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보통 삼국연의를 삼국지라고 부르지만 사실 삼국지와 삼국연의가 다르다는 것을 이제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안다고 생각합니다. 삼국지는 정사 역사고 삼국연의는 삼국지라는 정사 역사서를 짜집기한 소설이라는 것을 모르는 분은 안계신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삼국연의가 삼국지라는 명칭으로 계속 발행되고 있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소설이 역사로 알려지고 있으므로, 일개 서민 독자가 이의를 제기할 일은 아니겠지요.
살다가 어쩌다 보니 저도 삼국지(삼국연의)를 대여섯 번은 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삼국지(삼국연의) 매니아는 아니라서 등장인물 몇 명을 제외하면 딱히 기억나는 것이 없습니다. 뭐 대표적으로 유비, 관우, 장비, 여포, 동탁, 초선 등등 몇 명의 인물과 청룡언월도, 장팔사모, 방천화극 등등 무기 몇 가지 뭐 그리고는 별로 떠오르는 것이 없네요. 온라인 서점에서 삼국지나 삼국연의로 검색하면 무슨 전략이 어떻고, 저떻고 하면서 삼국지(삼국연의)와 관련된 파생 컨텐츠들이 적지 않음에도 저는 무식한 독자라서 그랬는지 도무지 그런 면이 보이지 않더라고요. 그러나, 그렇게 무식한 독자에게도 삼국지(삼국연의)가 매우 황당한 내용이었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된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당시의 도로 사정이나 교통, 운반수단, 인간의 체력 등과 관련된 것입니다.
일단 아래 지도를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아래 지도는 삼국연의 지도 라는 내용으로 검색하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지도입니다. 어느 분이 작성하셨는지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래 지도에서 붉은 동그라미와 마름모 네모 등의 표시는 모두 행정구역입니다. 확대나 축소가 가능하기 때문에 자세히 보실 수도 있습니다. 지금의 중국 영토보다 훨씬 더 넓지요?
지금으로부터 2000여년 전 아래 지도와 같은 영토확장이 가능했을까요? 하늘을 나는 수송기도 없고 K151 같은 전술차량도 없고 말(馬)이 있었다고 하지만 말은 최말단 병사들이 타고 다닌 것이 아니라 장수들 또는 기병이나 타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대부분이 보병이었을테고 그들은 두 발로 걸어다니거나 뛰어다녀야 했을텐데, 요즘처럼 나이키 에어(Air) 같은 쿠션 좋은 신발이나 장기간 신어도 잘 떨어지지 않는 소가죽으로 신발을 만들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가죽신 역시 제가 알기로 귀족들만 신은 것으로 알고 있기도 하고요. 오로지 병사들의 두 발과 두 팔의 근력에 의지해서 이동해야 하는데 아래 지도처럼 광활한 영토를 획득할 수 있었을까요?
삼국연의 1회를 보아도 유비가 황건적을 맞아 자기 부하들을 데리고 탁군으로 갔다가 산동으로 갔다가 또 광종으로 갔다가 하면서 수 천리를 움직입니다. 1회인데 그래요. 모종강본 삼국연의가 총 120회인데 어디 유비 군사들만 움직였을까요? 원소, 조조, 여포, 손권, 유장 등등 숱하게 많은 장수들이 이끌던 병사들도 모두 중원 여기저기를 이동했을 것입니다. 장수들이야 말을 탔다지만 대부분이 병사들이었을테고 그들은 걷고 뛰었을 것 아닌가요. 여러분은 하루에 최대 몇 KM를 걸어보셨습니까? 그리고 삼국연의에 등장하는 병사들은 몇 KM를 걸어다녔겠습니까? 그리고 그들은 하루만 걸었을까요? 아닙니다. 삼국연의에는 어디로 갔다. 이렇게만 나오니 그 길이 몇 KM나 되는지 또 산길인지 아니면 진흙길인지 그도 아니면 강변을 따라 걷는 모래사장인지, 또 몇일만에 이동했는지 구체적인 정보는 전혀 또는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똑같은 거리의 길을 걸어도, 예를 들어 40km를 누군가 걷는다고 하십시다. 아스팔트 길 40km를 걷는 것과 자갈길 40km를 걷는 것이 같을까요? 신발을 요즘 기준의 등산화나 가죽 운동화를 신는다고 해도 자갈길 40km를 걷는 것이 더욱 힘들다는 것을 조금이라도 장거리를 걸어보신 분들은 아실 것입니다. 그런데, 삼국연의를 읽어보면 병사들은 아스팔트나 콘크리트도 아닌 길을 주구장창 걸어다녔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현재 대한민국 서울에서 전라도 해남, 그리고 부산, 그리고 강원도 강릉이나 속초, 또는 양양, 그리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을 거리로 재면 한 1300km 될까요? 하루 40km씩 걸으면 한 달(30일) 정도에 걸을 수 있는 길이 되겠네요. 혹시 한 번 걸어보신 분 계신가요? 한 달 정도에 걸어서 한 바퀴를 돌 수 있을까요? 조금 넉넉하게 10일 정도를 추가해서 40일로 하십시다. 40일만에 대한민국 외곽을 한 바퀴를 걸어서 돌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 일부러 짚신 만들어서 신으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자갈길이나 진흙길 찾아다니면서 걸으라고도 하지 않겠습니다. 쿠션 좋은 신발 신고 아스팔트 길만 걷는다고 해도 40일만에 대한민국을 한 바퀴 돌아 서울에서 출발하여 서울로 걸어서 당도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걷는다는 것이 그 만큼 힘드는 일입니다. 더구나 도시 생활에 익숙한 분들은 더덕욱 힘든 길일 것이고요. 그런데, 삼국연의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장거리를 이동하는 것이 예사로 나옵니다. 대부분이 걷거나 뛰어다녔을 텐데도...
옛날 전쟁이나 전투에 참가하는 병사들이 맨몸으로 갔겠습니까? 아닙니다. 자기들 먹을 양식을 수레에 싣고 갔을 것입니다. 요즘같은 고무바퀴 생각하면 안됩니다. 나무 바퀴지요. 게다가, 수레가 고장나면 고쳐야 하니까 연장도 실려 있을 것입니다. 목책이라도 쌓아야 하니까 그에 맞는 연장도 실었을 것입니다. 삽, 장도리, 망치, 가위 등등 또 공격과 후퇴를 알리는 북이나 징 꽹과리 같은 것도 실어야 하고 가마솥, 밥그릇, 숟가락, 접시 등등 짐도 적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스팔트길 아닙니다. 고대에 무슨 아스팔트길이 있었겠어요. 그나마 자갈길이라도 마른 길이면 조금 수월하게 갔겠지만 비가 와서 진창길이라도 된다면....?
삼국연의를 보면 제갈공명의 칠종칠금(七縱七擒)이라는 것이 나옵니다. 사천 성도에서 미얀마 라오스 국경까지 왕복으로 5개월 걸려서 제갈공명이 몇 가지 잡다한 사건을 처리하는 여유를 보이면서도 맹획을 일곱번 잡고 일곱번 놓아주어서 진심으로 복속시켰다는 이야기입니다. 아시지요? 그런데, 혹시 삼국연의 지도를 확대에서 사천 성도에서 미얀마 라오스 국경까지의 길을 한 번 살펴보셨습니까? 높다란 산이 한 둘이 아닙니다. 그런 길을 5개월만에 왕복할 수 있을까요? 아스팔트 길도 아니고 제갈공명이 맹획을 잡으러 갔던 기간은 우기(雨期)일 수도 있는데? 질퍽한 진탕길을 나무바퀴 수레를 밀거나 끌면서 수 십개의 산봉우리를 오르락 내리락 해가면서 수 십만의 병사들을 이끌고 5개월만에 왕복한다? 병사들 점호도 매일 했을 거 아닌가요. 혹시 당시에 터널이 있었을까요? ㅋ
작년(2020)에 삼국연의를 한 번 더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작년에 읽은 삼국연의는 박기봉 역 삼국연의였는데 원문을 함께 구입했습니다. 그리고 원문으로 읽었습니다. 물론 삼국연의를 원문으로 읽을 실력은 못되므로 박기봉님의 번역과 대조해 가면서 읽었습니다. 하지만, 모르는 글자도 많고 지명이나 뭐 그런 것도 새로 찾아봐 가면서 읽었는데, 하필 위에 소개한 삼국연의 지도가 검색되어 나와서 좀 더 편하게 지명을 알 수 있게 되기도 하였습니다만, 뜬금없이 병사들은 다 걷거나 뛰어다녔을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삼국지(삼국연의)가 뻥이 상당하구나! 하는 것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삼국지(삼국연의) 번역이 가장 활발한 나라가 일본이지요? 하필 삼국연의 지도에 낙랑군이 평양에 표시된 것을 보고 우리나라 역사학계의 정설이라는 한사군 한반도설도 연상이 되고 그러더군요. 제가 이 포스트를 쓰는 것은 삼국지(삼국연의) 번역이, 즉 소설이 번역되어 역사인 것처럼 읽혀지고 있고 동북공정이 우리가 너무 흔히 접하는 삼국지(삼국연의)에도 있어서 우리나라 역사를 침탈하고 있다는 그런 말씀을 드리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삼국연의에서 장수들의 용맹과 지략 뭐 그런 것에 감동하기보다 군대를 이루는 대부분이 일반 병사였고 말이나 갑옷 같은 무장을 장수들처럼 중히 할 수도 없지만 가벼운 무장을 했을 것이고 오직 두 다리와 두 팔로 중원 전역을 걸어다녔을 당시를 고려해 가면서 읽어보시면 좀 더 유익한 독서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몇 자 끄적였습니다.
사족이지만 삼국지(삼국연의) 번역은 일본이 제일 활발한데, 비단 삼국지(삼국연의) 번역 뿐만 아니라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등등 삼국지(삼국연의) 창작에 가장 열심인 나라가 일본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낙랑군은 현재의 북한 평양에 표시가 되어 있는 것일까요? 일본서기라는 역사서에 신공왕후가 신라를 공격했는데 가야 7국이 멸망했다는 그런 내용이 사실인 것 마냥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신라를 공격했는데 가야 일곱 나라가 멸망했다?? 참 신기한 역사서지요? 뭐 그런 맥락일까요? 뭐 비슷하거나 거의 같잖아요. 삼국지(삼국연의)를 번역했는데 자동적으로 동북공정이 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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