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주완역 논어집주대전 P.21에
子曰, 學而時習之不亦說乎
에 관한 주석이 있고 해석이 나오는데, 첫번째 집주에 대해서는 이전 포스트에 썼고, 두 번째 줄에 나오는 세주에
朱子曰, 學之一字, 實兼致知力行而言. 問, 學之爲言效也. 效字所包甚廣, 曰正是如此, 博學·審問·謹思·明辨·篤行, 皆學之事.
라고 되어 있습니다. 밑줄 그은 致知力行은 대학에서 설명하는 물격 지지 의성 심정 신수의 과정에 대한 내용이라는 것을 발견했네요. 역행(力行)라는 말의 의미를 좀 더 구체적으로 알게 된 것 같습니다. 두 번째 밑줄에 효(效)자가 지시하는 범위가 너무 넓다고 누군가 질문했는데 博學·審問·謹思·明辨·篤行, 皆學之事. 가 모두 본받는 일(效)라고 설명하고 있네요. 박학지 심문지 신사지 명변지 독행지(한자생략)는 중용 20장에 나오는 말들입니다. 다만 하나 다른 것은 중용에서 신사(愼思)라고 쓴 것을 근사(謹思)라고 쓴 것이 다르네요. 근사록(近思綠)이라는 책이 있는데 거기에는 또 근사(近思)라고 썼지요?
저는 성리학의 발전단계? 뭐 그런 것에 대해서는 모릅니다. 하지만 신사지(愼思之) 라는 말이 근사(謹思)로 해석되었고 근사록(近思錄)이라는 책이 나올 것을 보면, 대학에서 말하는 물격 지지 의성 심정 신수의 과정에 따라 근사록(近思綠)이라는 책이 나오지 않았나 싶네요.
다음에 나오는 면재 황씨의 설입니다.
○勉齋黃氏曰, 集註言學, 而或問以知與能竝言何也. 曰言人之效學於人有此二者. 先覺之人, 於天下之理, 該洽貫通, 而吾懵然, 未有所知也. 於是, 日聽其議論而向之未知者, 始有所知矣. 先覺之人, 於天下之事, 躬行實踐, 而吾涱然未有所能也. 於是, 日觀其作爲, 而向之未能者, 始能矣.
大抵, 讀書窮理, 要當盡聖賢之意, 備事物之情. 非吾好爲是詳複也, 理當然也. 世之學者, 意念苟且, 思慮輕淺, 得其一隅, 便以爲足, 則其爲疎率也, 亦甚矣. 學者觀於此, 亦足以得, 養心窮理之要矣. 曰若是則, 學之爲言, 固無所不學也. 今集註於此, 乃以爲人性皆善, 必學而後能明善, 而復其初何也. 曰, 學問之道, 固多端矣. 然其歸在於全其本性之善, 而已明善, 謂明天下之理, 復其初, 則復其本然之善也. 於論語之首, 章首擧是以爲言, 其提綱挈領而示人之意, 深矣.
내용이 길어서 임의로 두 단락으로 나누었는데, 책에는 단락 구분없이 되어 있습니다. 밑줄 그은 부분은 책에서
세상의 학자들은 생각하는 바가 구차하고 사려가 경박해 한 귀퉁이를 얻으면 곧 만족해버리니 그 소략함이 또한 심하다
라고 했는데, 뭣도 모르는 블로그 주인이 생각할 때는 해석오류로 보이네요. 세상의 학자라면 해당 주석을 붙인 면재 황씨나 주자나 정자나 다 포함되지 않겠습니까. 世之學者 라는 구는 배워야 할 자들 이라고 해석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옛날에는 신분사회였기 때문에 귀족은 정치가 직업일 수 밖에 없었는데, 안 배워도 귀족이니 감투는 쓰게 되잖습니까. 학연 지연 혈연... 뭐 그런 걸로
공부를 하나 안하나 귀족!
주자나 논어집주대전에 주석을 쓴 분들은 공부 안하는 귀족들을 질타한 것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이런 말 하면... 사실은 요즘 나오는 논어 맹자 대학 중용 등 사서(四書)의 해석이 조선시대 유학자들의 해석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말 함부로 하면 안된답니다. 이덕일 박사가 백호 윤휴의 후손을 만나서 백호 윤휴에 관한 내용을 취재하려 했는데 300년이 지났음에도 자신의 선조에 대해서 말하기를 꺼려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유튜브에 그런 동영상이 있습니다.
주자 성리학을 추종한 조선왕조에서 世之學者 라는 구를 세상의 학자라고 이해하고 해석하고 번역하여 가르쳤다면, 글쎄요. 백호 윤휴의 자손들이 300년이 지나도 말을 못하는 것을... ㅡ,.ㅡ
世之學者 는 세상의 학자가 아니라 세상의 배워야 할 자들
이해 되세요? 이런 해석을 하려니, 젠장 쫄리네... ㅡ,.ㅡ
한문은 문법이 애매해서 어떤 글자 하나가 명사일 때도 있고 동사일 때도 일고 형용사일 때도 있고 그래요. 그렇다고 시제가 분명하나 어느 것이 주절이고 종속절인지... 어쨌거나 아주 지랄같답니다. 특히나 저처럼 무지하고 무식한 놈이 봤을 때는 더욱 답답한 글이지요.
교육부 장관 후보가 자기 논문을 표절한 데다가 같은 논문을 중복게재하고 뭐 그랬다잖아요. 꼭 교육부 장관 후보가 아니라도 논문 문제로 뉴스에 보도된 내용들 여럿 있지요? 서울대학교가 세계 대학 순위에서 315위랍니다. 뭘 배우고 깨우쳤는지 모르지만, 뉴스 보니까 논문 중복 게재나 고등학생 논문 대필 뭐 그런 것이 공공연한 비밀처럼 행해지고 있다는 말 아닐까요? 서울대학교 순위 315위는 제가 뻥친 것 아닙니다. 검색하면 나와요. 교수진 순위는 315위, 커리큘럼 수준은 135위라고 평가되었다고 하더군요. 대한민국이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인 것이 신기하네요. 에궁, 제가 구입한 세주완역 논어집주대전 저자들이 모두 서울대 출신이던데... ㅡㅡ
學問之道, 固多端矣. 然其歸在於全其本性之善, 而已明善, 謂明天下之理, 復其初, 則復其本然之善也.
학문에는 왕도가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어떤 경로로 공부를 해도 그 귀결은 명선(明善), 즉, 선을 밝히는 것에 귀결된다고 하네요.
○雲峯胡氏曰, 人性皆善, 天命之性也. 覺有先後, 氣質之性也. 必效先覺之所爲, 或以所爲爲所行, 殊不知. 汝爲周南召南, 集註曰, 爲猶學也. 論語曰, 爲之不厭. 孟子記夫子之言曰, 學不厭是, 以學字代爲字. 集註於十五志學下曰, 念念在此, 而爲之不厭, 是以爲字釋學字. 此曰, 效先覺之所爲, 猶曰學, 先覺之所學也, 大學章句釋明明德曰, 學者當因其所發, 而遂明之, 以復其初. 此曰明善而復其初, 是包大學許多工夫, 說物格知至卽是明善, 意誠心正身修卽是復其初.
운봉 호씨가 말한 人性皆善, 天命之性也. 覺有先後, 氣質之性也 은 사서(四書) 중 대학(大學)을 주석까지 붙어 있는 책을 보시면 좀 더 자세한 내용을 아실 수 있습니다. 제가 읽어 본 책 중에는 박완식 대학을 권하겠습니다. 그런데, 책에 오자가 많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대학의 모든 공부가 大學許多工夫, 說物格知至卽是明善, 意誠心正身修卽是復其初. 선을 밝히는 것을 시작으로 의성, 심정, 신수로 나아가는데 그것이 곧 처음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라 설명하지만 역시 해당 내용은 대학을 주석까지 있는 책을 읽어 보시면 좀 더 자세한 내용을 아실 수 있으리라 생각되네요.
○新安陳氏曰, 此論語中, 第一箇學字, 朱子挈要指, 以示人, 後覺者必效先覺之所爲. 所爲不過知行二者. 效先覺之致知以知此理. 又效先覺之力行以行此理. 乃可以明善而復其初矣. 明善者明本性之善以知言也. 復其初者復全本性之善, 以行言也學之道固多端, 其要歸在復全本性之善而已. 朱子所謂, 以己之未知而效夫知者以求其知, 以己之未能而效夫能者以求其能, 皆學之事也. 能指行而言. 知行皆從性分上用工.
대학장구의 서문을 보시면 기질에 따라 다르므로 각각의 직분에 따라 일을 분담하고 어쩌고 저쩌고 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해당 내용이 조선왕조를 기준으로 했을 때 중인들에 해당하는 그런 부분까지 포함이 되는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중국에도 그런 집단이 있었을 것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그들이 경서를 읽거나 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보면 어떤 내용인지 잘은 모르겠습니다.
이 포스트의 요약은
世之學者 는 세상의 학자가 아니라 세상의 배워야 할 자들
인데, 왕조시대의 귀족의 의미를 생각하셔야 할 것이고, 현대 민주주의 시대는 그런 신분제 사회가 아니기도 하므로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신분제사회던 의회민주주의 시대던 정치를 하는 이는 그 책임에 따라 부단히 공부하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가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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