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세상에도 논어 맹자 대학 중용의 사서(四書) 중 대학(大學)을 500독 1000독 하는 분들이 있다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원래는 이 포스트는 쓰지 않으려 했습니다. 저는 대학을 3번 밖에 읽어보지 않았으니까요. 숱한 고수들이 즐비한데 고작 대학을 3번 밖에 읽어보지 않았으면서 아래와 같은 내용을 포스팅 하는 것은 어불성설일 것이니까요.
아래는 대학 전(傳) 10장의 첫번째 문장입니다.
所謂平天下在治其國者 上老老而民興孝 上長長而民興弟 上恤孤而民不倍 是以君子有絜矩之道也
휼고(恤孤) 라고 빨갛게 표시한 부분 보이시지요? 고(孤)는 어려서 부모를 잃은 아이라는 해설이 있습니다. 그래서 해당 부분을 노인을 공경하고 연장자를 공경하는 것 뿐만 아니라 부모 잃은 아이까지 궁휼히 여긴다는 뜻으로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학이 추구하는 사회가 구현이 된다면 고(孤)는 없는 것이 정상일 것입니다. 아닌가요? 환고독과(한자 생략)라는 말 아시지요? 고아 과부 홀아비 등등을 일컫는 구인데, 인력으로 어찌 할 수 없는 환고독과가 생겨나는 것이야 할 수 없지만 유학이나 유교가 지향하는 사회가 구체화 된다면 환고독과 라는 말은 없어지는 것이 정상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휼고(恤孤)라는 말을 달리 생각해 봐야 할 수도 있다는 말이 됩니다. 부모 잃은 아이까지 궁휼히 여긴다는 기존의 해석을 전적으로 부인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상로로이민흥효, 상장장이민흥제 라는 구로 인해 환고독과는 없는 것이 유교적 이상사회일 것인데, 환고독과 중에 고(孤)자만 부각된 것을 잘 생각해 보자는 것입니다.
조선왕조 시대에 왕자, 그 중에 세자가 어떤 교육과정을 거쳤는지 요즘은 비교적 많이 알려졌지요? 군왕의 길은 곧 고아(孤兒)의 길입니다. 왜? 백성들을 잘 먹고 잘 살게 하기 위해서... 곧 휼고(恤孤)라는 말은 부모 잃은 아이를 돌본다는 뜻이 아니라 백성을 잘 먹고 잘 살게 하기 위해서 군왕이 밤낮으로 애쓰는 모습을 표현한 글자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부모 잃은 아이를 돌본다는 뜻으로 풀어도 어색하지 않으니 수 천년간 그렇게 풀이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임금이 자신을 가리킬 때 과인(寡人)이라거나 고(孤)라고 하기도 하지 않습니까.
저는 대학을 3번 밖에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유학자도 아니고 한문을 전공하거나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소일거리로 한문 고전을 읽으려 용쓰는 중에 휼고(恤孤)라는 어구가 제가 읽던 책의 설명과 달리 보였으므로 몇 자 끄적인 것이므로 대학을 더 많이 읽고 유학에 대해서 더 많이 아시는 분들이시라면 엉뚱한 해석이더라도 너무 나무라지 마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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