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살다 보니 논어 해설서를 한 번 읽어본 적은 있지만 논어가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중시되고 있는지 실감은 못하고 살았습니다. 또, 하필 제가 처음 구입한 논어 해설서의 해설이 이상하게 느껴져서 빨간색 펜으로 벅벅 그어놓은 기억도 있습니다. 물론 문고판이라 책은 작았지만, 평소에도 책을 꾸준히 읽던 놈도 아니었고 동양고전을 읽어 보지 않던 처지라 그랬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되더라고요. 벌써 20여년 전 일이지만요. 제가 봤던 논어의 해설 중에는
자기가 몰랐던 것을 다른 사람에게서 배워 그 배운 것을 완전히 깨닫게 될 때에는 감탄을 금치 못할 것이다
라고 적혀 있는데, 뭔 말인지 소리인지... 부처님 말씀 중에
내가 모르면 남도 모른다
는 말씀도 있잖아요. 게다가 생이지지 학이지지 험이지지(한자 생략) 라는 말도 있고... 물론, 모르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서 배우는 경우가 없지는 않습니다. 서로 가르쳐주고 배우는 관계도 있을 수 있고, 나는 도통 모르는데 다른 사람은 완전히 통달한 사람도 있을 수 있지요. 뭐 어쨌거나 제가 처음 구입한 논어 해설서에 적힌 내용들에 공감을 할 수 없어서 그랬는지 저는 논어가 대한민국 사회에서 얼마나 중시되고 있는지 모르고 살았습니다. 논어 해설서만 해도 아마 모으면 최소 수백 권은 되지 싶은데 그닥 관심이 가는 것도 아니고 그렇더라고요. 그런데, 오늘 유튜브 영상을 보다가 성균관대 이기동 교수께서 논어에 대해 소개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영상을 보고 나니 논어(論語)가 우리 사회 뿐만 아니라 아시아에서도 상당한 비중과 영향력을 가지고 있나 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짬짬이 논어를 다시 읽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러네요.
https://www.youtube.com/watch?v=hRYgeub2fx0
영상에서 공자가 구이(九夷)에 가서 살고 싶다고 한 까닭을 설명합니다. 고조선을 살던 우리 선조들은 모두 군자(君子)들이었기 때문에 그랬다고 하네요. 그리고 인(仁)이라는 글자가 이(夷)라는 글자와 고대에는 같은 뜻이었다는 설명도 해 주십니다.
인(仁) = 이(夷) 또는 이(夷) = 인(仁)
이(夷)라는 글자에 대해서도 설명을 해 주십니다. 大 + 弓 이라고 활을 잘 쏘던 키큰 사람이라고..
저는 살면서 활 시위를 당겨본 적이 없는데, 여러분들은 혹시 활 시위를 당겨보신 적이 있습니까? 활 시위 당기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닌가 보더라고요. 기운도 좋아야 하고 활 시위를 당기는 요령도 알아야 하는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합니다. 한 마디로 신체적으로 매우 건강해야 하고 활 쏘기를 꾸준히 해서 수련도 계속해야 가능하다는 말인데, 거기다 구이(九夷)가 군자(君子)들의 나라라고 했으니, 어쩌면 서경(書經)에서 말한 군자무일(君子無逸)을 실천했던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공자는 춘추를 저술했지만 춘추시대 말 전국시대 초기의 사람으로 알고 있습니다. 기원전 450여년 전으로 알고 있는데, 공자가 죽을 때 유언으로 한 말이
태산이 무너지는구나, 대들보가 쓰러지는구나, 철인이 시드는구나!
라고 했다 합니다. 그로부터 얼마 후 중국은 진초연제한조위 일곱나라가 쟁투하는 시기를 200여년 정도 겪지요. 진시황이 최초로 중국을 통일했다고 하지만 멀쩡한 나라가 있었겠습니까. 와장창 무너졌지요. ㅡ,.ㅡ
진시황이 죽고 고조선과 한 무제 유철과의 전쟁으로까지 이어집니다. 만승지국 시기군자 필천승지가, 천승지국, 시기군자 필백승지가(한자 생략) 하는 맹자 이야기 아시지요? 그런 인륜이고 도덕이고 땅바닥에 떨어져 버린 여러 나라를 진시황이 통일했고 그런 진나라를 한나라가 이어받아서는 군자들의 나라와 전쟁을 일으킵니다. 흔히 알려진 조한전쟁(고조선 VS 한漢)입니다. 조한전쟁에서 고조선이 패하지는 않았지만 사기 조선열전을 읽어 보시면 조한 전쟁 이후 혼란한 상황이 된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공자의 사상이 후대에 전해질 수 있었던 것은 제자인 자공의 홍보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자공은 요즘 기준으로 말하면 재벌이었다고 하더라고요. 문제는 자공이 전한 공자의 사상이 중국 고유의 사상이었겠는가? 하는 것인데, 공자에 관한 내용 중에 공자는 동이족이었다거나, 공자가 은나라의 법을 따르지 않고 주나라의 법을 따르기로 했다던가 하는 것들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 공자가 살던 시기는 주(周)나라가 성립된 이후로도 600여년이 지난 후였음에도 은나라의 법을 따르지 않고 주나라의 법을 따르겠다는 말을 했다는 것은 소위 한족(漢族)이라거나 화하(華夏)족이라는 개념이 완전히 정립되지 않았다는 것을 반증하기도 합니다. 주나라는 봉건제 국가였거든요. 종주국의 인증을 받기는 하지만 독립성이 있었던 나라들이 많았다는 것이고 공자가 살던 당시까지만 해도 중국 전역에는 동이족의 나라였던 은나라의 전통과 법, 풍속 등이 여전했다는 말이기도 할 것입니다.
맹자가 공자보다 100여년 후의 인물로 알고 있는데, 맹자에는 세율에 대해 이야기 하는 부분이 나옵니다. 맥국(貊國)을 예로 들며, 맥국은 1/20 인데, 중국은 1/10으로 해야 한다면서... 어쩌면 공자시대까지 동이족 국가였던 은나라의 풍속이 만연하던 당시 중국 내부의 풍속이나 체계를 맹자 역시 바꿔보려 노력을 했나 봅니다. 은나라의 예나 법보다 주나라의 예나 법을 따르겠다고 한 것은 공자였으나 그것을 보다 구체적으로 실천하려 한 것은 맹자가 아니었는가? 하는 것이지요.
논어가 어떤 책인지 잘 모르고 살기도 했고 크게 관심도 없기도 하고 그랬는데, 이기동 교수의 강의 영상을 보고서는 약간 흥미가 당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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