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이런 포스트는 논어를 숱하게 읽어보고 써야 하지만, 그냥 읽어가면서 써 보려 합니다. 저는 20여년 전에 문고판 해설서로 논어를 한 번 읽어보고는 그 이후 논어에 대해서 거의 읽어 본 적이 없습니다. 지금 주로 읽는 책은 단재 신채호 선생의 조선사(조선상고사)인데, 이틀 전에 주문한 세주완역 논어집주대전이 오늘 도착하기도 했고 그래서 하나 작성해 둡니다. 주로 읽는 책을 제외하고 짬짬이 읽을 생각이므로 포스트가 작성되는 간격이 불규칙할 것입니다.
우선은 제가 구입한 세주완역 논어집주 대전이라는 책의 편집에 실수가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아래 두 사진을 보시면 논어가 시작되는 편에 학이제일(한자 생략)이라는 제목을 넣고서는 실제 내용이 시작되는 18쪽에는 학이(學而)라는 어구가 생략된 채, 곧바로 此爲書之首篇故所記多務本之意로 시작합니다. 지시대명사가 지시하는 대상이 내용 밖에 있는 것이고 머리(首)를 날려버린 느낌이네요. 20쪽에 여백이 충분하던데... 하긴 겉표지를 포함한 책 전체를 본문으로 생각하면 되기는 하겠네요.
내용을 복원하면(?)
學而
此爲書之首篇故所記多務本之意
이 편은 책의 첫 편이다. 그래서 기록된 것에는 근본에 힘쓴다는 의미의 것이 많다
가 될 것입니다. 사진에서 보듯이 실제 책에서는 띄어쓰기로 문법적인 구분을 표시했는데, 나쁘지 않아 보입니다. 위 문장에서 생각하실 것은 일단 학이(學而) 라는 편명과 서(書)라는 글자라고 생각합니다. 서(書)자를 글이나 책이라는 뜻으로 이해들 하고 계시지요? 요즘은 책이 워낙 많은 세상이기도 하고 근대적 학문과 교육을 하는 시절이므로 글이나 책으로 이해를 한다고 해서 틀리지는 않습니다만, 그 보다는 절대적인...? 뭐 그런 뜻을 포함하고 있다고 이해하셔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하도낙서(河圖洛書) 라는 말 들어보셨지요? 황하에서 용마가 그림(圖)을 이고 나오고 낙수에서 거북이가 등에다 뭘 지고 나왔는데 그걸 서(書)라고 합니다. 그래가지고는 주역이 생기고 뭐 그러면서 주역에 관한 해설서가 아마 천만 권 이상 될 겁니다. 거북이 등에 그려진 무늬 하나가 수백 만권의 책으로 풀어도 다 못푸는 ... 절대적 기준... 뭐 그런 뜻이지요. 서점이나 헌책방, 아니면 고물상 등에서 폐지로 팔린 그런 종이뭉치들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중국에서 지어진 책 중에 서경(書經)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원래는 서(書)라고도 하고 상서(尙書)라고도 하다가 경전(經典)의 반열에 오른 책입니다. 중국의 문학, 철학, 사상 등이 모두 서경(書經)에서 유래한다고 합니다. 논어 맹자 대학 중용을 사서(四書)라고 하는데, 사서(四書)의 서(書)도 바로 그런 뜻이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중국에서 나온 역사서들 중에 사마천 사기 이후로 한서, 후한서, 진서, 구당서, 신당서, 수서 뭐 그런 책들이 있지요? 역사서들 이름 뒤에 서(書)자는 모두 새로운 시작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중국의 문명이 서경(書經)으로부터 시작되었으니까요. 속된 말로 이야기 하면 이전의 것들은 다 잊어라. 내가 바로 짱(기준)이다! 뭐 그쯤 되는 말이지요.
요즘처럼 근대식 교육에 맞추어 보편교육을 하던 시대로 생각하지 마시고 소수의 귀족들만 문자(漢字)를 익히던 그런 시절과 한자의 기원이 갑골문에서 비롯했는데, 갑골문은 원래 신(神)과의 소통을 위한 것이었다는 내용 등도 감안하셔야 합니다. 아무나 글자를 배울 수도 없었고 가르치지도 않았습니다. 왕조시대에는 중인계급이 있어서 - 중국에도 있었겠지요? - 실무에 활용되는 글자들은 가르쳤겠지만...
首篇
이라고 했지요? 초편(初篇)이라거나 일편(一篇)이라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사실은 한문을 잘 모르기 때문에 첫번째를 뜻하는 어구들이 어떤 것이 있는지 잘 모릅니다. 하지만, 수(首)자를 쓴 것은 어떤 생명이든 머리가 잘리면 죽지요?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글은 정치를 해야 하는 귀족들을 위한 것이었고 귀족이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되는 관리나 백성들이 괴롭답니다. 적보다 더 무서운 것이 무능한 지휘관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수편(首篇)이라고 한 것을 책에서는 '첫 편'이라고 해석했는데, 나쁜 해석이라기 보다 좀 더 생각을 해 보자는 것이지요.
所記多務本之意
所記는 기록된 것이라는 수동태 문장이라고 합니다. 수동태 형태가 소(所)자를 쓰는 것 외에도 여럿 있다고 하던데, 저는 모릅니다. 소(所)자만 알아요. ㅡ,.ㅡ 그래서 해석은 '기록된 것'이 될 것인데, 문제는 그 다음 나오는 어구입니다. 多務本之意가 문제인데, 한문이 재밌는 부분이기도 하고 지랄같은 부분이기도 한 것이, 자동사 타동사 구분도 없고, 시제도 없고, 명사인지 동사인지 어쨌거나 참 지랄같다가 어구를 두고 생각을 하다 뭔가 뜻이 통하면... 아! 그런 뜻이었어?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책의 해석에는
근본에 힘쓴다는 의미의 것이 많다
라고 되어 있는데, 다(多)는 많다는 뜻도 있지만 - 자타동사 구분 없다고 했지요? - 많게 하다 라는 뜻으로 풀어도 된답니다. 꿈보다 해몽이지요. 그래서 해석을 다시 하면
근본에 힘쓰는 까닭을 풍부하게 하는 기록들이다. (유추해석 확대해석 역지사지 등등으로 통찰을 이룰 수 있는 내용이다)
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현재도 중국의 인구는 14억으로 세계에서 제일 많은데, 역사적으로도 중국의 인구는 항상 많았습니다. 조선은 3정승 6조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중국은 3공 9경 체계였지요? 궁궐의 크기도 직책의 종류도 모두 많았습니다. 그 중에서 귀족 자제가 과거나 뭐 시험을 통해 관리로 선발이 되면 직책에 따라 거느리는 부하들의 수도 많을 것이고 그 상관들도 많을 것이고 한데, 근본은 백성을 잘 다스리는 것에 있지요? 나중에 나오지만 사민이시, 절용이애인(한자 생략) 같은 구들이 있지 않습니까.
농경을 기본으로 하는 시대였으므로 평상시와 풍년이 들었을 때, 또 흉년이 들었을 때, 워낙 땅덩이가 큰 나라이므로 어느 지역은 풍년이고 어느 지역은 흉년일 때, 홍수가 났을 때 등등 백성들을 잘 먹고 잘 살게 하기 위해서, 또 재난이나 기타 여러 난관에 봉착했을 때 백성들의 피해를 최소화 하기 위해서, 기타 등등 기타 등등 여러 가지 경우의 사건과 마주하게 될 것인데, 그 요체가 바로 학이(學而)다 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학이(學而) 편에 실려 있는 16개 문장(章)이 바로 그것이다.
뒤편의 해설을 보시면, 주자가 '학이(學而)는 편명(篇名)이라서 아무 뜻도 없다' 라고 말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주자처럼 아무 뜻도 없다고 생각하시면 몹시 곤란하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저는 성리학도 모르고 양명학 같은 것도 모릅니다. 다만, 가렴주구나 가정맹어호 라는 한자성어가 전래되고 있다는 것은 압니다.
학이(學而)는 배우고... 그 다음은?
이라는 뜻이므로, 목민관이 되느냐 탐관오리가 되느냐의 기로에 서게 되는...
아래는 도산 안창호 선생의 쾌재정 연설 일부입니다. 공자가 가정맹어호(한자 생략)를 말한 것이 2500년이 넘지요? 도산 안창호 선생의 쾌재정 연설은 1900년대 이전에 쓰인 것입니다. 배워서, 배운 다음에 그 이후에 어떻게 하느냐? 학이(學而)라는 편명이 바로 그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무 뜻이 없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되네요.
도산 안창호 선생의 쾌재정 연설 일부
세상을 바로 다스리겠다고 새 사또가 온다는 것은 말뿐이다. 백성들은 가뭄에 구름 바라듯이 잘살게 해주기를 쳐다 보는데, 인모(人毛) 탕건을 쓴 대관, 소관들은 내려와서 여기저기 쑥덕거리고 존문(存問)만 보내니, 죽는 것은 애매한 백성뿐이 아닌가? 존문을 받은 사람은 당장에 돈을 싸 보내지 않으면 없는 죄도 있다 하여 잡아다 주리를 틀고 돈을 빼앗으니, 이런 학정이 또 어디 있는가? 뺏은 돈으로 허구한 날 선화당에 기생을 불러 풍악 잡히고 연광정에 놀이만 다니니, 이래서야 어디 나라 꼴이 되겠는가? 진위 대장은 백성의 생명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 책임인데 보호는 커녕 백성의 물건 빼앗는 것을 일삼으면 우리나라가 어떻게 되겠는가?"
제가 조선시대에 태어나서 학이(學而)라는 편명에는 아무 뜻이 없다는 주자의 주장은 틀렸다고 했다면 아마 사문난적(斯門亂賊)으로 몰려서 뒤질 수도 있었으려나요? 그 보다, 젠장, 문장 하나 가지고 포스트 분량이 이 만큼이나 되네요. 에궁... 세주완역 논어집주대전이 4권 2500페이지 정도 되던데 책이 빽빽합니다. 보통의 책보다 글씨 크기가 작은데 보통의 책처럼 글씨 크기도 좀 크게 하고 그러면 3000페이지는 넘을 것 같네요. 어쩌면 이거 쓰다가 중지될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은 몸이 아파서 아직 일을 못다니거든요. 그래서 책도 좀 볼 수 있고 그런데, 몸이 나으면 포스트가 중단될 수도 있고요. 뭐 인기블로거도 아니고 그렇지만 혹시나 빵이나 들러주시는 분들이 계실 수 있으니 미리 양해 말씀 드립니다.
요약.
논어라는 책은 정치의 길을 걸어야 하는 귀족 자제들을 위한 책이었다.
서(書) 라는 글자는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책과는 의미가 다르다. 절대적인 원칙이나 기준이라는 뜻을 함의하고 있다.
학이(學而)는 정치의 요체다? (왕조시대 중국 기준으로)
학이(學而)라는 편명에는 아무 뜻도 없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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