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단고기 읽기

환단고기의 신빙성

참그놈 2022. 5. 23. 02:05

환단고기라는 책이 있습니다. 지금도 대한민국 역사학계에서는 위서라고 하는 책인데, 그 근거가 환단고기 속에 인용된 몇 개 단어나 환단고기가 세상에 나온 연대 - 1980년 경 - 등을 근거로 위서라고 평가하고 아예 무시한다고 합니다. 저는 역사학자나 역사 전문가가 아닙니다. 하지만, 하지만, 환단고기를 무조건 위서라고 할 수 없는 것은....

 

1. 중국이나 북한 지역을 마음대로 다닐 수 있는 시기가 아니었다.

2022년 지금도 한국인은 중국 역사 지역을 함부로 다닐 수 없습니다. 여러 역사가들이 중국을 방문하고 답사하는데도 곳곳에서 중국 관계자들의 제재를 받았다는 이야기가 하나 둘이 아니지 않습니까. 1980년 이전에 대한민국이 중국과 수교한 상태였나요? 북한 지역에는 마구 다닐 수 있었고요?

 

북한을 탈출한 탈북민들 중에는 북한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남한으로 내려오기도 하고 그런답니다. 우리의 역사를 찾기 위해서? 아닙니다. 먹고 살려고요.

 

2. 한 사람이 많은 역사서를 모두 외우고 있을 가능성

환단고기가 다루고 있는 역사서가 하필 고대사로부터 고려시대까지인데, 그에 관한 역사를 짜집기하려면 중국 역대 역사서들 중에 사기, 한서, 후한서, 삼국지, 진서, 수서, 구당서, 신당서, 금사, 요사, 송사, 원사, 명사 까지는 모두 파악하고 있어야 가능합니다.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1980년 이전의 대한민국 경제상황이나 기타 여러 가지 조건을 감안하면 낙타가 바늘구멍을 지나가는 것 만큼 어려운 일로 생각됩니다.

 

요즘은 디지털 세상이라 일부 역사서는 온라인에서 열람이 가능하지만 1980년 이전에는 대한민국에는 컴퓨터 라는 말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던 시절입니다. 625라는 폐허를 딛고 막 경제 성장을 하려던 무렵인데, 그때 당시에 대한민국 역사 연구의 범위와 보유 장서는 얼마나 되었을까요?

 

이유립 선생이 혹시 거부(巨富)였다면 혹시 가능할 수도 있는데, 역사에 대한 열정을 가진 거부였다면, 이유립 선생의 생활상을 알게 해 주는 방송영상을 보면 그런 모습은 또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요즘 말로 치면 쪽방 같은 곳에서 사셨다고 하는 것 같더라고요.

 

 

3. 독립운동가들이 지어냈다?

단군을 독립운동에 활용하기 위해 지어냈다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독립운동가들은 단군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그리고 단군 이야기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단군 47세 계보까지 전해졌다고 하는데, 왕조시대에는 역사서를 아무나 함부로 가지고 다닐 수 없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당시 유학 경전을 익혀 과거시험을 통해 선발된 관료들을 제외하면 조선 사회에서는 단군이 상식이었다는 말이 됩니다. 1950년대에 나온 신문들에는 모두 4000년 역사라고 하여 단군을 역사적 사실로 기록하고 있는 모습도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 신문사에서 그런 서비스 하잖아요?

 

대한제국에서 처음 만든 국사교과서에도 단군을 기록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는 유학 경전을 익혀 과거시험을 통해 선발된 관료들조차도 단군을 알고 있었다는 말이 됩니다. 고종황제도...

 

 

먹고 산다는 것이 뭔지, 경제 건설에 쫓기다 서서히 잊혀졌다고 해야 할까요...

부산 구포역에서 내려 오른쪽길로 500여M를 가다보면 생활박물관이라고 할까요? 작은 박물관이 있습니다. 1950년대 60년대 70년대 여러 물건들을 전시하고 있는데, 서기를 도입하기 전에 대한민국 교육기관에서 수여한 상장에는 모두 단기(檀紀)로 표시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도 그 박물관이 있는지는 모르겠네요.

 

 

조금만 생각해 보면 환단고기가 위서라고 주장하는 것에는 여러 가지 맹점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왜 지금껏 생각을 못해봤을까요. 생각들 해 보세요. DTP는 고사하고 활판인쇄조차 쉽지 않던 시대에 일본군에게 쫒겨가면서 역사 공부할 시간 있었겠어요? 게다가 625로 온통 폐허가 되었는데? 게다가 1960년대에 대중교통이 발달했으면 얼마나 발달을 했을 것이며... 1970년대에도 시골에서는 초등학생들이 매일 4km 이상을 걸어다니며 학교를 다니던 때입니다. 환단고기 본문 내용은 둘째 치고 시대적 발전 상황을 고려하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1980년 경은 칼라TV도 흔치 않던 시절이었답니다. 여러분 17인치 흑백 TV 실물로 보신 적 있으세요?

 

대한민국이 일본처럼 경제 부국인 상황에서 환단고기가 출현했다면, 누군가 위서라고 비판한 것이 일리가 없지 않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이 되네요. 하지만 1980년 경 대한민국 1인당 GDP는 2000$이 아마 안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역사학계는 소위 식민사학이라는 강단사학계가 장악하고 있어서 역사서를 외부로 유출시키지도 않았을 것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