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균쇠를 이제 겨우 100여쪽 읽었는데 문자가 가지는 힘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문자가 있으므로 하여 보다 정확하게 또 보다 멀리까지 정보나 생각을 전달할 수 있었던 것이 피사로가 아카우알파를 잡을 수 있는 힘이었다면서... 그러면서 스페인인들은 인간의 행동과 역사에 대한 방대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고 써 놨네요.
문자가 가지는 힘이나 영향력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피사로는 문맹이었다고 합니다. 다만 피사로는 문자 생활권에 살았다고 하네요. 문자 생활권에 살기만 하면 읽고 쓸 수 없는 문맹인데도 인간의 행동과 역사에 대한 방대한 지식을 가질 수 있나요? 2022년 현재는 인류의 출판물이 가장 많이 쌓여 있는 시기입니다. 그리고 전 세계 77억 인구 중 대부분이 문자 생활권에 살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면 세계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간의 행동과 역사에 대한 방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나요? 제레드 다이아몬드 교수의 논리대로라면 그렇잖아요. 아이러니컬한 것은 인간의 행동과 역사에 대한 방대한 지식을 가지고 아카우알파를 잡기 위해 소수로 다수를 무참히 죽였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그 방대한 지식으로 살육과 약탈 밖에는 저지르지 못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인간에 대한 방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으나(?) 인류를 대상으로 사고할 만큼 인간의 이지가 성장하지는 못했다는 말이기도 할 것입니다.
피사로의 일행은 200여명이 안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읽고 쓸 수 있는 사람들은 몇 명이나 되었을까요? 추측이지만 아마 10명도 채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10명도 많이 잡은 거예요. 책에는 피사로가 아카우알파를 생포한 사건이 1532년으로 표시하고 있습니다. 그 시기에는 구텐베르크가 인쇄술을 발명하고 마르틴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쓴 이후로 성서(Bible)를 대중들이 직접 읽기 시작하는 계기가 됩니다. 그 이전에 구텐베르크의 인쇄술로 출판된 것 역시 성서나 왕의 권위 등에 관해서 출판되지 않았을까요? 그것도 라틴어로... 서양 중세에서의 라틴어의 위상을 자세히 알아야 좀 더 이해가 확실해 지겠지만 잘 모른답니다. 그리고 15~16세기의 출판율이 요즘처럼 높았을까요? 하긴 방대한 자료를 섭렵하여 총균쇠라는 책을 쓰신 제레드 다이아몬드 교수더러 따져 묻겠다는 뜻은 아니지만 - 저 따위가 뭐라고... - 해당 내용은 뭔가 AD2000년대의 모습을 16세기에 덮어씌운 것 같은 느낌이 없지 않습니다. 요즘은 100만부 이상이 팔리는 밀리언 셀러도 있고 지속적으로 팔리는 스테디셀러도 있고 그렇지만 1532년부터 몇 백년이 흐른 19세기에도 책은 출판되는 양이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서구에서 수 천년을 한결같이 스테디셀러이고 베스트셀러인 책은 성서(Bible)이지요.
마르틴 루터 이후로 사람들이 직접 성서를 읽기 시작하면서 문자가 확실히 민간에게 더 많이 보급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지 않나 싶네요. 문자는 성직자들의 것이었거든요. 요즘은 보편교육으로 문맹률이 크게 낮지만 예전에 문자는 성직자나 학자들이나 알던 것이었습니다. 요즘처럼 보편적인 문자생활 시기가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게다가 마르틴 루터로 인해 성서가 대중에게 보급되기 전까지 성서는 라틴어로 기록되어 신부들이 그 내용을 해석해 주고 설교하고 뭐 그러던 시기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면죄부를 팔기도 하고 성직자들이 몹시 짭짤한 시절(?)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왕과 교황이 권력을 다투는 카놋사의 굴욕 같은 사건도 생기고 그러지요. 구텐베르크가 인쇄술을 발명했을 때도 초기에는 라틴어 출판물이 주를 이루었을 것입니다. 종이의 역사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1500년대에는 종이도 아마 귀했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요즘처럼 대량 생산, 대량 출판을 생각하면 곤란하답니다. 1500년대에 인쇄술이 발명되었다고 해도 종이를 마음껏 생산할 수 없어서라도 어쩌면 책은 흔한 물건이 아니었을 수도 있답니다.
장미의 이름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그 영화의 시대적 배경이 1800년대인가요? 책이 흔하던가요? 그 시기가 1700년대던 1600년대던 근대화 되기 이전의 세계에서 책은 흔한 물건이 아니었음을 영화든 드라마든 서구의 사극을 보시면 아실 수 있습니다. 왕좌의 게임 같은 가상의 드라마이든 정통 사극이든 서구의 역사를 다룬 드라마나 영화에서 등장하는 소품 중에 책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답니다. 살면서 제가 봤던 사극들이 아무래도 우리나라 사극이기기는 하겠지만 역사를 다룬 드라마에서 책이 가장 많이 등장하는 사극은 아마 대한민국 사극일 것으로 추측합니다. 책이 책다운 모습으로 제본된 책이 가장 많이 등장하는 드라마들이 바로 한국사극이지요.
대한민국 어느 블로거가 이런 내용을 썼다고 해서 또 나라마다 역사 드라마나 영화 뒤져가면서 다른 나라 사극에서는 책이 좀처럼 등장하지 않더라, 책읽는 모습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며 또 찾고 그러지는 마시고요. ㅡ,.ㅡ 서구 역사 드라마나 영화에서 주로 등장하는 것은 칼이나 창과 방패, 도끼 뭐 그런 것들이랍니다. 을지문덕 장군께서도 여수장우중문시(與隋將于仲文詩)를 쓰셨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 때가 언제에요. 지금으로부터 무려 1500년도 넘은 일이랍니다.
책이 소품으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사극은 대한민국 사극이다.
그러고 보니 을지문덕 장군께서 시(詩)를 지으셨다는 것이 보통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네요.
전쟁을 멈추고 살육을 멈추고 돌아가라
라는 내용이기도 하지만, 우리는 을지문덕을 장수(將帥)로만 알고 있었는데 한문으로 시(詩)를 지을 수 있으실 만큼 문덕(文德)도 함께 겸하고 계셨다는 말이니까요. 한글로 시를 쓰라고 해도 머리에 쥐 나는 거 아시지요? 시를 써 본 적도 없지만 학교 다닐 때 국어 시간에 시를 써보라면서 그러기도 하잖아요. ㅡ,.ㅡ 한문으로 시를 짓는 것은 더 어려운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피사로보다 무려 1000여년 전에... 게다가 내용도 천양지차고... 히야~~ 을지문덕 장군이 보통 분이 아니셨네요. 하긴 이택백이 고구려에는 문자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고 하더라고요. 서긍이 쓴 고려도경에도 고려 사람들은 책을 읽더라는 내용이 있답니다. 구한말에 한국을 방문한 선교사들도 한국인들은 집집마다 책이 있었고 책을 읽더라는 내용도 있고요. 문자가 그렇게나 생활화 되어 있었다면 왜 한민족은 진작에 세계로 뻗어나가지 못했을까요? 그 내용에 차이가 있었겠지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는 말씀을 하신 분이 계십니다. 저는 교회도 다니지 않고 성서 읽기도 요즘은 안하는지 못하는지 흐지부지 하지만 로마제국에 복음이 전한 것이 저는 기적이라고까지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서의 구약과 신약은 내용이 확연히 달라서 서구인들이 성서(Bible)를 어떻게 이해했는지 모르지만 16세기는 왕권신수설에 근거한 절대왕정의 시기이기도 했으므로 신약의 의미보다는 구약에 더 충실하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반면, 동양의 문적들은 성서 구약 같지 않답니다. 왕도정치와 민본정치를 설파하고 있지요. 오히려 춘추를 써서 - 중국 편향적이라는 비판이 있기는 하지만 - 통치자를 경계시키기도 했습니다. 뭐 실제 역사는 그렇지 못했지만...
대한민국은 문맹률이 거의 0%인 나라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돈을 이상으로 삼는 시절이어서 그런지 고등학교 졸업하면 웬만하면 책을 잘 안보는 시절이기도 하지요. 저 역시 책을 많이 읽은 것이 아니긴 합니다만 혹시 저 더러 어떤 책을 추천하라고 한다면
조선상고사 : 단재 신채호 (비봉출판사 추천, 다른 출판사는 권하지 않습니다)
성서(Bible)
역사란 무엇인가 : E. H. Carr
그리스 로마 신화
정도를 권하겠습니다. 교회를 다니는 분이라면 성서가 두 번째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이 못마땅 하실 수도 있는데, 성서는 짧은 책이 아니잖아요. 조선 상고사 앞부분을 읽어보시면 한민족의 역사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우리의 사상이나 철학은 왜 쇠퇴했고 강역의 신축은 어떻게 변화하였는지 등을 설명하겠다며 개략적인 구상을 보여줍니다. 주기도문에 나오지요?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하느님께 있다면서... 역사는 아와 비아의 투쟁이기도 하고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이기도 한데, 무엇을 아(我)라 하고 무엇을 비아(非我)라 하느냐면 하느님과 함께 하는 자나 민족이 아(我)이고 그렇지 못한 자나 족속이 비아(非我) 아닐까요? 우리에게 전한 문적이 살육이나 정복이 아니라 왕도정치나 민본주의에 기초한 교화에 있기도 하답니다. 누 천년 그들이 과거와의 대화를 시도했으나 총균쇠에서 보는 것처럼 그들의 대화는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말씀과는 격차가 발생하고 커지는 방향으로 그 대화가 이루어진 것 같습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묘사한 영화를 보면 웅장하고 화려합니다. 산업혁명으로 생산력이 비약적으로 증가하면서 빈부격차가 심하게 발생했고 부자들의 모습이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신들의 모습을 보는 것처럼 웅장하고 화려해 지기도 했지요. 그러나 하느님 앞에서는 웬갖 잡신들이랍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이 인간을 노예로 부리기 위해서 창조했을까요? 그리스 로마 신화에도 창세신화가 있답니다. 뭐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불을 전하는 바람에 뭐 판도가 달라지기는 했다고 하던데... 사실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다만, 인간사회에서는 빈부격차가 점점 더 벌어져서 고착화되면 인간으로 태어나서 잡신이라도 되어보려는 것인지 마른 행주를 쥐어짜려고 들기도 하지요. 뭐 금융노예? 뭐 그런 말로 설명되고 있나요?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조선상고사는 삼조선을 말하고 있습니다. 단군조선이 삼조선으로 분립되었다가 결국 중국 한나라와의 싸움에서 패하고 고구려 백제 신라 등의 삼국체계도 당나라와의 싸움에서 패합니다. 단군과 하느님이 매치가 안되실 것인데, 1592년 임진년에 왜병이 쳐들어 왔을 때 의병, 승병 외에도 논개가 적장을 안고 연못에 몸을 던졌답니다. 나라에 원치 않는 빚이 생기자 국채보상운동이 일어났지요. IMF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 서로서로 금을 내놓았습니다. 태안 앞바다에 기름을 쏟자 100만이 넘는 이웃들이 달려갔습니다. 세들어 사는 새댁이 아이를 낳자 동네 아주머니들마다 미역을 사 들고 와서 방은 따뜻한지 살피고 미역국을 끓여주는 나라입니다.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말씀이 행해지고 있는 나라지요. 침략하지 않았으되 외침에는 대항했답니다.
저도 예언 하나 할까요?
한반도를 다치는 자 그 응분의 댓가를 받으리라...
1차 대전이나 2차 대전이 그냥 일어난 것으로 알고 계시지요?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 되는 것이 우연이게요? 하느님 백성을 위협하는 댓가는 그렇게나 크답니다. 물론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대한민국 역시 그 파장을 겪겠지만... 1차 대전의 원인과 2차 대전의 원인... 을미사변과 을사늑약을 대비해서 생각하세요. 제가 쓴 다른 포스트에 청교도의 나라 미국을 일본이 돈맛을 들여서 타락시켰다고 적은 것이 있답니다. 세계의 평화를 지키라고 군사력을 키웠더니만 그걸 돈벌이에 썼지요. 쪽바리들 마냥...
글쎄요. 망상에 빠진 대한민국을 사는 어느 무지렁이의 말일지...
이렇게 써 놔도 대한민국 국사교과서는 바로잡히지 않겠지요?
가보십시다...
거거거중지(去去去中知)
앞에 나오는 내용이지만 반복해 둡니다. 엉뚱한 소리를 적어 놓은 것 같아서요.
우리에게 전한 문적이 살육이나 정복이 아니라 왕도정치나 민본주의에 기초한 교화에 있기도 하답니다. 누 천년 그들이 과거와의 대화를 시도했으나 총균쇠에서 보는 것처럼 그들의 대화는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말씀과는 격차가 발생하고 커지는 방향으로 그 대화가 이루어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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