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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재 신채호 조선상고사(朝鮮史) 읽기 3 - 조선사 서술 요건, 일제의 검열

참그놈 2022. 5. 28. 11:39

비봉출판사 박기봉 역 조선사(조선상고사) P.27에는 단재 신채호 선생이 아와 비아의 투쟁이라는 관점에서 조선사(朝鮮史)를 서술하겠다면서 그 기준을 설명하는데, 처음에 언급한 것이

(一) 최초 문명은 어디에서 기원하였으며

 

라는 것입니다. 요즘은 국사교과서가 오스트랄로 피테쿠스나 호모 이렉투스 등을 말하면서 인류의 태생부터 구석기 신석기 시대 등을 언급하지만, 국사교과서나 일반 대중 역사서가 그런 체계로 쓰인 것은 얼마 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가령, 김부식의 삼국사(삼국사기)나 일연의 삼국유사 등에 오스트랄로 피테쿠스, 네안데르탈인, 사피엔스 같은 말들이 안나오지 않습니까. 사기, 한서, 후한서 같은 중국측 역사서도 마찬가지입니다. 1960년대 이전에는 최초문명을 언급하는 그런 국사교과서나 역사서는 아마 없었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대일항쟁기에 근대적 학문방법이 도입되었다고 하지만 그 이전의 왕조시대에는 역사 라는 것 자체가 학문의 대상이 아니기도 하였고 고고학이나 인류학의 성과를 반영하던 시기가 아니었으니까요. 공자가 지었다는 춘추나 춘추좌씨전 같은 책은 역사서이지만 경전(經典)으로 분류되었으니 읽기가 가능했지만요.

 

최근에 발간되는 국사교과서나 대중 역사서, 가령 이이화님의 한국사 이야기 등을 읽어 보시면 오스트랄로 피테쿠스나 호모 하빌리스, 사피엔스 등등을 모두 언급합니다. 인류의 시작은 언제부터였는지 그리고 우리 민족의 시작은 언제부터였는지 등을 밝히면서 내용을 시작하지만, 고고학이나 인류학 등이 도입되기 전에 단재 신채호 선생이 조선사(朝鮮史)를 신문에 연재할 무렵에 최초 문명은 어디에서 기원하였는지를 조선사 서술의 기준으로 삼은 것은 일대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마 당시에는 최초 문명의 기원을 따지는 그런 역사서는 없었을 것이고 살면서 그런 식으로 저술된 역사서가 당시에 있었다는 말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을 민족사학자라고 하지만 이덕일 박사의 영상에 따르면 단재사학을 계승하고 있는 대학이 한 곳도 없다고 합니다. 학문이 뭔지 모르지만, 근대적 학문방법이 도입되던 시기 아마도 서구의 역사 문헌들을 많이 읽으셨는지 우리로서는 조선 문명의 기원 같은 것은 꿈에서도 생각을 못했을 시기에, 최초 문명의 기원을 서술요건으로 삼은 것을 보고 생각컨데 단재 신채호 선생이 한국 근대 역사학의 선구자라는 생각은 드네요.

 

 

한편, 박기봉 역 조선사(조선상고사) P.28에

 

아의 문화의 강보에서 자라온 일본이 아의 한 부분이 되어 있었던 것이 현재는 그리 되어 있지 않은 사실과

 

라고 적힌 부분이 있는데, 해당 부분의 단재 신채호 선생 기념사업회에서 출판한 조선사(조선상고사) P. 30에는

 

아의 문화의 강보에서 자라온 일본이, 아의 巨X[室]이 되던 것이 아니 되어 있는 사실이며

 

로 적혀 있습니다. 해당 내용은 일본이 단재 선생의 원고를 검열하여 일본에 불리하거나 불쾌한 부분을 X 로 표시하여 신문에 기고했다고 하는데, [室] 자로 쓴 것은 고(故) 천관우 선생이 추측하여 추가한 것이라고 합니다. 인터넷에서 찾아 볼 수 있는 해당 부분에 대한 설명 또는 역사의 아침 김종역 역본에서는, 단재 선생이

신하(臣下)

라고 쓸 것을 단재 선생께서 검열을 피하기 위해

거하(巨下)

라고 썼는데, 일제 검열관이 눈치를 채고 거(巨)자의 뒷글자를 지워서 X 로 표시하여 결국

거X(巨X)

로 되었다는 추측성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단재 선생이 자신의 글에 대한 강한 자부심이라고 해야 할지, 타협할 줄 몰랐다고 책에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 단재 선생의 성향을 보았을 때 검열을 피하기 위해 臣자를 巨자로 쓰거나 하는 행위 따위는 하지 않으셨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그렇다면 巨자 다음에 어떤 글자가 있는 것이 자연스러울까?를 생각해 보게 되는데 저는 수(帥)자라고 추측이 되네요.

거수(巨帥)

라는 말입니다. 일종의 장군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단군 조선에 70여개 거수국이 있었다고 하지요? 그리고 거수(巨帥)라는 말은 한자 단어로 현재도 있는 단어입니다. 조선왕조 시대에 통신사를 파견하기도 하고 뭐 그런 관례가 있지 않습니까. 일본과 그닥 친밀하지는 않았지만 외교나 통상 관계가 있었고 조선왕조가 일본에 대해서는 상국(上國)의 지위에 있었다는 것이 상식입니다. 근대적 공업화를 먼저 선취하면서 그 상황이 역전(?)되기는 하지만요. 왜 물음표를 붙였는지 궁금하시지요? ㅡ,.ㅡ

 

근대적 공업화를 선취하게 되므로써 경제력이나 기술력 차원에서는 일본이 거의 절대적 우위를 점하게 된 것은 맞습니다. 지금도 일본의 기술력은 상당한 것으로 아는데, 맨날 성리학만 외던 조선시대를 생각하면 그 격차는 지금보다 훨씬 더 컸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만한 문화적 역량을 향상시키지는 못했지요. 그래서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사건이나 저지르고 그럽니다.

 

천관우 선생이

 

아의 巨X[室]이 되던 것이 아니 되어 있는 사실이며

 

부분에 생략된 X 가 [室]이 아닐까? 하고 덧붙이셨다는데, 거실(巨室)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대대로 번창한 높은 문벌의 집안" 이라는 뜻입니다. 일본이 대대로 문벌이 번창했던 나라였나요? ㅡ,.ㅡ 

 

현재는 영국과 함께 일본이 사전을 편찬하는 대표적인 국가가 되었습니다. 그 외에도 저는 일본의 역사를 잘 모르지만 신문에서 일본의 역사에 대해 소개하는 어느 특집 기사를 봤더니 수 백년 전부터 일본은 책읽기가 성행했던 적이 있고 지금도 일본에서는 노인들이 특히 책을 많이 읽는다는 내용도 어디서 보기는 했습니다. 수백 년 전부터 독서문화가 성행했음에도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사건을 일으켰다는 것은, 또 제국주의 시대에 일본이 아시아 여러 나라들에 저지른 만행을 반성할 줄 모른다는 것은, 수백 년간 일본에서 읽힌 책들이 일본인들의 그런 무지를 깨치는 데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는 책들이어서 그렇지 않나 싶습니다. 지금도 일본의 여러 서점에는 혐한 반한 서적들이 즐비하고 베스트셀러가 된다고 하지 않습니까. 돈을 벌고 싶으면 혐한 서적을 쓰라는 말까지 있다고 하더군요. 도무지 혐한이나 반한 감정의 근원은 무엇일까요?

 

뭐 그런 것은 접어두고, 일본이 조선총독부를 앞세워 한민족(韓民族)의 역사를 왜곡, 조작, 날조 하면서 가장 심혈을 기울인 것이 개국사를 삭제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즉, 환국이 있었다(昔有桓國)과 같은 고대로부터 국가가 있었다는 기록은 모조리 찾아서 삭제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신문에 연재된 것 때문인지, 그리고 하필 일본을 언급하고 있어서였는지 최초 문명이 어디에서 기원하였는가 라는 문제보다 일본이 巨X인 것에 시선이 확 끌려서, 그리하여 느껴지는 불쾌감? 뭐 그런 것으로 인해 

(一) 최초 문명은 어디에서 기원하였으며

 

라는 서술요건이 기록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은 해 봅니다. 최초 문명은 당연히 조선 최초의 문명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