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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이 누구길래 단군을 이용하나?

참그놈 2021. 11. 16. 07:59

현재의 고등학교 국사교과서에는 BC2333년에 단군이 고조선을 건국하였다는 문장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송호정 박사 등을 위시하여 고대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BC2333년에 단군이 고조선을 건국하였다는 문장이 한국인들의 고대사 인식에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면서 해당 문장(내용)을 국사교과서에서 삭제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단군은 신화다 라고 하며 단군은 대일항쟁기(일제강점기)를 당해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해 일부 민족주의 사가들이 이용한 것이다. 즉 단군은 만들어진 신화다 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도무지 단군이 누구이고 무엇을 하는 사람이길래 단군을 끌어와서 신화를 만들었을까요? 고작 삼국유사에 환인 환웅 단군 세 분의 존함이 기록되어 있어서 신화로 만들었을까요?

 

단재 신채호 선생의 조선혁명선언을 읽어보면 "강도 일본이..." 라고 시작합니다. 그리고는 민중은 우리 혁명의 대본영이라며 강력한 폭력투쟁을 말씀하시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조선혁명선언은 독립투사들과 의열단 단원들이 항시 읽었다는 내용도 본 것 같습니다. 의열단의 공식 선언문이라고도 하더군요. 조선혁명선언을 읽어보시면 단재 신채호 선생께서 매우 과격한 분임을 아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치우라는 고대의 천자(天子)를 압니다. (중국 역사서에 고대의 천자天子라고 적혀 있다고 합니다) 자오지천왕이라고도 하고 치우천왕이라고도 합니다. 중국에서조차 전신(戰神)이라고 부르던 분이었다고 하더군요. 한(漢) 고조 유방이 치우천왕에게 제사를 지냈다는 이야기도 있는 것으로 압니다. 지금도 중국에서는 치우천왕과 염제 신농 그리고 황제헌원을 삼조당이라는 건물을 지어놓고 모시고 있다고 하더군요. 공산주의 국가에서.. ㅋ 대일항쟁기에 우리에게 신화가 필요했다면 치우천왕 같은 분을 끌어오지 않았을까요?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께서 광화문 광장에 이순신 장군의 동상을 세우셨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일본을 향한 대응의식의 일환으로 이순신 장군의 동상을 세우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해방 후에도 이순신 장군 같은 군사전략가를 동상으로 세울 만큼 대일항쟁기(일제강점기)에는 문약(文弱)의 이미지보다 무강(武綱)의 인물이 당시를 살았던 조선 민중들에게는 더욱 필요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단군은 그런 무력을 앞세운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단군에 관한 기록이 많이 전하지 않기 때문에 뭐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치우천왕처럼 이마가 구리고 짐승의 형상인데 사람의 말을 하고 모래와 자갈을 먹는다거나 하는 그런 내용은 없는 것으로 압니다. 오히려 요순시대처럼 그저 소박하게 가만히 앉아 계셔도 온 나라가 자연히 다스려지는 모습으로 어딘가에서 기술을 하고 있더군요. 당시의 현실을 감안하면 무력하고 나약한 모습으로 연상되지 않나요?

 

한편,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는 한민족이고 대한민국인데 왜 하필 단군일까요? 도대체 단군이 누구라고 생각했길래 우리 독립투사나 민족사학 계열에서는 단군을 역사책에 기술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생판 아무도 모르는 존재를 끌어다 "단군이라는 이 분이 바로 우리 모든 조선인들의 선조이시다" 라고 하면 그 말을 누가 듣겠습니까. 당시를 살았던 조선민중들이 단군을 모두 알고 있었으니 단군을 역사책에 기록할 수 있었던 것 아닌가요?

 

소위 단군이 신화라고 주장하는 대한민국 역사학계에서는 단군을 대일항쟁기(일제강점기)를 살던 당시 한국인들에게 단군이라는 신제품을 전국적으로 알리기 위해서 독립투사들이나 민족사학자들이 애를 썼다는 말이 되는데, 기업에서 뭔가 새로운 제품 하나를 개발하고 홍보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비용과 노력을 들이는지 알고 있다면, 소수의 누군가(대한제국 황제던 민족주의 역사가던)가 단군을 새로 개발했노라면서 주장하는 것이 가능한 일이겠습니까? 조선말에는 문맹률도 상당했습니다. 강도 일본에게 국권마저 빼앗겨 나랏말도 쓰지 못하고 나라글도 쓰지 못하도록 강제교육을 받았으며 신사참배도 해야 했습니다. 요즘처럼 인터넷이 있나 TV가 있나 라디오도 없거나 귀하던 시절이었는데 그런 대대적인 홍보가 또 교육이 가능했을까요? 그런 강압적이고 열악한 상황에서 단군을 한민족의 시초로 제시했다는 것은 당시를 살던 한국인들 대다수가 단군을 이미 모두 알고 있었다는 말이 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단군을 한민족의 시조로 제시할 이유나 명분이 터무니없이 미약하지 않았을까요?

 

1950년대에 발행된 신문 내용을 어쩌다 어떤 책에서 보게 되었는데, 1950년대에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4천년으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신문 기자가 그렇게 썼더군요. 일본 총독도 한국의 역사를 4천년이라고 말한 부분도 있었습니다. 해당 내용은 굳이 제가 읽어본 책이 아니더라도 요즘은 신문사들마다 옛날에 발행했던 기사들을 PDF로 만들어서 검색이 가능하게 만들어 둔 것으로 알고 있으므로 동아일보나 조선일보 등 대일항쟁기(일제강점기)나 1950년대에 발행된 신문 등을 보시면 확인이 가능할 것입니다. 신문사들이 그런 서비스 하지요? 당시에 인터넷이나 TV는 고사하고 라디오조차 귀하던 시절임을 감안하면 단군을 엄연한 사실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단군은 신화도 아닐 뿐더러 만들어진 신화는 더더욱 아닌 것이지요.

 

현행 국사교과서에 BC2333년에 단군이 고조선을 건국하였다 는 문장을 추가하면 한국인들의 고대사 인식에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해당 문장이 추가되는 경우 일본인들의 한국 고대사 역사 인식이나 미국 또는 중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 기타 다른 나라 사람들의 한국 고대사 인식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아무 문제가 없는 것 아닙니까. 반면, 현재 국사 교과서에 BC2333년에 단군이 고조선을 건국하였다 는 문장 외에도 고대사에 관한 내용이 더욱 추가되어야 한다고 비판하는 학자들이 계신 것으로 압니다. 심지어 외국에서는, 특히 러시아는 중국이나 일본 등 다른 나라는 없는 역사도 만들어서까지 자기 역사라고 우기는데 도무지 한국인들은 왜 있는 역사조차 아니라고 부정하는지 까닭을 모르겠다고 말하기까지 합니다. 프랑스의 시라크 전 대통령도 - 아직 살아계시나요? - 한국에는 진작부터 성인(단군)이 출현하셔서 고대에 훌륭한 정치를 하셨다는 발언도 하신 것으로 압니다. 외국에서도 단군을 알고 있는데 왜 대한민국에서 단군이 신화라는 말을 하는지 참 알기가 힘드네요.

 

단재 신채호 선생의 조선상고사를 보면, 당시 한국인들이 우리의 역사를 읽지 않고 있다가 외국인들이 한국인들보다 더 한국의 역사를 잘 알고 있어서 창피한 마음에 그제서야 우리 역사를 읽기 시작한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지금 형국이 그렇지 않나요? 시라크 전 프랑스 대통령이나 러시아 등에서 왜 한국인들은 머저리 짓을 하느냐며 발언을 하고 있는 것 같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