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9년 대홍수가 나자 창수사자가 나타나 금간옥첩을 전하여 오행(五行)에 근거한 치수법을 전수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 창수사자가 2세 단군 부루였다는 내용도 있고 그런데, 문제는 당시에 전한 금간옥첩에 쓰인 글자는 어떤 글자였을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한자는 해서체라고 해서 중국 한(漢) 나라 이후에 발명된 글자들입니다. 그 이전에는 예서체를 썼고 그 이전에는 소전체를 썼씁니다.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하기 전에는 나라들마다 글자가 조금씩 달랐고 그것은 대전체라고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임금이 금간옥첩을 보고 그 내용을 알아보았다는 것에 있지 않나? 하는 것입니다. 단군조선과 우임금의 하나라와 같은 문자권을 형성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대한민국이 서로 다른 문자체계를 가지고 있지만 불과 100여년 이전으로 돌아가면 우리에게 한글이 있었으면서 한자를 더욱 많이 쓰던 시절이었습니다. 말과 글은 달랐을지라도 문자는 중국과 같은 문자를 썼다는 말입니다. 한자가 조선왕조의 공식적인 행정문서를 기록하는 것이었는데, 지금으로부터 4000여년 전에 전설 상의 나라인 하나라 우임금이 2세 단군이신 부루태자가 준 금간옥첩을 보고 알아볼 수 있었다는 것은 같은 문자를 사용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은허시대의 문자가 갑골문이라고 하는데, 금간옥첩에는 갑골문자가 기록되어 있었을까요?
단재 신채호 선생의 조선사(조선상고사, 비봉출판사 P.104)를 읽다 보면 단재 선생이 한자의 유래에 대해서는 모르셨던 것인지 금간옥첩을 예로 들면서 한자를 썼을 것이다 라고 추측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하지만, 우임금이 금간옥첩을 전수받았다는 4000여년 전에는 지금과 같은 한자는 있지도 않았고 우임금 후 2000여년이 지나서야 지금과 같은 한자가 등장하게 됩니다.
아래 그림에서 차례대로 진(秦) 제(齊) 초(楚) 한조위(韓趙魏) 연(燕)나라입니다.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하기 전에 쓰던 글자들을 대전(大篆)이라고 하고 진시황 이후 통일된 글자들을 소전(小篆)이라고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래 글자들은 갑골문이나 청동 그릇에 새겨져서 나타나기도 하는데, 그 이전에는 과두문을 쓰기도 했다네요. 화살표가 한 곳으로 모이지요? 그것이 소전체입니다.
아래의 글자가 과두문이라고 하네요. 중국 황제(黃帝)의 신하 창힐이 새의 발자국 등을 참고해서 만들었다는 말도 있고 그런데, 새의 발자국 치고는 좀 희안하네요. 어쨌거나 종이가 없던 시절 대나무 등에 아래와 같은 글자들을 새겨가며 썼는지 아니면 위와 같은 갑골문 형태로 썼는지는 모르겠네요. 공자도 과두문을 썼다는 것 같던데, 그렇다면 과두문은 민간에서 쓰던 글자이고 갑골문은 제사장들이 쓰던 문자였을까요?
어쨌거나 고대에 단군 조선과 우임금의 하나라는 같은 문자권을 형성하고 있던 나라들이었다. 단군 조선은 대홍수를 대비하거나 방지할 수 있는 고도의 물관리 기술을 가진 나라이기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네요. 한자의 기원은 중국이라느니 동이족이라느니 하면서 논쟁이 많은데, 우임금이 금간옥첩을 받았다는 고사를 근거로 한다면 초창기의 한자는 동이족으로부터 기원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전이나 소전, 예서, 해서 등의 글자체는 중국인들이 개량했다고 봐야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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