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원문/논어

논어 읽기 6 : 세주완역 논어집주대전 P.23

참그놈 2022. 6. 9. 14:28

새의 생태를 이용해 습(習)자를 설명하고 있네요.

 

集註 : 習鳥數飛也. 學之不已如鳥數飛也. 數【音朔下同】 - 편의를 위해서 따로 복사했습니다.

세주완역 논어집주대전 책에서는 "새가 (날기를 배우기 위해) 번번이 난다는 뜻이다." 라고 해석했는데, 새는 날기를 배운 이후로도 계속 날개짓을 합니다. 죽기 전까지는 날개짓을 하지요. 날기를 배우기 위해 라는 해석이 둥지를 떠날 때까지를 말하는 것인지 새의 일생 전체를 말하는 것이지는 모르겠네요. 둥지를 떠나서도 새는 균형을 잡기 위해, 몸에 붙은 무엇인가를 떨어내기 위해 뭐 기타 등등 여러 가지 이유로 날개짓을 계속하지 않겠습니까.

 

朱子曰, 說文, 習字從羽從白. 月令所謂鷹乃學習, 是也.

매(鷹)가 학습(學習)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라고 썼는데, 예기(禮記) 월령편에 나온답니다. 매는 높은 곳에 삽니다. 독야청청?이라고 해야 할지 뭐라고 해야 될까요. 매는 참새들처럼 떼지어 몰려다니지 않습니다. 또, 사냥을 할 때의 매는 날개짓을 하는 것이 아니라 급강하하기도 하고 활공을 하기도 하고 그러지 않나요? 게다가 새를 잡으려면 주위를 잘 살펴야 하고 신속하게 잡아야 하기도 합니다. 동작이 민첩해야 되지요. 조정에 등용되지 않으면 묵묵히 학문의 길을 걷지요. 매가 높은 곳에 둥지를 틀고 사는 것처럼...

 

매는 맹금류에 속하기도 합니다. 예전에 봤던 어떤 옛날 시조인지

두더비 파리를 물고 두엄위에 올라 앉아... 멀리 바라보니 해동청(?)... 날쌘 낼싀망정 에혈질뻔 하괘라.

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매는 공정함의 상징이기도 하겠지만, 마구 사냥하는 가렴주구하는 탐관오리를 빗댓 것은 아니겠지요? 해당 문장을 단독으로 보면 매가 권력의 상징이기도 하지 않겠습니까.

 

○學是未理會得時便去學, 習是已學了又去重學, 非是學得了頓放在一處, 却又去習也. 只是一件事如鳥數飛, 只是飛了又飛.

위 부분은 책에서 다만 한 가지 일로서 라고 해석했는데, 일이관지(一以貫之) 또는 일관된 일로 해석하는 것이 더 나아 보입니다. 지(只)는 "다만"이라는 뜻이지만 영어의 Only처럼 초점부사로 쓰였다면 강조의 의미가 있지 않겠습니까. 저는 그렇게 이해가 되네요. 뒷부분에 새는 날기를 배운 이후에도 계속 난다고 적혀 있지 않습니까. 새가 날개짓을 하여 날 수 있게 되어도 계속 날고 또 나는 것처럼 학습(學習) 오직 일관된 일이다. 해석이 엉뚱하지요? ㅡㅡ  학습을 이렇게나 강조하면서 그냥 개별 사건등 중의 하나로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 아니겠습니까. 만법귀일(萬法歸一)이라는 말도 있고...

 

○問, 學是知, 習是行否. 曰, 知自有知底學, 自有知底習, 行自有行底學, 自有行底習. 如小兒寫字, 知得字合恁地寫, 這是學, 便須將心思量安排, 這是習, 時將筆去寫成幾箇字, 這是行底學, 今日, 寫一紙, 明日, 寫一紙, 又明日, 寫一紙. 這是行底習. 人於知上不習便要去行, 如何得, 人於知上不習, 非獨是知得不分曉, 終不能有諸己.

 

누가 물었는지 모르지만, 묻는 이는 학(學)과 습(習) 양자간의 관계성을 모르고 별개로 생각하고 있나 봅니다. 학과 습간의 상관관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如何得어찌 할 수 있겠는가? 라고 해석되어 있는데, 해당 내용은 아직 잘 이해가 안되네요. 알지 못하면 할 수 없다는 뜻인지 아니면 그 만한 성과를 얻을 수 없다는 뜻인지...

 

○學而時習之, 此是論語第一句. 句中五字, 雖有輕重虛實之不同. 然, 字字皆有意味, 無一字無下落. 學之爲言效也, 以己有所未知未能, 而效夫知者能者, 以求其知能之謂也. 而字, 承上起下之辭也. 時者, 無時而不然也. 習者重複溫習也. 之者, 指其所知之理, 所能之事, 而言也. 言人旣學矣, 而又時時溫習, 其所知之理, 所能之事也. 聖言雖約, 而其指意曲折深密, 而無窮盡如此. 聖人之學與俗學不同. 聖人敎人讀書, 只要知所以爲學之道, 俗學讀書, 便只是讀書, 更不理會爲學之道, 是如何.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 다섯 글자를 글자마다 해설하고 있는데, 而字, 承上起下之辭也.는 옛날 책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었고 세로로 되어 있었습니다. 요즘은 가로읽기에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는데, 그런 책읽기의 차이를 지적한 것인지, 아니면 학(學)을 상위 개념으로 인식하고 그것을 이어서(而)어서 구체적인 연습, 수련, 실천(習)으로 이어간다는 말인지 모르겠네요. 최근에 봤던 도올 김용옥 선생의 동영상을 하나 본 적이 있는데, 어떤 책의 한 페이지를 50년만에 이해가 되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생각하면 학(學)과 습(習) 사이의 이(而)는 특정한 기간이 있는 것은 또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聖人之學與俗學不同 성인의 학문은 속학과 같지 않다고 되어 있는데 속학(俗學)이 뭔지 모르겠습니다. 불교나 도교 등을 말하는 것인지, 해당 내용은 대학(大學)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는데, 현실을 외면한 채, 공(空)이라느니 하면서 사람들을 현혹시킨다며 불교나 도교 등을 비판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통상 우리는 이해(理解)라고 하는데 논어집주대전 또는 대학의 주석에는 리회(理會) 라고 쓰고 있는 것이 차이인데, 대학을 읽다가 理會라는 어구를 처음 보았을 때는 무슨 말인지 잠깐 당황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이해(理解)는 풀어헤치는 것이니 분석적인 것이고리 리회(理會)는 통합한다는 차이가 있네요. 

 

○未知未能而求知求能之謂學, 已知已能而行之不已之.

습(習)자에 밑줄을 그은 것은 경(敬)자가 연상되어서입니다. 실천, 궁행, 역행 뭐 그러면서 지행(知行)을 말하고 있는데, 학(學)을 지(知)라고 하고 습(習)을 행(行)이라고 한다면, 보통 우리가 습(習)이라고 하는 경우 실제 행하기 이전의 연습, 수련단계를 생각하는 것이 보통이지 않습니까. 견습생, 견습기간 같은 말로 쓰이는데, 이미 알고 이미 할 수 있어서 행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 것을 습(習)이라고 한다니 갑자기 경(敬)이라는 글자가 생각이 나더군요.

 

○胡氏曰, 學之不已者, 學與習, 非二事也.

○厚齋馮氏曰, , 鳥鶵欲離巢而學飛之稱, 學謂學之於己(), 習謂習其所學. 時時而習, 恐其忘也. 凡曰, 而者, 上下二義, 學一義也, 習一義也.

 

제가 인터넷에서 받은 파일에는 기(己)자가 아니라 이(已)자로 되어 있어서 괄호로 표시해 둔 것입니다. 호씨는 학습이 둘이 아니라고 하고, 후재풍씨는 학과 습에 각각 뜻이 있다고 했네요. 한국에서 나고 자라면 음양(陰陽)이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되는데, 뭐 그와 같은 경우를 연상하면 될까요? 음양을 함께 말하지만 음과 양을 따로 말하기도 하지 않습니까.

 

책(세주완역 논어집주대전)에는 學謂學之於己"학은 배워서 자신에게 있는 것을 말하고" 라고 해석했는데, "학은 자기에게 있는 것을 배우는(깨우치는) 것을 말하고" 라고 해석하는 것이 가능할런지 모르겠네요. 책에서 해석한 것이 틀렸다는 뜻이 아니라, 대학장구 서문에 "하늘이 사람을 낼 때 모두 인의예지의 성을 부여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날 때부터 이미 사람마다 성(性)을 가지고 있으므로 사람들마다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人性皆善, 天命之性也. 覺有先後, 氣質之性也. 必效先覺之所爲. 

 

라는 구에서 보듯, 사람이 모두 선(善)하다는 것은 천명지성을 말하고 깨닫는 것에 선후가 있다는 것은 기질의 성을 말한다고 했으니, 없던 것이 배워서 생긴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것을 모르고 있다가 깨우친다는 개념으로 이해를 할 수 있지 않나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