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원문/삼국연의

삼국연의 : 원소와 공손찬의 반하 전투

참그놈 2021. 12. 4. 15:39

원소가 한복으로부터 기주를 빼앗기 위해 공손찬을 속입니다. 그리하여 원소와 공손찬이 반하에서 싸우게 됩니다. 그런데, 공손찬은 북평 태수였고 원소는 발해 태수였습니다. 지도를 보면 반하라는 곳이 원소와 공손찬의 근거지보다 더 남서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오른쪽 붉은 동그라미로 표시된 원이 다섯개 있는데 오른쪽 상단에서부터 왼쪽 하단까지 (우)북평, 북평, 발해, 반하/계교, 남양입니다.

 

물론, 동탁을 치기 위해 18로 제후들이 모였다가 흩어지는 과정에서 원소는 하내군에 주둔하고 있다가 한복의 근거지인 기주를 속여서 뺐습니다. 원소는 계속 기주의 치소인 업현에 머물렀을까요? 헌제가 장안으로 끌려가 있는 와중이라고 하지만 자사나 태수는 중앙에서 임명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관리들 당사자끼리 원소 네가 기주 자사를 겸해라 말아라 할 수 있나요? 그렇다고 한다면 원소가 마냥 기주의 치소인 업현에 있지는 못했을 것 같기도 하고...

 

노란 네모는 우북평군이고 공손찬의 근거지입니다. 바오딩시 부분에 있는 것은 그냥 북평현입니다. 청록색 네모는 원소의 근거지인 발해군입니다. 공손찬이 원소와 싸울 당시 원소는 기주에 있었다고 한다면, 뭣하러 원소와 싸우려고 더 아래쪽인 반하까지 갔을까요. 지도의 크기 때문에 청하국이라고 표시되어 있지만 해당 지역이 반하/계교 지역입니다. 말도 사람도 지칠텐데 저 먼거리까지 물길을 하나 둘도 아니고 물을 횡으로 무려 예닐곱번이나 건너서 가야 되잖아요. 그냥 발해군의 근거지를 장악해도 되는 것은 안되었을까요? 땅을 나누기로 했으니...

 

 

한편, 아래쪽에 보시면 원술의 근거지인 남양군이 표시되어 있는데, 원술이 원소가 기주를 장악했다는 소식을 듣고 말 1000필을 달라고 합니다. 원소가 기주를 장악한 소식을 언제 어떻게 들었는지, 또 원술은 원소에게 말 1000필을 달라고 할 때 어떤 경로로 갔는지는 뭐 그런 것에 대한 정황이 삼국연의에는 자세히 안나오는데, 간첩들이 많았을까요? 원술의 근거지인 남양에서 원소의 근거지 발해까지는 직선거리로만 700km 정도 되는데 금방 알아차리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드네요. 기주의 치소인 업현에 있었다고 해도 직선 거리로 수 백km 거리인데, 하길 소설이니 뭐...

 

옛날 우리나라에는 파발마들이 있었습니다. 중국에도 있었겠지요. 그리고 물자를 실어나르거나 중앙정부에서 행정명령을 내릴 때 황하나 장강의 수로를 활용했을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삼국연의에 관한 번역본들이 숱하게 나오고 있지만 정작 삼국시대 때의 파발마가 다니던 역참이나 수로를 이용한 행정 전달통로 같은 것을 본 기억은 전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 것이 있다면 삼국연의를 보는데 더욱 유익할 듯 하네요. 아시다시피 중국의 영토는 한반도의 45배 정도 됩니다. 삼국연의가 표시하는 당시의 영토가 현재의 중국영토 크기와 비슷한데, 삼국연의 속의 사건들은 상당히 긴밀합니다. 그 넓은 영토를 말타고 걷고 뛰어다니던 시기에 종회무진 하는 것 같아서요. 어릴 때는 삼국연의를 읽어도 별 생각이 없었지만 사실 잘 납득이 안되네요. 

 

 

어릴 때는 삼국연의에 별로 흥미가 안생기더니, 중국 삼국시대 당시 사람들이 장수나 기병을 제외하면 발로 걷고 뛰어다녔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삼국연의가 요상하고 괴상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갈량의 칠종칠금에서는 웃음이 다 터져 나왔었습니다. 산넘고 물건너 왕복 5개월만에? ㅋ 사천 성도에서 맹획의 근거지 사이에는 높은 산들이 가득하거든요. 장강의 지류들도 많고.

 

흔히들 삼국연의를 역사적 사실 7에 가공의 이야기 3을 조합한 것이라고 하는데, 역사적 사실보다는 뻥이 더 심한 것 같이 느껴지네요. 소설이니 그냥 소설이라 한다지만 삼국연의가 삼국지라는 역사로 인식되는 부분이 있다는 측면에서는 매우 부정적으로 생각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