集註 : 說喜意也. 旣學而又時時習之, 則所學者熟, 而中心喜說, 其進自不能已矣.
배우고 때때로 익혀서 익숙해지면 중심에 희열이 생겨서 스스로 나아가는(나아가게 되는) 것을 멈출 수 없다. 라고 해석을 하고 있는데 중심이 어딘지 아래 보시면 胷(胸)中 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원문에는 胷이라고 되어 있는데, 원래 가슴 흉(胸)자와 달리 쓴 것이 의도적으로 그렇게 쓴 것 같습니다. 몸 가는데 마음이 간다라는 말이 있나요? 아니면 마음 가는데 몸이 간다고 하나요? 검색하면 나오겠지만, 후자로 이해하면 몸을 뜻하는 月자 위에 뭔가가 있지요. 고(故) 신영복 선생의 담론 중에 "가장 먼 여행" 이라는 글이 있던데 아마 그런 내용이려나요?
朱子曰, 學要時習, 習到熟後, 自然說喜, 不能自己. 今人所以便住了, 只是不曾習, 不見得好. 此一句却係切己用功處.
주자의 해석도 위와 비슷하지만 요즘 사람들이 일찍이 익히지 아니하여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제가 밑줄을 그어놓은 것은 好자 때문입니다. 好자의 자원을 설명하는 내용을 보면 어머니가 자식을 안고 있는 모습으로 그림을 보여주고 해설도 되어 있고 그런데, 글자가 함의하고 있는 의미를 확대하면, 배운 것을 익힐 짝(대상)을 찾지 못한 것이 되지 않을까요? 초등학교에 막 입학한 아이에게 수학 정석을 가르치지는 않지 않습니까. 물론, 이는 왕조시대의 사대부나 뭐 그런 시대적 상황을 알아야 좀 더 자세한 이해가 되겠지만요.
○學矣而不習, 則表裏扞格, 而無以致其學之之道. 習矣而不時, 則工夫間斷, 而無以成其習之之功. 是其胷(胸)中, 雖欲勉焉以自進, 亦且枯燥生澁, 而無可嗜之味, 危殆杌隉, 而無可卽之安矣. 故旣學矣, 又必以時習之, 則其心與理相涵, 而所知者益精, 身與事相安, 而所能者益固, 從容於朝夕俯仰之中. 凡其所學, 而知且能者, 必有自得於心, 而不能以語人者, 是其中心油然悅懌之味, 雖芻豢之悅於口, 不足以喩其美矣此. 學之始也
배운 것으로 끝내고 익히지 아니하면 表裏扞格 하다 라고 되어 있는 것이 의미심장하네요. 扞자에 막는다는 뜻 외에 용맹하고 용감하다는 뜻도 있더라고요. 이는 배우기만 하고 익히기를 게을리하면 "하기 싫은 마음이 마구 발목을 잡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습니까. 가령, 저는 참 수학 공부를 안했는데, 선생님이 칠판에 풀어주시는 건 이해가 되더라고요. 그래서 저 자신이 직접 풀어보거나 한 적이 없는데, 저 자신이 풀어보려 수학 문제를 보고 해 봤더니만... 도무지 풀 수 없었던.... ㅡ,.ㅡ 그럼 어! 왜 안풀리지? 이러면서 수학 문제를 풀어보려 했느냐면... 아니오ㅡㅡ 뭔가가 떡 막고 있는 듯한, 그리하여 또래들과 만화도 보러 다니고 당구도 치러 다니고 뭐 그랬지요. 뭐 오래 전 일이지만, 그 때의 기억을 생각해 보면 매우 제게는 의미심장한 내용으로 생각되네요.
而不能以語人者를 다른 사람에게 말해 줄 수 없다고 해석했는데, 그렇다며 공자의 어록인 논어(論語)는 어떻게 해서 나오게 되었을까요. 물론, 사람이 뭔가를 깨닫게 되면 자신이 깨달은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말을 해도 못알아듣거나 하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산은 산, 물은 물 이라고 어느 스님이 말씀을 하셨는데, 그거 해설하는 책이 하나 둘 있는 것이 아니지요? 그러나, 공자의 제자들은 열(悅)자 대신 설(說)자를 썼습니다. 言(말씀)이 들어간 글자지요. 배우고 익혀서 말 할 수 없다면, 산은 산 물은 물이라는 말과 무엇이 다릅니까. 공자의 어록은 어떻게 생겨났고...? 공자의 자가 중니(仲尼)인데, 승려라는 뜻입니다. 불교나 도교를 그렇게나 비판하면서 중(승려) 같은 해석을 한 것으로 이해가 되네요. 끼리끼리만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한다는 것이잖아요.
雖芻豢之悅於口, 不足以喩其美矣此 라는 구에서 芻豢(추환)은 풀을 먹는 소나 말, 양 같은 초식동물 외에 곡식을 먹는 개나 돼지를 모두 포괄하는 가축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 외에 잘 차려진 음식이라는 뜻도 있다네요. 그런 맛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있으므로 胸자를 胷으로 썼는지도 모르겠으나, 말 할 수 없다면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는 것이 되는데, 사실 사람들이 추종하는 것은 언행일치이기도 하지요. 그런 면에서 而不能以語人者 를 말로는 설명할 수 없지만 평소의 행실에서 외부로 드러나게 된다는 말인지는 모르겠기는 한데, 공자의 어록이 기록된 것을 보면 소위 유학자들의 주석은 아직 공자만큼 공부가 덜 된 것이라는 말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저는 유학자가 아닙니다. 성리학, 양명학 뭐 그런 거 모릅니다. 그전 우리 사회가 유학을 국시라고 할 만큼 추종했던 조선왕조를 이었던 나라이고, 지금도 사서나 오경이 권장도서에 빠지지 않는 사회이다 보니 읽어보려 한 것이라 진짜로 아무것도 모르는 처지에서 보고 있는 중입니다. 이전 포스트에서 서울대를 비난한 것 같지만, 필리핀에 세계 30위권 대학이 있다는 말을 듣고 놀라서 그런 대학이 필리핀에 있다는 것도 이해가 안되고 그와 관련한 검색을 하다가 서울대 대학 순위도 보게 되었습니다. 교수진 315위, 커리큘럼 135위... 대한민국에서 서울대를 누가 무시하겠습니까. 그러나, 서울대 대학 순위를 보고 참담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똥개도 자기 동네에서는 절반은 먹고 들어간다잖습니까. 서울대가 똥개가 된 거야... 뭐 그러면서... ㅡ,.ㅡ
서울대를 재학중이거나 졸업하신 분들을 기분나쁘게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잘못들었는지 모르지만 30위권 대학이 필리핀에 있다는 것이 도무지 이해가 안되더라고요. 하바드 옥스포드 등등 대학 이름만 알고 있지만 뭣모르는 서민인 제가 대학 이름을 나열해도 미국이나 독일 영국 프랑스 중국 일본 등에 유명대학들이 몰려 있지... 제가 알고 있는 대학이름만 나열해도 30개 이상을 적을 수 있습니다. 하나같이 미국이나 영국 독일 프랑스 중국 일본 등에 있는데 거기에 웬 난데없이 필리핀? 필리핀을 무시하려는 것이 아니라 경제력과 교육수준이 비례한다고 할 때,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지금 제가 보고 있는 세주완역 논어집주대전을 번역한 분들도 서울대 출신들이던데, 저는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이전 포스트에는 서울대라는 말과 엮여서 제가 비난한 것 같지만, 글 쓰는 요령도 모르고 무식한 놈이 마구 지껄이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고, 논어집주대전에 관한 저의 포스트도 아무런 기초없이 그전 혼자서 한문 고전을 읽어 보겠답시고 끙끙거리는 것의 여파이므로 성리학에 반하는 이해가 있을 수도 있고 좋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고 뭐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성리학 배우면서 사셨나요? 아니잖아요. 사서건 오경이건 이미 2022년을 사는 한국인에게는 꿈에 불과합니다. 요즘 나오는 뉴스들 보시면 논어나 맹자 대학 중용이 수십 년간 권장도서였던 나라에서 일어나는 것이 정상이겠습니까. 그런 모습이 바로 유학(儒學) 정통의 가르침이라고 한다면 할 말 없고요.
○學到說時已是進了一步, 只說後便自住不得.
배워서 기쁘다면 이미 일보(한 걸음)를 뗀 것이라고 합니다.
모르던 것을 알게 될 때의 기쁨은 누구나 한 번씩은 가지고 있지 않을까요? 책을 한 권 떼도 기쁘고 작은 것이나마 뭔가를 성취해 냈을 때 누구나 기뻐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만, 그런 일반적인 것보다 논어에서는 성인의 말씀을 그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그 대상이 다르다는 것이 차이인데, 글쎄요. 아직은 책의 첫부분이므로 현재는 매우 일반적인 내용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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