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원문/삼국연의

기주가 전량광성지지(錢糧廣盛之地). 그런데 공손찬은 무서웠을까?

참그놈 2021. 12. 6. 22:50

삼국연의에 원소가 한복의 기주를 장악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조조가 동탁을 추격하다 실패하여 18로 제후가 뿔뿔이 자신들의 근거지로 돌아가지만 원소는 하내에 둔 칩니다. 한 마디로 껄떡댔다고 볼 수 있을까요? 낙양 근처에서 뻘짓을 했으니까요. 어쨌거나 하내에 둔치고 있다가 군량이 모자르자 기주의 한복에게 군량을 요청하고 한복은 군량을 공급합니다. 그러자 원소의 모사 봉기가 기주는 돈이나 양식이 매우 풍부한 지역이라면서 "기주내전량광성지지(冀州乃錢糧廣盛之地)"라고 말합니다. 단지 농업이 발달한 것으로 전량이 풍성해졌을까요? 상업이 흥했기 때문에 돈도 식량도 모두 넘쳐나지 않았을까요?

 

부보상이라는 상단이 있습니다. 보통은 보부상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부보상이 맞는 표현이라고 합니다. 조선시대 부보상들이 여러 곳을 다니며 상행위를 했는데 그들은 장사치였지만 무예 수련도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산적이나 마적 등 도적을 상대해야 하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중국이라고 달랐을까요? 기주가 돈이나 식량이 넘쳐났다면 그에 근거한 상인들 역시 상당한 무력을 보유했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삼국연의에서 한복은 그냥 아무 생각없는 사람으로 나오는데, 기주가 전량광성지지(錢糧廣盛之地)라고 한다면, 상인들이 자신들의 재물을 지키기 위해 무력 역시 길렀을 것이고 상단들간에 정관계에 협력 관계도 경쟁적으로 이루어졌을 수 있습니다. 그런 곳의 자사를 맡은 사람이 지역의 그런 현실을 몰랐다는 말일까요? 그래서 원소가 기주로 온다니까 자신의 직위를 버리고 떠난 사람이 30여명이나 된 것일까요? 한복이 기주자사로 있었던 기간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아무 생각없는 낙하산이었을까요?

 

고대의 상행위와 현대의 상행위의 차이를 알아야 보다 분명한 이야기를 할 수 있겠지만, 요즘처럼 아스팔트 길이 있었던 시기도 아니고 난세에 도적도 사방에 널려 있기도 했을 것이고 기타등등 제반 상황을 고려하면 한복이 아무 생각이 없는 사람으로 그려지는 것이 납득이 잘 안되네요.

 

공손찬은 우북평군 태수였다고 나오는데, 유목민족들과 전투를 자주 했을 수는 있지요. 즉, 공손찬의 병력이 타 제후들보다 실전경험이 다른 제후들보다 약간이라도 우위에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원소에게 너무 무참히 깨지기도 하고, 기주 역시 전량(돈이나 양식)이 넘쳐났다는 것을 보면 기주 자체의 무력 역시 만만치 않았을텐데 공손찬이 무서워서 냅다 원소에게 기주에 대한 권한을 넘겨준다는 것이 이해가 어렵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