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라는 카테고리를 만든 김에 포스트 하나 씁니다. 그나마 외우고 있는 구절이거든요. ㅡ,.ㅡ
子曰, 學而時習之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
人不知而不慍不亦君子乎.
해석은 다들 아시지요?
자(子)는 아들을 뜻하는 글자지만 성인(聖人)을 뜻하는 경어로 쓰기도 합니다. 그래서 공자, 맹자, 노자, 장자, 묵자 등등 여러 훌륭한 분들의 성씨에 자(子)를 붙여 공경한다고 해야 하나? 그런 뜻으로 씁니다. 보통은 자왈(子曰)을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이라고 해석하는데, 자(子)라는 글자가 가진 뜻이 공자나 맹자 같은 성인(聖人)이 아니라 사람의 품성이라고 한다면, 해석이 어떻게 바뀔까요? 엉뚱한가요? ㅡ,.ㅡ
자(子)는 아들만 뜻하는 것이 아니라 자식을 뜻하는 글자이고, 사람은 갓 태어나면 우는 것 밖에 모릅니다. 젖달라고 보채고 기저귀 축축하다고 울고... 그러나, 사람이 태어나면 그 본성은 선하다고 했는데 잘 가르치고 배워서 그 본성을 잘 지키다 생을 마감하면 공자나 맹자, 증자 이러면서 성씨에다 자(子)자를 붙여주는 것이고, 마구잡이로 살면서 악명을 떨치면 도척(盜拓)이라고도 불리고 뭐 그러면서 자(子)자를 안붙이잖아요. 그러므로, 자(子)는 성인이 아니라 하늘이 사람을 낼 때 부여한 사람의 품성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자(子)를 공자니 맹자니 하는 성인이 아니라 사람의 품성이라고 했을 때,
子曰, 學而時習之不亦說乎.
사람(의 품성 자체)는 배우고 익히기를 좋아하니 그 때마다 즐겁지 않겠는가?
라고 해석하면 무리한 해석일까요?
주자의 해설에는 학(學)자 한 자를 두고 주석을 몇 페이지나 붙여 놓은 것 같더라고요. 성인의 가르침을 본받아 배운다거나 하면서... 원체 한문도 못하는데다 한자들이 오글오글 모여있는 모습이 골치가 아파서 못읽어 보기도 했습니다. ㅡ,.ㅡ 그러나, 대일항쟁기(일제강점기)를 지나고 625도 겪고 그러면서 한문학의 맥이 끊겼다고 할 수는 없지만 유학을 숭상하는 가문에서나 일부 전해지고는 논어를 두고 현대적인 해석을 하기에 바쁘지요? 그리고 성인의 가르침이 어떤 것인지 한글로 된 해설본에는 잘 나와 있지도 않답니다. 그럼 요즘 우리가 자랄 때나 요즘 청소년들이 뭘 어떻게 살았고 또 살고 있는지 보면 되지 않겠습니까.
막말로 공자 저야 배우고 익히는 것이 좋아서 여기저기 다니며 물어가며 배웠다지만, 공자가 배운 것을 똑같이 배우라는 법은 없지 않습니까. 게다가 요즘 아이들더러 그런 거 배우라고 하면 배우려는 아이들도 없지 않을까요? 스타크래프트가 유행을 할 때는 프로게이머가 되겠다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연습하고 검토하고 아이돌이 인기를 끄니까 춤추고 노래하는 거 연습하고 유튜버가 되겠다고도 하고... 원래 사람의 품성이라는 것이 배우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답니다. 자기가 배우고 싶은 것과 누군가 배우라고 강요하는 것에서 갈등이 있는 것이지... 그렇지 않나요?
최근 뉴스를 보니까 어쩌면 갓 20대가 된 청년들이 법학을 열심히 공부할 것 같은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어쩌면 사법고시가 부활될 수도 있다고 생각되기도 합니다. 전세가 낼 때는 5%, 받을 때는 43%, 기타 상속법이나 여러 법률 적용의 현실을 실감하는 시절이지 않습니까. 게임이나 춤, 노래 그런 것 배우겠다고 애쓰는 자녀를 둔 부모님들도 잘 선도하시면 자녀를 뛰어난 법률가로 양육하실 수도 있고요. 훌륭한지는 모르겠네요. ㅡ,.ㅡ
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
그러게 친구 없이 사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게다가 요즘은 꼭 대면접촉을 하지 않아도 온라인 상에서 친분을 쌓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리하여, 논어나 맹자, 플라톤 대화, 최인훈 광장, 신영복 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 등등 여러 명저들을 소개하고 뭐 그러는 채널도 있는 반면, 코인이 오른다, 집값이 오른다, 무조건 오른다 자꾸 오른다 계속계속 오른다 오르기만 한다 뭐 그런 채널도 있고 그렇습니다. 결국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는 말이지요. ㅡ,.ㅡ
人不知而不慍不亦君子乎.
배우고 익히고 그러면서 대인관계도 생기고 뭐 그러는 가운데, 무엇을 배우고 또 무엇을 익히느냐에 따라, 또 그에 따라 누구와 어울리느냐에 따라 서로에 대한 관심은 다르지 않겠습니까. 온라인으로 만나든 오프라인으로 만나든 뭔가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서로 가르치고 배우면서 토론하고 논의하는 사람들이야 서로의 수준이나 경지를 모를지라도(人不知) 각각이 노력하는 분들인텐데, 코인이나 부동산 주식 등과 어울리면 상황이 묘해지지요? 누구는 대박이 나기도 하지만 또 누구는 쪽박이 되기도 하고 금융노예가 되기도 하고 뭐 그런다고 하더라고요. 어쨌거나 화를 내지 않아야 군자(君子)라고 할 수 있다네요. ㅡ,.ㅡ
위 문장 세 개를 순서를 바꿔 볼까요?
子曰, 學而時習之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
人不知而不慍不亦君子乎.
로 배열된 것은 아래처럼
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
人不知而不慍不亦君子乎.
子曰, 學而時習之不亦說乎.
人不知而不慍不亦君子乎.
子曰, 學而時習之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
혼자 놀다가 뭔가에 흥미를 느껴 그것에 빠지기도 하고, 뭘 생판 모르고 있다가 친구 때문에 알게 되기도 하고, 그러면서 대인관계라는 것이 보다 밀접해지기도 하고 반대로 소원해지기도 합니다. 서로간에 연락도 뜸해지기도 하지요.(人不知) 게다가, 맨날 낄낄거리고 놀던 무리 중에 누군가가 논어나 맹자 같은 고리타분한 고전(古典)에 갑자기 흥미를 느껴 열심히 읽으려 들면,
야! 니가 언제부터 책 읽었다고...
그러면서 배척당하기도 하고 그러는 경우도 있습니다. 세 문장에 순서가 딱히 정해진 것은 아니라는 말일텐데, 시절이 성인의 가르침을 가르치고 배우는 그런 때가 아닙니다. 함께 어울려 낄낄거리며 배우는 것이나 혼자 외로이 배우려는 것이나 지금 배우려고 하는 것이 좋은가 싫은가를 떠나 옳은가 틀리는가? 뭐 그런 생각은 한 번씩 해 봐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어쨌거나 배우는 이나 배우려는 이는 남이 남이 알든 모르든 그 길을 갈 것 아닌가요. 위 문장 세 개는 배열에 때라 다르게도 배열할 수 있습니다. 3X3=9 잖아요.
엉뚱한 해석이지요? ㅡ,.ㅡ
논어 라는 책을 읽어보겠답시고 책을 사려고 했더니 뭘 사야할지도 모르겠고 주변에 한학(漢學)을 한 사람은 고사하고 제 주변에는 한문고전을 읽는 사람도 거의 없는지라 책 한 권 사서 옥편이랑 자전 찾아가며 혼자서 짱구를 굴리니까 뭐 위와 같은 엉뚱한 이해를 하게 되기도 되더군요.
논어에 대해서 잘 모르기도 하고 뭐 그러면서 살았는데, 유튜브에서 논어를 설명하는 어느 영상을 보니까 공자는 무관의 제왕이라고 하기도 하더군요. 사서(四書) 중 대학(大學)의 주자 서문에 공자가 시절을 만나지 못해 제왕이 되지 못했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유자(儒者)들에게는 영원한 제왕이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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