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에서 매일 역사 관련 영상을 하나씩은 봅니다.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만난 영상이 사서 오경 중 서경(書經) 순전(舜典)의 사근동후(肆覲東后) 라는 구가 단군과 순임금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는 글귀이며 주례, 의례, 예기 등 여러 문헌을 참고하여 단군과 순임과의 관계를 밝혀냈다는 것이었습니다.
환단고기나 부도지 등을 읽어보면 단군께서 순임금을 제후로 삼아 고대 중국 땅 어느 곳을 봉했다고 하는데 중국 사서나 여러 문헌에는 왜 그런 내용이 안 나타날까? 하는 그런 의문이 드신 적이 없나요? 저는 그런 내용이 궁금했었습니다. 그러나 워낙 공부는 고사하고 역사서도 꾸준히 읽지 않았으면서 환단고기만 읽으면 국뽕에 빠지는 것 같고 중국 사서에는 그런 내용은 없다는 것 같고, 그런 면에서 한 번씩 보시면 매우 유익할 것 같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1MMFqA2ehIY
저는 일단 위 영상에서 주장하는 내용을 매우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고대로 올라갈수록 한자를 매우 엄격하고 까다롭게 썼다는 것을 나름 피상적으나마 이해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굳이 영상에서 설명하는 단군조선이나 순임금 시기까지 올라가지 않아도 우리는 조선시대에 남이 장군이 자신이 읋은 호연지기 가득한 시(詩) 한 수 때문에 역적으로 몰려 죽임을 당한 것을 압니다.
남아 20에 천하를 평정치 못하면 어찌 대장부라 할 수 있겠느냐? (원문 생략)
라고 남이 장군이 읋은 시에 그렇게 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누군가 그 시에서 평정한다는 글자(平) 대신 득(得)자를 끼워 넣어
남아 20에 천하를 얻지 못하면 어찌 대장부라 할 수 있겠느냐? (원문 생략)
라고 시를 읋었다면서 모함을 하여 남이 장군은 역적으로 몰려 사망하지요. 제가 알기로는 글자를 여러 개 바꾼 것이 아니라 딱 한 글자만 바꾼 것으로 압니다. 그 만큼 한자는 뜻을 담아 쓰는 글자인 까닭에 글자 하나가 바뀌면 충역이 갈릴만큼 엄중한 것이었고 조선이라서 3족을 멸하지만 옛날 중국에서는 글자 하나 때문에 9족이 몰살을 당할 수 있을 만큼 엄중했던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더 고대로 올라가서 갑골문 시절에는 글자는 신과 인간을 매개하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모든 부적은 전서로 쓰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영상에서 설명하는 내용 중 사근동후(肆覲東后) 라는 구에서 肆나 覲은 고대의 의례(儀禮)에 관한 내용이지만 후(后)는 누구를 가리키느냐? 하는 묘한 문제가 생깁니다. 순은 이미 중국 땅에서 제일 높은 사람이 되어 있는데, 중국에서는 제일 높은 임금을 때에 따라 황(皇)이라고도 했고 제(帝)라고도 또 왕(王:주나라)이라고도 부르다 진시황 이후로 황제(皇帝)로 고정됩니다. 그 이후의 모든 중국 최고임금은 모두 황제라는 칭호를 쓰게 되지요. 고대 중국에서 최고 임금의 이름을 부르던 명칭은 시대에 따라 조그씩 달랐지만 그 외 임금들에게 후(后)라는 글자를 썼느냐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공경대부(公卿大夫) 공후백자남(公侯伯子男) 같은 하위 임금들 또는 대신들을 부르는 칭호가 각각 별도로 다 있었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공경대부는 황제의 신하들이고 공후백자남은 등급에 따른 왕의 칭호들입니다. 公도 임금, 侯도 임금, 伯子男도 각각 임금입니다. 지역왕인 것이지요.
믿거나 말거나지만 저는 서경 순전을 읽어 본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사근동후(肆覲東后) 라는 짧은 어구 속에 그렇게나 심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 줄 전혀 생각지 못했습니다. 사실은 사근동후라는 구절조차 기억하고 있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위 영상을 보고 책을 펴 보니 사근동후라는 구가 있네요. ^^;; 영상 속에 이기동 이라는 모 교수의 서경강설 이라는 책을 잠깐 소개하고 있던데 저런 책이 나와 있는지 몰라서 그랬는지도 모르지요. 제가 봤던 서경은 명문당에서 35년 전에 출판된 것이거든요. 물론 35년 전에 서경을 구입하고 또 35년 전부터 서경을 계속 읽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ㅡ,.ㅡ
제가 서경을 읽어보려 했던 것은 중국 모든 철학이나 정치, 역사, 문화 뭐 그런 것이 모두 다 서경에서 출발했다는 뭐 그런 설명을 보고서 궁금한 생각이 들어 제일 싼 책으로, 실제로 내용이 그렇다면 싼 책이나 비싼 책이나 어째도 같은 감흥을 느낄 수 있을 것 아니겠어요, 그래서... ^^;; 그런데 먹고 사는 게 녹녹치도 않고 몸도 아프고 결국 반도 못보고 책장에 꽂혀 있었답니다. 10년 넘게 ㅡ,.ㅡ
영상 속에서는 예기 곡례편이나 예기 왕제 편 등도 인용을 하고 환단고기도 인용을 하시던데, 하필 저는 예기 곡례편이나 왕제편도 한 번씩은 읽어본 적이 있고 환단고기도 원문으로 두 번 정도 읽어 본 적이 있어서인지, 기억을 다 하지는 못하지만 영상 속 내용이나 설명이 매우 긍정적으로 생각됩니다. 혹시 이 포스트를 보시는 분이 계시다면 영상이 길기는 하지만 꼭 한 번 보셨으면 하고 권해드리겠습니다.
한편, 일본이 100여년 전에 임나일본부라는 학설을 창조(?)하고 지금껏 그 학설이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서기는 워낙 타임머신 같은 역사서라고 알고 있습니다. 년대를 60년 또는 120년씩 위아래 위위아래로 마구 끌어다 올렸다내렸다 해가면서 왜(일본)이 한강 이남을 장악하고 통치했다고 억지를 부린다고 하더군요. 어쩌면 환단고기를 기준으로 중국이나 여러 나라의 역사서를 탐색하는 것이 혹시 일본의 임나일본부 조작이나 날조와 비슷한 행위로 여겨질 수도 있지만, 적어도 환단고기는 타임머신은 아닌 것으로 압니다. 차라리 일본서기를 타임머신이라고나 하던지. 그런 면에서 일개 무지렁이 서민에 불과하지만 우리 역사를 규명하기 위해서 노력하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뜬금없이, 역사를 모르면서 뭔가 하나 덧붙이고 싶은 생각이 불쑥 드네요. 우리는 수나라나 당나라가 고구려를 침공해 전쟁을 치른 역사를 이름이나마 알고 있습니다. 고수전쟁, 고당전쟁이라고 하지요. 그런데, 수나라나 당나라나 모두 한족(漢族)이 아니라 유목민족이라고 합니다. 돌궐계라던가? 선비계라던가? 어쨌거나 수나라나 당나라는 왜 고구려를 침공했을까요? 그것은 고구려는 고조선이 아니었기 때문으로 생각합니다.
수나라나 당나라의 선조들은 고구려와 마찬가지로 고조선의 거수국이거나 또는 고조선이라는 정치나 행정체계에 긴밀하게 편입되지는 않았을지라도 고조선 거수국에 속한 유목민족들이었을 수 있습니다. 단군조선이 문을 닫은 후 부여, 고구려, 옥저, 동예, 낙랑국 등등 적지 않은 열국들이 단군조선 주변에 있었는데 그들 국가가 고조선과 긴밀한 관계에 있던 거수국들이라고 한다면, 돌궐이나 흉노, 선비 등의 유목 민족들은 지금의 외몽골이나 또는 청해성 일대에 거주하던 나라들? 유목민족들? 뭐 그랬던 것으로 알고 있으니까요. 환단고기 어디에 나오는지 모르지만 단군조선 이전의 어느 천왕께서 강성한 족속들을 걱정하여 조치를 취하려고 하셨다는 내용이 있는데 그런 내용과 맥이 통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흉노나 여타 유목민족들이 조한전쟁 이전에 단군조선을 쳐들어갔다고는 하지 않잖아요.
그런데, 예전 고조선의 전통이 무너지고 난 이후에 중국 한나라가 몇 백년간 득세하긴 했지만, 고조선이 건재할 때 서로 지위가 같거나 비슷하다고 여겼던 고구려가 중원을 차지한 수나라나 당나라에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는 것이 수문제나 수양제 또 당태종 등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았나 하는 것입니다. 고구려 니들이나 우리 수나 당이나 옛 단군 조선의 휘하에 있던 거시기(거수국)들 아니었느냐! 하는 것이지요. 단군조선이 사라진 후 몇 백년간 누가 종통을 잇느냐가 수나라 당나라 고구려 등의 쟁점이었던 반면, 고구려가 수나 당을 맞아 훌륭히 싸워 물리치기는 했지만 결국 고구려나 백제 모두 멸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고구려가 요서 10성을 쌓을 만큼 강성했을 때는 거란 말갈 여진 등이 모두 고구려의 휘하에 있었기 때문인지 역사가 흘러 원나라 요나라 금나라 후금 청 등이 중원을 장악하지만 역시 고려의 명맥은 또 유지가 됩니다.
물론 아무런 문헌적 근거 뭐 그런 거 없습니다. 그저 유튜브에 업로드 되는 여러 역사 관련 영상을 보고 또 환단고기, 조선열전 등등 이것저건 보면서 짱구를 굴리기도 하고 뭐 그러면서 나온 생각이니까요.
영상 속 내용을 제외하면 모두 일개 서민의 뇌피셜입니다. 재미삼아 보실 분은 보시고 어! 뭐 좀 그럴 듯한데? 싶으시면 참고하시고요. 고구려는 단군조선이 아니었다. 그래서 수나 당이 고구려와 싸웠다. 그럴 듯하지 않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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