해가 되네요.

 

우리 역사에는 고려시대에 무신들이 문신들의 차별에 반발하여 정권을 장악한 기간이 있었습니다. 정중부, 이세민, 이의방, 최충헌, 최우 등을 아시지요? 무인시대(武人時代)라는 드라마가 만들어질만큼 우리의 역사에서는 문신들이 우위에 있었다는 뜻입니다. 조선시대에도 무관은 관직에서 최대 정3품까지(?)만 승진할 수 있었습니다. 문신들이 더욱 존중받던 나라에서도 왕이 죽으면 곧바로 다음 왕이 즉위를 하는데 무사적 전통이 강한 일본에서 군데군데 왕이 없었다니 한마디로 일본은 왕조국가는 고사하고 국가형태가 아니었다는 말과 무엇이 다를까요. 그도 아니면 왕조 국가에서 왕이 없어도 된다는 것은 영상에서 설명하는 것처럼 어떤 나라의 분국이거나 해야 가능한 일로 생각합니다. 설령 분국이라고 해도 최고의사결정권자인 왕이 한 1년이나 2년쯤 없어도 그 사회에 아무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만큼 사회 규모가 크지 않았다는 반증이기도 할 것입니다.

 

우리는 중국의 역사에 춘추시대가 있었다는 것을 압니다. 주나라를 종주국으로 숱한 제후국들이 있었지요. 대표적으로 노나라, 정나라, 진나라, 또 진나라, 또 진나라, 제나라, 초나라, 오나라, 연나라 등등이 있었습니다. 춘추좌씨전을 보시면 춘추시대에는 제후국의 왕(공후백자남)이 죽어도 곧바로 즉위합니다. 단, 중국의 역사에서는 제후국의 왕이 죽으면 새로 즉위한 제후국의 임금은 다음 해를 원년(元年 : 정치의 시작)으로 삼는다는 규칙이 있어서 그렇게 기록을 하는 것이지 일본서기처럼 한 1년간 또는 2년간 설령 제후국이라도 왕위를 비우지 않은 것을 봅니다. 별주부전에는 토끼가 간을 집에 두고 왔다면서 거북이를 속이는 대목이 있는데, 왕조국가에 왕이 없다는 말은 사람이 머리를 떼어서 따로 보관하고 거리를 활보한다는 말과 같이 생각되네요.

 

중국 역사 드라마를 보던지 우리나라 사극을 보던지 또는 소설을 보던지 정변 가능성 등의 문제로 다음 왕이 누가 되느냐는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문제가 됩니다. 악마판사 라는 드라마가 있던데 저는 TV가 없어서 해당 드라마 전체를 보지는 못했지만 유튜브에 업로드 되어 있는 자투리 영상들은 몇 개 보았습니다. 차기 대권 후보자와 후원기업들과의 관계가 일부에서 묘사가 되지요? 우리나라는 최고통치권자가의 임기가 5년 단임제인데도 정치와 경제와의 관계가 밀접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한 번 왕이 되면 죽을 때까지 왕노릇을 하는 왕조시대에 왕이 없다는 것은 정치도 경제도 없거나 그 발전정도가 미약했다는 것으로 이해가 됩니다. 고대 일본이 고대국가로조차 성장하지 못했다는 말이 아닐까요?

 

일본서기라는 책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왕이 없는 기간이, 군데군데 한 두 번도 아니고 적지 않게 끼어 있다는 것은, 고대 일본은 고대국가로 성장한 사회가 아니었다고 판단하게 하네요. 가야가 서기 562년엔가 망하는데 가야는 중앙집권적인 통일국가가 아니라 연방형태였습니다. 삼한삼국 일본열도 분국설이라는 것이 있다고 하는데, 김수로왕과 허황후가 만나는 고사를 보면 가야가 건국되던 AD 42년 경에도 항해술이 상당히 발전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고구려나 가야, 백제나 신라 등이 일본 열도로 건너가서 여러 분국을 세우지 않았나 싶네요. 그러다가 백제가 당나라에게 멸망하여 백제 유민들이 일본 열도로 이주하게 되면서, 그 이전까지 여러 분국들이 난립하던 일본 열도에 비로소 통합된 정치체가 등장하게 된 것이 아닌가 추측이 됩니다. 그러면서 일본서기나 고사기라는 책이 만들어 진 것 같고요. 두 책이 비슷한 시기에 나왔다는데도 두 책의 년대가 각각 다르다고 합니다. 어쩌면 일본서기는 백제계가, 고사기는 가야계나 신라계가 저술한 그런 것은 아닐까요? 백제가 AD 660년에 망한 것으로 아는데 일본 열도로 건너간 백제 유민과 일본에 진즉 진출하여 자리를 잡은 토착 백제계 세력이 합동하여 난립하던 가야 소국 세력들을 통합하는 과정이 있지 않았나 싶네요.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일본서기와 고사기 두 책의 년대가 서로 다른 것은 비록 백제계가 우위를 점하기는 했으나 백제계와 가야계 또는 신라계 간의 알력은 지속되고 있던 것을 반영하는 것이 아닌가? 뭐 그런 생각도 듭니다.

 

 

역사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습니다. 영상 내용을 제외하면 그냥 일개 서민의 뇌피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