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에 관한 이야기이므로 고구려를 앞에 두는 것이 상식이지만 내용에 따라 고구려를 뒤에 두었습니다.
우리 한민족(韓民族)의 역사에는 중국의 수나라와 당나라가 고구려와 싸운 역사가 있습니다. 보통 고수전쟁, 고당전쟁이라고 부릅니다. 세계의 역사가 서구를 중심으로 기록되어 있어서인지 고수전쟁이나 고당전쟁이 얼마나 큰 전쟁이었는지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중국 한(漢)나라 때의 인구가 5천만 또는 6천만 정도라고 하는데, 위촉오 삼국시대를 거치며 적지 않은 인구감소가 생겼을 것입니다. 또 사마씨의 진(晉)나라가 성립하였지만 진나라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아 오호십육국이라는 난세를 중국이 겪습니다. 위촉오 삼국시대를 이어 오호십육국 시대 역시 적지 않은 인구 감소를 생각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고서 중원에 들어선 나라가 바로 수나라입니다. 그리고 수나라는 30만 대군에 이어 100만이 넘는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공격합니다.
보급없이 전쟁을 치를 수는 없습니다. 100만이 넘는 병력에 식량이나 무장 등 갖가지 보급품을 조달하기 위해 동원된 인원은 또 얼마나 될까요? 인구 구성비 등을 고려하면 곧 수나라 전체가 고구려와의 전쟁에 총동원되었다고 할만큼 고수전쟁은 엄청난 규모의 전쟁이었습니다. 20세기 초 중반에 발생했던 세계 제 1차 대전이나 세계 제 2차 대전만이 세계대전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큰 전쟁이 오래 전에 동아시아 한 귀퉁이에서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도무지 수나라나 당나라는 왜 고구려를 공격했을까요? 혹시 그 까닭을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1만 2만 많아도 10만이 아니고 보급인력을 제외한 병사들만 무려 100만이 넘는 대군이었습니다. 위촉오 삼국시대와 오호십육국 시대라는 난세를 겪은 여파를 감안하면 100만 대군은 나라를 말아먹자는 생각이 아니면 일으킬 수 없는 전쟁이라고 생각합니다. 삼국시대 진나라 오호십육국 등 몇 백년의 시간적 간격이 있기는 하지만요. 수나라가 망하자 당나라도 수 십만 대군을 이끌고 또 고구려와 싸웁니다. 당나라가 동원한 병력이 수나라가 동원한 병력보다는 현저히 적었다지만 그럼에도 30만 대군 운운합니다. 100만 이상을 동원한 수나라가 고구려에 패한 여파로 당나라도 전쟁을 함부로 일으킬 수 없었을텐데도 적지 않은 병력을 동원하여 고구려를 또 공격한 것입니다. 도무지 수나라나 당나라는 무슨 억하심정이 있었길래 그런 무리한 전쟁을 일으켰으며 또 고구려와 싸운 그 까닭이 뭐겠느냐는 것입니다. 두 왕조가 연이어 그런 대규모 전쟁을 일으켰다는 것은 한 번 생각해 볼만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대한민국 내부의 역사학계에서는 - 여기서 말하는 역사학계는 강단사학계와 민족사학계를 포괄하는 것입니다 - 고조선을 보는 시각이 다릅니다. 강단사학계는 고조선은 역사가 아니라 신화라고 하여 아예 역사로 여기지 않으려고 하는 반면 민족사학계는 고조선은 신화가 아니라 역사라고 하여 그 실체를 밝히려 애쓰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단군 조선이 단지 역사인 것 뿐만 아니라 고조선 당시 동아시아를 장악한 매우 강성한 국가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고수전쟁, 고당전쟁 이전에 우리는 조한전쟁(고조선 VS 중국 한나라)이 있었다는 것도 압니다. 그 전쟁에서 싸운 조선이 단군조선인지 아니면 위만조선인지 정확하지 않지만 어쨌거나 고조선과 중국 한나라가 싸운 전쟁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조한전쟁 이후에 중국 한나라가 중원과 만주를 아우르는 패자로 부상한다는 것은 압니다. 한나라보다 1000여년 전에 주나라가 있었지만 춘추전국과 같은 500년이 넘는 혼란기가 있었는데 중국의 주나라는 중원의 패자라고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 춘추오패라는 말이 다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다 진시황이 중원을 통일하지만 몇 십년 가지 못하고 초한전쟁이일어나 한나라가 승리하게 됩니다. 그러나 한나라는 조한 전쟁에서 조선을 극복하기 전까지 여러 유목민들에게 숱한 공격을 받던 그리 강성한 국가라고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흉노를 극복하고 조한전쟁에서 조선마저 이기자(?) 중원지역과 만주 일부(?)에서 확실한 패자가 됩니다. (한사군이 어디에 위치했는지 모르지만, 일단 현재는 당시의 역사가 정확하게 기록된 것이 아니라는 논쟁이 활발하므로 만주일부를 포함시키는 것이 정확하지는 모르겠습니다.)
중국 한나라가 조한전쟁에서 승리하여 동아시아의 패권을 장악하자 고조선이라는 이름은 역사에서 사라진 것마냥 그 흔적을 찾기가 힘듭니다. 바야흐로 한족의 세상이 된 것 같은 그런 기간이 400년 정도 이어집니다. 그 와중에 중국에는 위촉오 삼국시대를 거치게 되고 사마씨가 한나라를 이어 진(晉)을 건국하지만 그 역시 왕조의 수명이 그리 길지 않습니다. 바로 오호십육국 시대라는 혼란기에 접어드는 것이지요.
사마씨의 진(晉)나라를 공격한 오호십육국은 대체로 유목민족이었던 것으로 압니다. 중국의 한나라가 일정기간 동아시아의 패권을 장악하기는 했지만 주변의 유목민족들이 생각할 때는 그닥 섬길만한 왕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나 봅니다. 그러니 그런 혼란이 생겼으리라 추측을 합니다. 반면, 고조선이 한나라처럼 여러 유목민족들의 공격을 받았다는 기록은 또 없는 것으로 압니다. 그런 것을 보면 유목민족들이 구심점으로 삼은 것은 단군께서 이끄시던 조선(단군조선)이었지 중국 한나라나 진나라는 아니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즉, 중원지역을 제외하면 여러 부여나 고구려 옥저 동예와 같은 거수국들을 거느리면서 유목민족들의 질서를 유지한 것은 고조선이 아니었나! 하는 것입니다.
중국이 중국의 역사를 본격적으로 기록하기 시작한 것은 조한전쟁 이후입니다. 또한 부분적이나마 중국 본토 밖의 이민족들에 대해서 기록하기 시작한 것도 조한전쟁 이후입니다. 사마천이 사기를 지을 수 있었던 것은 조선과 한나라와의 경쟁에서 한나라가 승리했기 때문으로 생각합니다. 그 이전에는 지속적으로 북방 유목민족들이 중원을 침공하였기 때문에 그런 기간에는 50만자가 넘는다는 사기(史記)를 집필하기 힘들었을 수 있습니다. 요즘처럼 종이가 흔한 시대도 아니었습니다. 종이가 없었다고 하는 것이 더욱 정확하겠지요. 즉, 중국 한나라가 흉노와의 전쟁에서도 이기고 더 나아가 유목민족이나 유목국가들의 구심점이었을 수도 있는 조선과의 싸움에서마저 이긴 까닭으로 사기(史記)라는 저술을 기록할만한 여유를 확보할 수 있었을 것으로 추측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중국 주변의 여러 유목 민족들에게 한나라는 구심점일 수 없다는 한계가 있었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400여년을 이어오던 한나라는 결국 망합니다. 사마씨의 진나라가 잠깐 득세하지만 유목민족들의 시기라고 할 수 있는 오호십육국 시대가 도래하게 됩니다. 그런데, 유목민들이 자신들의 종주국으로 인정할 수 없는 한나라는 망했고, 한나라 이전에 유목민족들의 종주국이었을 지도 모르는 단군 조선도 이제는 사라지고 없는 그런, 한마디로 누구든지 먼저 깃발 꽂는 이가 종통(정통)을 주장할 수 있는 혼란기가 도래하게 되는 것입니다. 동양에서는 천명사상이 있다는 것 아시지요? 그 혼란 속에서 중원지역에서는 수나라가 득세를 하였고 만주나 한반도 지역에는 고구려가 득세를 하게 되었습니다. 단군께서 조선을 이끄실 때는 수나라나 고구려나 그저 각각 하나의 거수국에 불과했는데, 조한전쟁의 여파였는지 마지막 단군께서 그만 산(山)에 드심으로 하여 수나라와 고구려는 종통(宗統)이라는 명분을 두고 싸우게 되지 않았나! 또는 싸울 수 밖에 없지 않았나!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나라를 이어 당나라도 고구려를 공격했는데 수나라와 당나라간의 인척관계 뭐 그런 것을 따지면 수나라나 당나라나 국호가 다르다는 것을 제외하면 별도의 국가로 생각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고구려는 단군께서 이끄시던 고조선이 아니었기 때문에 수나라나 당나라가 고구려와 적통의 지위를 다툰 것으로 생각합니다. 즉, 단군조선의 종통에 대한 정당성 또는 천명을 누가 계승했는가를 내세우며 서로 싸운 것이지요. 수나라는 수나라 입장에서 수나라가 단군의 계보를 잇는 나라라고 우겼을 것이고 고구려는 고구려가 바로 단군을 이은 적통이라고 우겼을 것이고, 그리하여 서로 천손의 적통 또는 천명의 계승자를 가리는 싸움을 한 것이 바로 고수전쟁이나 고당전쟁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고구려는 결국 당나라에 패했습니다. 아시지요? 즉, 수나라의 100만 대군을 짓이길 수 있을만한 역량을 지녔음에도 수나라와 당나라의 쪽수를 앞세운 계속되는 공격에 결국 무너졌지요. 물론 신라의 역할이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나당연합군 또는 신당연합군이라는 명칭으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고구려도 망했고 신라도 결국 망했습니다. 이는 단군께서 1000년을 넘어 2000년 이상을 이어오던 전통을 고구려도 백제도 수문제, 수양제나 당태종이나 그 누구도 잇지 못했다는 말이기도 할 것입니다.
뭐 역사도 잘 모르면서 역사 관련 유튜브 영상들을 보기도 하고 사기 중에 고작 조선열전이나 흉노열전만 근근히 읽어본 주제에 이런저런 짱구를 굴리면서 그냥 한 번 생각을 해 본 것입니다. 고구려는 고조선이 아니었기에 수나 당이나 모두 유목민족 출신이고 고구려도 단군조선과 지리적으로 가까이 위치해 있었으나 역시 고조선의 거수국이었으므로 너나 나나 단군을 받들던 비슷한 처지에, 고구려 입장에서는 중원을 수나 당 니들이 먹었다고 단군을 지척에서 받들던 우리 고구려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내조를 하란 말이냐? 라고 큰소리쳤고, 수나라 입장에서는 니가 뭐라고 중원을 통일한 수나라에 머리를 조아리니 않느냐? 이러면서 싸운 것이 바로 고수전쟁이나 고당전쟁이라고 생각합니다.
정관정요라는 것이 있는데, 당태종이 중국 역사에서는 성군으로 이름난 중국의 임금입니다. 그리하여 당시의 치세를 담은 책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수나라 100만 대군으로도 패한 나라를 이어 또 다시 고구려와 전쟁을 치르려고 하는 마당에 수나라가 당나라로 뒤집힌 것처럼 당나라 역시 수나라처럼 뒤집히는 상황을 당하지 않으려면 백성들의 삶을 돌보라고 대변하는 신하들의 직언을 "에이 짜증나 워차오워차오!" 하면서도 당 태종 이세민은 꾹 참고 들어주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리하여 나온 것이 또 정관정요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단군 할아버지들께서 이어오던 나라 조선을 우리는 잘 모릅니다. 대한민국 역사학자들이 역사가 아니라고 하여 더더욱 모르게 되고 있습니다. 학자들 뿐만 아니라 여러분들이 단군 할아버지를 애타게 그리워하며 그 모습을 찾으려 애를 쓰고 있지만 속시원하게 밝혀진 것은 없는 것으로 압니다. 그런 현실에서 역사도 모르고 뭐 그렇다고 아는 것도 없는 놈이 단군과 고조선을 회복하려 노력하면서 곳곳에 업로드 하는 영상이나 블로그 등의 글을 보고서 마구 그려본 뇌피셜 중의 하나입니다. 아무리 뇌피셜이라고 하지만 그럼에도 혹시나 제가 그린 뇌피셜이 그럴듯하다 싶으시면 보다 전문적인 공부를 하신 분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한편, 고구려가 결국 수와 당의 계속적인 공격에 의해 멸망하지만, 중국에서는 한나라를 이어 진나라 다음에 오호십육국이 들어서는 것처럼, 또 다시 고구려와 당의 전쟁 이후 우선은 고구려나 백제가 망하지만 중국에서도 결국 당나라도 망합니다. 그러면서 오대십국이라는 혼란기가 중국에 찾아듭니다. 그리고 고구려가 만주와 한반도를 장악하고 요서 10성을 쌓던 시기에는 거란 말갈 여진 등이 모두 고구려의 휘하에 있었지요. 그래서 그랬는지 요나라 원나라 금나라 후금 청 등의 여러 나라가 중국에서 자신들만의 왕조를 건국했음에도 고구려는 대진고려(발해)나 고려라는 이름으로 그 명맥을 계속 유지합니다. 중국에서조차 동방이나 해동 이라는 말을 써서 동방예의지국, 해동성국 같은 말들이 나올만큼 만주와 한반도 지역은 중국(China)와는 분명히 구별되는 지역이었습니다.
북한이 고구려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지만 온 사방이 가하는 압력만으로 오늘도 굶주리다 죽는 주민들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차원에서 북한이 고구려의 명맥을 잇고 있다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고구려에서는 최고통치자가 잘못하면 왕을 죽인다거나 하는 규칙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단군을 이었다는 생각은 더더욱 못하겠습니다. 어쨌거나 오늘도 굶주림을 견디다 죽었을지 모르는 북한 주민들의 명복을 빕니다.
결론적으로
수나라 당나라의 선조들이 고구려와 마찬가지로 모두 고조선의 거수국이었다.
중국에서 한나라가 잠시 고조선을 극복하고 동아시아의 패자가 되었다.
한나라가 망하자 무주공산이 되었다. 그러나 고구려는 단군께서 이끌던 고조선이 아니었다.
고구려가 고조선이 아니었기 때문에 스스로 자신들이 단군 조선의 적통 또는 천명을 받았다고 주장하며 고수전쟁이나 고당전쟁이 일어났다.
수나라 당나라도 망하고 고구려 백제도 망했다. 고조선의 적자라고 주장하던 나라(?)들은 다 망했다. (고대 역사서에 그런 명분으로 싸웠다는 기록은 없으므로 수나라나 당나라가 조선의 적통을 명분으로 싸웠는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에궁... 역사고 뭐고 아무 것도 모르는 놈이 뭘 쓰려니... ㅡ,.ㅡ
그저 재미삼아라도 읽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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