集註 : 言君子, 凡事, 專用力於根本. 根本旣立, 則其道自生.
근본이 이미 서 있으면 도가 자연적으로 생겨난답니다. 예전에 도덕경을 읽어보려 했는데 1장부터 무진장 헷갈리더라고요. 도를 도라고 하면 그것은 항상적인 도가 아니다. 라는 해석을 보고 이게 뭔 소린지... 했던 적이 있습니다. 지금이야 도(道)라고 하는 것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시절에 따라서 상황에 따라서 다를 수 있다고 해야 할까? 뭐 그런 생각이라도 해 보지만 아무것도 모른 채 읽어보려 했다가 헷갈리기만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길을 뜻하는 글자들이 道나 路 외에도 다른 글자들도 많은데, 왜 하필 도(道)라는 글자일까? 뭐 그런 생각도 해 봤는데, 도(道)는 가야할 길이고 로(路)는 지금 발딛고 있는 길인가? 하면서요. 그러다 결국 도덕경을 2장인가? 3장까지 읽어보고는 젠장 무진장 어렵네! 라고서는 읽지 않았던....
도덕경 해설을 기준으로 하면 도는 도(道)라고 하는 순간 도(道)가 아닌데, 근본이 이미 서 있으면 도가 자연히 생긴다고 하고, 근본에 힘쓰는 것이 효제(孝弟)를 근간으로 한다니 도덕경처럼 난해한 것은 아닌 것인지...
朱子曰, 務本道生, 是泛言以起, 下句之實, 所以集註下一凡字.
○本立則道隨事而生, 如事親孝故, 忠可移於君, 事兄弟故, 順可移於長.
범(凡)이라는 글자 한 글자를 말하고 있네요. 무한대라는 말 아닌가요?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이 있는데, 효제(孝弟)라는 것을 근간으로 모든 일에 대응하라는 말인 것 같습니다. 평소 사람이 식사를 하면서 TV 시청을 하기도 하고 공부를 하면서 음악을 듣기도 하고 그러는데, 그런 동시 행위와 달리 익숙하지 않은 일에는 서툴러서 그런 일을 할 때는 주의를 더 많이 기울이게 됩니다. 평소에 범사를 모두 생각지는 않을 것이나 개별적인 일을 합하면 범사가 되니, 그런 까닭으로 學之正, 習之熟, 說之深, 不已焉을 언급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集註 : 若上文所謂孝弟, 乃是爲仁之本. 學者務此, 則仁道自此而生也.
朱子曰, 其爲人也孝弟. 此說資質好底人, 其心和順柔遜, 必不好犯上. 仁便從此生.
○雲峯胡氏曰, 上文是泛言爲人. 此節則專言, 君子本立而道生, 又是泛言, 君子之於凡事, 皆用力於根本. 孝弟爲爲仁之本, 又言君子之行仁, 孝弟爲之本.
비슷한 말들인데, 必不好犯上 이라는 구가 포함된 것이 다르네요. 유학이 추구하는 것에 不好犯上 이 강조되는 듯한 느낌이 있는데, 태어나는 아이들은 무지합니다. 부모가 자식을 키우면서 들이는 노력과 정성을 생각하면 인간사회는 사실 부모 자식들간의 공동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대에 따라 사회적 환경은 계속 변했습니다. 그러면서 맹자에서 말하는 시기군자(한자 생략) 같은 구들이 포함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 면에서 인륜(人倫)을 밝히려는 유학의 관점에서는 犯上 이라는 것이 발생하지 말아야 하는 일로 생각하나 봅니다. 맞는 이야기인 것 같기는 한데, 실제 역사에서는 그렇게 진행되지 않은 것 같으니... 그 까닭은 무엇일까요?
集註 : 程子曰, 孝弟順德也. 故不好犯上, 豈復【扶又反】有逆理亂常之事.
雙峯饒氏曰, 孝弟順德也. 犯上是小不順底事, 作亂是大不順底事.
부모가 자식을 낳아 기르면서 진자리 마른 자리 갈아 뉘시고 모기 파리 각다귀 등등을 쫓으면서 먹이고 입히고 가르친 그런 노력과 정성이 모두 덕(德)이겠지요. 아래 운봉호씨의 설에 따르면 범상은 작은 일에 순하게 따르지 않는 일이지만 나중에 作亂에 이르게 된다고 하는데 - 물론 범상과 작란을 따로 따로 설명하고 있지만 - 해당 내용이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되는 개인적인 상황을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사회 전체를 대상으로 한 설명인지 이해가 조금 힘드네요.
集註 : 德有本, 本立則其道充大. 孝弟行於家, 而後仁愛及於物, 所謂親親而仁民也. 故爲仁以孝弟爲本.
新安陳氏曰, 以上解此章正意, 下句, 別是一意, 又推本言之.
역시 비슷한 말입니다. 덕에 근본이 있고 근본이 서는 것은 도가 크게 채워져서 집에서는 효제하고 사물에까지 이른다고 하는데, 이런 해설을 볼 때마다 실제 역사는 그렇게 진행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유학이 추구하는 이상이 대충은 짐작이 되지만 그것을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라 시대적 또는 현실적 상황과 합치하지 않은 것인지... 역사가 곤욕을 많이 치르지 않았습니까. 어쩌면 지금 시대에 유학의 경전들이 읽히는 것은 대한민국의 전신이 성리학을 추종하던 왕조를 이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한나라가 유학을 통치이념으로 삼았고 그 이후에 들어선 중국 왕조들도 유학을 관학으로 삼은 것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말이야 구구절절이 옳은 말만 했는데 현실에서는 유학이 관학이었다는 것을 제외하면 중국인들은 도교를 더 따랐던 것으로 알고 있거든요. 불교도 융성했고 우리나라도 고려시대에는 불교가 융성하지 않았습니까. 유학이 관학이었기 때문에 지금껏 전수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集註 : 論性則以仁爲孝弟之本. 或問, 孝弟爲仁之本. 此是由孝弟可以至仁否. 曰, 非也.
朱子曰, 仁不可言至仁, 是義理不是地位, 地位可言至.
효제로 말미암아 지극한 인(仁)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까? 라는 질문에 인(仁)에 이른다는 말은 할 수 없답니다.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맨날 100점 받아오는 그런 경우일까요? 성적은 공부를 꾸준히 잘 해야 잘 나오지 않습니까. 성적이 좋으면 공부를 잘 하는 것으로 오해를 할 만 하겠네요.
'한문원문 > 논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논어 읽기 19 : 세주완역 논어집주대전 P.47 (0) | 2022.06.21 |
---|---|
논어 읽기 18 : 세주완역 논어집주대전 P.45 (0) | 2022.06.19 |
논어 읽기 16 : 세주완역 논어집주대전 P.40 (0) | 2022.06.18 |
논어 읽기 15 - 논어에서 말하는 人 그리고 民 (0) | 2022.06.17 |
논어 읽기 14 : 세주완역 논어집주대전 P.39 (0) | 2022.06.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