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를 보다 보니 "우리 겨레 박물관"이 충남 홍성에 지어졌다고 하네요. 복기대 교수가 설립하셨다고 하고 임정규 라는 분이 운영을 하시나 봅니다. 지도로 충남 홍성이 어디있는지 검색해 봤는데 서해안에 위치하고 있네요. 언제 가서 관람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지...
아래 영상을 보시면 복기대 교수께서 광개토태왕비가 통일기념비라고 설명해 주시는데 그런 내용은 오늘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광개토태왕비에 대해서 검색을 하면 일본이 조작을 했느니 마느니 하는 논쟁에 대한 내용이 많고 아니면, 신미년 기사를 억지 해석하는 내용도 많습니다. 논쟁 가득한 내용만 보다가 통일기념비 라는 설명을 듣고 나니 "옳거니!"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광개토태왕비는 통일기념비
https://www.youtube.com/watch?v=aD8xtYCy1WM
역사를 잘 모르지만, 우리의 역사와 중국의 역사는 일부 겹치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처음 분열이 시작된 것은 치우천왕과 공손헌원으로부터 시작되었지만, 은나라가 동이족의 나라였고 서경(書經) 순전에 사근동후(한자생략) 라는 구가 있으므로 순임금 때까지도 상호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서경 순전에 보시면
역법을 상의하여 맞추었다 (역법은 달력, 즉 날짜)
는 내용이 있는데, 그 부분을 우리와 중국이 별개의 독립국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김부식의 삼국사(삼국사기)를 보면 고구려 백제 신라가 각각 천문현상을 기록했다는 것을 상기해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중국에서는 천문이 천자 고유의 것이라며 황제만이 달력을 만들고 배포할 수 있었지만, 지리상의 위치에 따라, 즉, 위도나 경도에 따라 또 절기에 따른 온도나 습도 등이 지역마다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중국인들은 인정하지 않았거나 몰랐을 수 있는 반면, 고구려 백제 신라 등 우리의 선조들은 지리적 위치에 따라 천문을 각각 관측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뜻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고구려가 당나라에 패망하자 달력을 독점하는 얄랑궂은 전통이 무려 1500여년간 이어진 것이지요. 무지의 전승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대한제국 이전 조선왕조에서는 초기에는 명나라에서 배포하 달력을, 후기에는 청나라에서 배포하는 달력을 보고 정사를 펼치지 않았겠습니까. 중국인들은 똥꼬집만 있고 무식하고 무지했다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오만이라고도 하더군요.
지역에 따라 천문 관측의 결과 뿐만 아니라 절기에도 변화가 생길 수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던 단군조선에서 중국의 순임금 시기에 지리적 위치에 따른 날짜 계산법을 전수했을 수 있습니다. 당시 단군조선의 수도에서 순임금이 살던 지역과 거리가 얼마가 떨어져 있으니 지리적 거리 차이에 따라 절기를 적용하라거나 농사를 지으라거나 하는 내용이었을 수도 있는 것이지요. 그 일을 담당한 천문 관련 관리들이 모두 천자(天子) - 치우천왕을 고대 천자라 칭함, 즉, 환웅천왕 이후의 모든 천왕들을 천자天子라 칭한 것으로 추측- 의 휘하에 있었을 것이므로, 천문은 천자만의 고유권한이라 오해하고 한나라 이후 중국이 득세하기 시작하여 당나라 때에 이르러 고구려가 패망하자 그만 오만과 무지 독선에 이른 것이 아닌가? 추측합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가 각각 천문을 관찰하고 연구했다는 것이 이렇게나 차이가 있을지 몰랐는데, 그 전통은 조선왕조에서도 이어져 세종대왕께서 별도의 역법을 연구하고 계산하여 칠정산을 만드셨다고 하더군요. 고려시대에는 칭제건원 하여다고 하였으므로 어쩌면 고려시대에도 독자적인 천문역법이 있었을 수도 있으나 무식한 서민이라 그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것이 없습니다.
역사에 무지하게 살았지만 우리의 강역이나 우리의 역사 연대가 근거없이 커지고 길어지기를 바라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최대한 사실대로 알려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국내에서 이미 기원전 2500년 전의 청동기가 발굴된 것이 30년이 넘는다는데도 아직까지 대한민국 고등학교 국사교과서에는 기원전 15세기 경에 금석병용(청동기와 석기)을 500여년간 했다고 설명하고 있기도 하더군요.
한사군에 관한 지도를 검색해 보시면 서한군국도나 서진군국도를 보실 수 있습니다. 고대 중국에서 만든 중국의 지도인데 그 지도들에는 낙랑군이나 현도군 등 몇 개의 군이 표시되어 있는데, 어디를 봐서 한사군이 위치한 지역이 현재의 북한 평양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지도 찾아서 업로드 할 수 있지만 생략하게습니다. 가야사 연구하라고 연구비 지원했더니 일본서기 들고 나와서 서울에서 가야사 특별전 전시회 개최했습니다. 당시 장관이셨던 도종환 님께서 소위 역사학자들이라는 사람들에게 호되게 까이기도 했지요. 학문의 영역을 정치가 개입하니 마느니 하면서... 그러고는 남부지방 가야 유적을 포함 전남 해남까지 일본서기에 나오는 침미다례 라는 지명으로 끼워맞추어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고 추진하고 있다고도 합니다. 남원이나 곳곳에서 시민들이 반대하고 있다고 하는데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는 평범한 서민이라 자세히는 모르겠습니다.
강원도 춘천 중도 유적지가 1970년대 중반에 최초 발굴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수십 년 세월이 흐르면서 레고랜드가 들어섰지요.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강원중도개발공사 문제로 큰 사고를 하나 치는 바람에 채권시장은 난감해졌지만 반면, 레고랜드 공사가 중지되는 바람에 중도 유적지는 오히려 보존되게 되었을까요?
강원도 춘천 중도유적지는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를 아우르는 세계 최대의 유적지 라고 합니다. 그 만한 규모의 유적지는 지구(The Earth)를 샅샅히 뒤져도 찾기 힘들기 때문에 레고랜드 같은 거 짓지 말고 유적지 관리를 잘 했으면 해외의 많은 학자들이 몰려와서 연구를 했을 것이고 많은 관람객들이 방문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희안하게 레고랜드 짓는다면서 유적지를 파괴(?)하려는 작당을 하고 있는 것인지..
세계의 저명한 유수의 학자들이 강원도 춘천 중도로 몰려드는 것을 심각하게 우려한 것일까요? 우리나라에 구석기 시대가 없었다는 것 아십니까? 한국에서는 구석기 시대가 없었다고 했는데, 연천 전곡리에서 발견된 에슐리안형 주먹도끼 덕분에 한국에도 구석기 시대가 있었다는 것이 입증되면서 국사교과서에 실리게 되었습니다. 조선총독부가 만든 한민족의 역사에는 구석기 시대가 없어야 한다는 도그마에 맞춰서 그렇게 쓰여졌지만 연천 전곡리 주먹도끼 외에도 공주 석장리, 상원 검은모루 동굴 등등 각지에서 구석기 유적이 발굴되었다고 하더군요. 강원도 춘천 중도 유적지는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시대를 아우르는 세계 최대의 유적지라는데, 그러나, 왜 외면당했을까요? 앞에서 국사교과서에 우리 민족은 기원전 15세기에 청동기와 석기를 함께 사용한 금석병용기가 500년 가량 된다면서 적혀 있다고 했지요. 그렇다면 본격적인 청동기 시대는 기원전 10세기 경이라는 말이고, 청동기를 사용하면서 국가가 성립한다는 이론이 있어서, 강원도 춘천 중도유적지는 기존의 국사교과서를 정면 반박하는 물증들이거든요. 우리나라 국사교과서는 청동기시대에 국가가 성립한다는 이론을 바탕으로 기술되어 있답니다. 기원전 2500년 전 청동기도 발굴되는 나라에서 기원전 10세기부터 국가가 성립하기 시작했다는 억지 주장을 끼워맞추려다 보니 강원도 춘천 중도 유적지는 깨부숴야 하는 곳이 되었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막노동 하며 사는 평범한 서민이라 아는 것이 없습니다. 영상 내용을 제외하면 그냥 뇌피셜이고 여기저기 책이나 유튜브 영상 등에서 보고 들은 내용입니다. 영상은 꼭 보시고 포스트 내용은 그냥 재미삼아 보세요. 재미 없으면 안보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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