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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의 쟁점들에 대한 각국 학계의 시각(이덕일의 한국통사)

참그놈 2022. 6. 3. 11:31

이 포스트는 짬짬이 추가될 내용입니다. 저는 세벌식390 사용자인데, 아직 자판에 익숙치 않아 오자가 종종 있을 수 있습니다.

 

 

제목에 쓴

한국사의 쟁점들에 대한 각국 학계의 시각

 

은 이덕일의 한국통사 P.568에 있는 내용입니다. 책은 재작년 6월경에 구입해서 대충 한 번은 읽어봤는데, 단재 신채호 선생의 조선사(조선상고사)를 읽는 동안 짬짬이 다시 보려고 합니다. 어쨌거나 이덕일의 한국통사 P.568에 한국사 쟁점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요동의 위치나 패수의 위치에 대한 내용은 보이지 않네요. 그 보다 황제(黃帝)의 귀속성 여부가 논쟁이 되고 있다는 항목은 의외였습니다. 통상적으로 알고 있는 황제(皇帝) 아니라 황제(黃帝)입니다. 황제(黃帝)의 귀속성이 대한민국 역사학계에서 논쟁이 되고 있다면 자오지 천왕(치우천왕)은 이미 우리의 역사라는 말일까요? 자오지 천왕은 고사하고 단군조차 신화라고 가르치는데 그 보다 시대가 몇 백년이나 앞선 황제(黃帝)의 귀속성이 대한민국 역사학계에서 논쟁이 되고 있다니 참으로 의외입니다. 어쨌거나 여기다 현재 대한민국 역사학계에서 논쟁이 되고 있는 내용들을 옮겨 적으려 합니다. 이덕일의 한국통사에는 빠져 있는 요동의 위치나 패수의 위치에 대한 내용도 포함될 것입니다. 새로 알게 되는 것도 추가될 것이고요.

 

러시아 학계는 제가 임의로 추가했습니다만, 공란으로 남는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잘 모르니까요. ㅡ,.ㅡ

 

 

1. 홍산문화와 요하문명 귀속성 여부

남한 강단사학계 - 중국사로 규정

남한 민족사학계 - 동이족 문명으로 봄

북한학계 - 언급없음(조선단대사)

중국학계 - 중화 황제족의 문명으로 봄

일본학계 - 중국의 견해와 한국의 민족사학계의 견해 소개(위키백과) 홍산문명

러시아 학계 -

 

블로그 주인 생각 : 청나라 이전의 중국 영토는 산해관 이동이고 만주지역까지 중국 영토가 된 것은 100여년 정도 밖에 안되는데다, 조한전쟁(고조선 VS 한漢) 이후 2천여년간 각 거란, 말갈, 요, 금 등등 숱한 나라들이 있었는데, 2022년 현재의 국경이 만주를 포함한다고 해서 중국사라고 주장하는 것은 모순이라 생각되네요.

 

2. 황제(黃帝 : 皇帝 아닙니다)의 귀속성 여부

 

남한 강단사학계 - 황제를 중화민족의 시조로 봄

남한 민족사학계 - 황제를 동이족으로 봄

북한학계 - 언급없음(조선단대사)

중국학계 - 황제를 중화민족의 시조로 봄

일본학계 - 언급없음

러시아 학계 -

 

블로그 주인 생각 : 황제 공손헌원은 자오지 천왕(치우천왕)과 동시대 인물인데 우리나라에서 자오지 천왕을 역사로 인정하고 있는지 의문이네요. 하나라 이전은 중국에서 신화나 전설로 생각지 않나요? 홍산문화나 요하문명은 고고학적 발굴성과로 기록은 적어도 유물이 있으므로 따진다고 하지만 황제(黃帝)는 중국에서조차 신화나 전설로 여기는 것으로 아는데 논쟁이 되고 있다는 것은 의외네요.

 

최근에 신주사기가 출간되었는데 사기 삼가주석을 모두 번역했다네요. 사기 삼가주석을 따르면 오제본기에 나오는 중국의 임금들이 동이족이라는 근거가 많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런 것인지... 황제(黃帝)가 동이족이라는 것은 중국인들도 알지 싶은데, 중국에서조차 신화나 전설로 생각하는 것을 따지는 것은 좀 과한 것으로 생각되기도 합니다. 사기에 대한 연구나 신주사기를 비판하는 것은 아닙니다. 검색을 해 봤더니 동국통감은 번역본도 희귀하더군요. 사기번역본은 한 두 종이 아닌데... 거 참 희안하지요?

 

3. 단군 실존여부

남한 강단사학계 - 신화로 봄.

남한 민족사학계 - 실존 인물로 봄

북한학계 - 실존 인물로 봄

중국학계 - 신화로 봄

일본학계 - 신화로 봄(대일항쟁기 : 일제강점기)

러시아 학계 -

 

블로그 주인 생각 : 단군은 신화인데 황제(黃帝)는 중국인들의 시조? 도무지 근거가 뭔지...  일본학계의 견해는 대일항쟁기(일제강점기)에는 신화로 보고 있다가 현재는 역사로 인식하고 있다는 말일까요? 설명 불분명하다고 느껴지네요.

 

4. 고조선의 건국시기

남한 강단사학계 - 신화로 봄

남한 민족사학계 - 실존 인물로 봄

북한학계 - 실존 인물로 봄

중국학계 - 신화로 봄

일본학계 - 신화로 봄(대일항쟁기 : 일제강점기)

러시아 학계 - 사실로 보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유 엠 부틴 고조선 연구 참고

 

블로그 주인 생각 : 이 역시 일본학계의 견해는 대일항쟁기(일제강점기)에는 신화로 보고 있다가 현재는 역사로 인식하고 있다는 말일까요? 설명 불분명하다고 느껴지네요. 기원전 2500년을 넘는 청동기 유물이 숱하게 발굴되어 있다고 윤내현 고조선 연구에 내용이 나옵니다. 고대 중국의 청동기보다 기술적으로 앞서서 현대의 기술자들도 놀라는 수준이라고 합니다. 무려 수 천년 전의 기술 발전이 지금처럼 빠를 수 없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사실이라고 할 수 밖에 없잖아요.

 

5. 단군조선과 고조선의 강역

남한 강단사학계 - 대동강 유역의 소국으로 주장하다가 요녕성 요하에서 대동강 유역으로 이동했다는 이동설 주장

남한 민족사학계 - 하북성 난하까지 고조선 강역으로 봄

북한학계 - 서기전 5~4세기는 하북성 난하, 서기전 3~2세기는 요녕성 대릉하까지로 봄

중국학계 - 신화로 봄

일본학계 - 신화로 봄(대일항쟁기 : 일제강점기)

러시아 학계 - 유 엠 부틴 고조선 연구 참고

 

블로그 주인 생각 : 삼국유사에 일연 스님이 환국을 언급하고 제석을 언급했다고 단재 신채호 선생이 비난했는데, 단군 조선의 강역은 인도까지라고 추측이 가능할 수도 있어 보입니다. 가락국 허황후가 인도 아유타국에서 왔다고 하지 않습니까. 서역으로 불법을 구하러 갔다는 왕오천축국전도 있고. 불교 이야기로 단군 조선의 영향력을 은근히 드러낸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하고 있습니다.

 

중국에서 주나라가 들어섰지만 공자도 구이의 나라에서 살고 싶다고 하고 은나라 제도보다 주나라의 제도를 따르겠다고 한 것이 주나라 성립 후 500년이 넘습니다. 주나라가 성립하고 700여년이 지난 무렵까지 당시의 중국 곳곳에는 은나라의 풍속과 전통이 이어지고 있었다는 것이 될텐데, 중국이 한 고조 유방이 세운 한나라를 숭상하고 한(漢)을 정통으로 삼는 그런 내용들은 모두 당나라 이후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당나라가 고구려 백제를 멸망시킨 것이 일차적 요인이었지만 송나라가 들어서면서 당시까지 전해지던 중국 역대의 문헌들이 본격적으로 조직화되고 체계화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거기다 삼국연의까지 가세를 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위촉오 삼국시대가 끝나고 중국에 남은 인구가 700만명 정도였다고 하네요. 인터넷에서 검색되는 삼국연의 지도는 귀신들만 사는 땅이라는 말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6. 기자조선 실재여부

남한 강단사학계 - 기자조선에 대한 입장 정리되어 있지 않음.

남한 민족사학계 - 기자를 단군의 후계자로 보지 않음.

북한학계 - 기자조선 부인

중국학계 - 기자조선 인정, 지금의 평양 일대를 중심으로 한 소국이라는 일반적 인식 팽패

일본학계 - 대일항쟁기(일제강점기) 초기에 사실로 인정하다가 중국과 한국 단절시키기 위해 부정

러시아 학계 -

 

블로그 주인 생각 : 기자를 조선후로 봉한 것이 단군 조선이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단재 선생의 조선사(조선상고사)에 공안국의 사망시기를 근거로 상서대전이 위서라고 하는데, 조한전쟁 이후 끼워맞춘 내용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기자 묘가 하북성 등지에서 발견된다고 하니 주나라 영역은 황하 지류 중 북부는 단군 조선의 영역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7. 위만조선 귀속성 여부

남한 강단사학계 - 위만조선부터 역사적 사실로 봄

남한 민족사학계 - 위만을 단군조선 계승국으로 보는 견해와 부정하는 견해 병존

북한학계 - 위만을 연나라 사람으로 봐서 만조선이라 지칭

중국학계 - 황제를 중화민족 시조로 봄 - 난데없이 황제 이야기가 왜 나온담?

일본학계 - 황제를 중화민족 시조로 봄 - 난데없이 황제 이야기가 왜 나온담?

러시아 학계 -

 

블로그 주인 생각 : 주나라는 역성혁명으로 성립했고 그리하여 왕(王)이라 하고 제(帝)라고 하지 못했는데, 이는 이신시군(以臣弑君)의 죄 때문이라고 하네요. 왕(王)은 제(帝)보다 등급이 낮은 임금이거든요. 거기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주나라 성립 이후에도 공자가 구이의 나라에 살고 싶다고 했던 것처럼 은나라 전통이나 제도가 곳곳에 남아 있었음을 추측할 수 도 있고, 춘추좌씨전을 읽어 보면 곳곳에 이민족들이 섞여 있기도 합니다. 위만조선 때까지 그 만한 행정력을 갖추었다고 보지 않습니다. 단재 선생의 비판도 있는데, 한 마디로 위만은 소위 이중국적자? 뭐 그런 사람으로 생각이 되네요. 요즘처럼 국경 확실히 그어놓고 국적 따지고 입국심사하고 그러던 때도 아니고 하필 위만 조선이 성립한 것이 고대의 조선과 중국과의 경계지역에 있었던 이유로 성립할 수 있었던 정권으로 생각합니다. 단군조선을 계승했다는 것은 말이 안되고 단군 조선의 분국이나 거수국이라 생각합니다.

 

8. 규원사화와 환단고기에 대한 시각

남한 강단사학계 - 위서로 봄

남한 민족사학계 - 규원사화는 진서로 보고 환단고기는 진서로 보는 견해와 더 연구가 필요하다는 견해로 나뉨

북한학계 - 규원사화는 진서로 인정. 환단고기는 태백일사 단군세기 등 개별 사료들을 사실로 인정하고 인용

중국학계 - 보편적 견해 없음

일본학계 - 보편적 견해 없음

러시아 학계 -

 

블로그 주인 생각 : 둘 다 진서로 생각합니다. 환단고기는 현대에 출현했다지만 규원사화는 고(故) 이가원 등 한학의 대가들도 진서로 인정했다고 하더군요. 한학(漢學)은 문사철을 포괄합니다. 시서화도 포함되지요. 요즘의 난다긴다 하는 학자들이 예전 한학의 대가들에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환단고기의 경우 인터넷도 없어 문서들이 디지털화 되어 있지도 않은 시절에 가난한 처지의 사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규모 자체가 아닙니다. 한가람 역사연구소, 매림 역사TV, 고조선 연구소 같은 적지 않은 인력과 자본이 투입되고서도 쩔쩔매지 않나요? 아파트 전세도 아니고 셋방 살았던 늙은이 혼자서 무엇을 근거로 위서를 만들 수 있습니까?

 

환단고기의 경우 이해가 안되는 부분도 없지는 않습니다. 왜 일본에서 먼저 출판했느냐? 하는 것인데, 노망이 난 것인지... 거기다 일본이 대종교 세력과 단군교 세력을 포섭하려 했다거나 하는 내용도 인터넷에서 검색이 되기도 하더군요. 어쩌면 일본에서 한국인들 땅따먹기 시키려고 허파에 바람넣으려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긴 합니다.

 

9. 낙랑군의 위치 (한사군의 위치)

남한 강단사학계 - 평양설을 주장하다 평양에서 요동으로 이동했다는 교치설 주장

남한 민족사학계 - 하북성 노룡현에 낙랑군 조선현이 있었다고 봄. 낙랑군 교치설 부정

북한학계 - 요동반도의 요하 하류지역으로 봄

중국학계 - 평양으로 봄

일본학계 - 평양으로 봄(평양에서 요동으로 이동했다는 교치설 처음 주장)

러시아 학계 -

 

블로그 주인 생각 : 서한군국도 서진군국도 등을 검색하면 낙랑군이 평양에 있었다는 것은 망발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대 중국인들 스스로 그린 지도지 않습니까. 게다가 한(漢)나라는 265년에 망하고 진(晉)나라 들어서는데 무슨 313년까지... ㅡ,.ㅡ

 

고대의 평양이 한 군데가 아니라고 하더군요. 고대의 요동 역시 위치가 변경되었다고 합니다. 일본의 교치설은 이해가 안되는 것이 낙랑(樂浪)은 한민족(韓民族) 고유의 지역명입니다. 당시를 살던 사람들이 지명의 변경을 수긍했을까요? 당장 도쿄랑 교토 두 지명을 서로 바꾼다고 해 보십시다. 일본 사람들은 한 순간에 지명이 바뀌어도 잘 살 수 있답니까? 무식에서 비롯된 억지라고 생각합니다. 지록위마인가?

 

10. 요동의 위치 (이덕일의 한국통사에 없음)

남한 강단사학계 - 현재의 요하가 고대에도 요하였다고 주장.

남한 민족사학계 - 요동의 위치가 시대에 따라 위치가 변했다고 주장

북한학계 -

중국학계 -

일본학계 -

러시아 학계 -

 

블로그 주인 생각 : 뭣도 모르는 서민이지만 블로그 주인도 요동의 위치는 시대에 따라 위치가 변했다고 생각합니다.

 

11. 패수의 위치 (이덕일의 한국통사에 없음)

남한 강단사학계 - 현재의 북한 대동강을 패수로 인식

남한 민족사학계 -

북한학계 -

중국학계 -

일본학계 -

러시아 학계 -

 

블로그 주인 생각 : 이 부분은 잘 모르겠네요.

 

12. 평양은 몇 군데였나?(이덕일의 한국통사에 없음)

남한 강단사학계 - 현재의 북한 평양이 고대의 평양이고 평양은 한 군데라고 주장(?)

남한 민족사학계 - 평양은 한 군데가 아니라 여러 곳

북한학계 -

중국학계 -

일본학계 -

러시아 학계 -

 

블로그 주인 생각 : 평양은 여러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유튜브 등지에 그에 관한 지도를 공개하는 분들도 있지만, 중국과 달리 한민족(韓民族)은 조선시대에 와서야 중앙집권화가 됩니다. 고려의 호족정치 뭐 그러면서 배우잖아요. 고려는 거란이나 말갈 등과 분리되는 개념으로 이해하고, 그 이전인 발해나 고구려 등으로 소급해 올라가면 말갈, 거란 등이 연방형태로 형성되어 있지 않았나? 합니다. 그러므로 평양도 여럿이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유튜브 등에 올라오는 영상들을 보고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므로 정확성은 없지만, 삼국사기를 어쩌다 원문을 한 번 읽어 본 적 있는데 낙랑이 숱하게 나옵니다. 게다가 지금도 대한민국 시골 곳곳을 가면, 밤골 대밭골 같은 동일한 지명이 한두 군데가 아니기도 하지요.

 

13. 고대 부여와 후부여

남한 강단사학계 - 후부여만 인정, 서기 전 2세기경부터 서기 494년까지 북만주 지역에 있었던 예맥족 국가로 봄

남한 민족사학계 - 고구려와 백제가 부여에서 나왔다고 봄

북한학계 - 고대부여는 서기전 15세기 중엽부터 서기전 219년까지, 후부여는 서기전 2세기 초주터 서기 494년까지 존재했던 나라로 봄

중국학계 - 부여를 중국사로 봄

일본학계 - 예족이 세운 국가로 봄

러시아 학계 -

 

블로그 주인 생각 : 아시아에서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이 시베리아 바이칼 호수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북만주 일대에는 사람이 안살았다는 뜻인지... 대한민국 역사학계의 견해는 참 탁월(?)한 것 같네요. 그럴거면 바이칼 호수를 언급하지 말던지... 상서대전에 숙신이 주나라에 화살촉을 조공했다거나 하는 기록이 있다는데, 상서대전이 위서라지만 숙신이라는 나라를 모르고서는 조작이 불가능 할 것이고, 그렇다면 남만주나 북만주 모두 사람이 살고 있었다고 봐야 하지 않나요? 북한 학계의 의견이 신빙성이 있어 보이네요. 게다가 옛날에는 지금과 달리 만주 지역의 기온이 살기가 좋았다고 하더군요. 사람이 물을 따라 사는 것이 상식이고 보면 흑룡강 일대에도 당연히 사람이 살지 않았겠습니까.

 

 

 

일단은 여기까지...

 

남한 강단사학계 -

남한 민족사학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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