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졸업한 지 30년이 훨썬 더 넘었지만 그래도 우리 고대사에 관해 기억나는 것은 비파형 동검과 세형 동검 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나중에 비파형 동검이 조립식으로 제작되었다는 것을 추가로 알게되기는 했지만 자세한 것은 잘 모르겠네요. 거기다, 어쩌다 윤내현 교수의 "고조선 연구" 등을 읽어 보게 되면서 우리 선조들의 청동기 제작기술과 중국의 청동기의 제작기술은 기술수준이 다르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고대 우리민족의 청동기 제작기술은 현대의 과학기술자들도 놀라는 수준이라는 반면, 중국에서 발견되는 청동기는 딱히 뛰어난 기술이라고 하기 힘들다고 하더군요.
아래 영상을 보시면 위만조선에 관해서 먼저 설명하고 비파형 동검과 세형동검에 대한 설명은 후반부에 나오는데 역시 조립식으로 제작되었다고 나옵니다. 비파형 동검을 고조선식 동검이라고 한다는 것은 오늘 처음 알았네요. 비파형 동검이 익숙하지만 앞으로는 어디 가서 청동검에 대해서 말할 일이 있게 된다면 "고조선식 동검"이라고 말해야겠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55wwN-ynTBs&list=TLPQMDQxMTIwMjKz1tboJ3eTbw&index=5
영상 보시면
우리 역사에는 주인공이 없다
세형동검을 중국식 동검이라고 설명하고 출토지역이 전북 완주
라고 하는 충격적인 내용도 나옵니다. 중국식 동검이 왜 우리나라 호남에서 출토되나요. 이덕일 박사의 설명처럼 남한에서는 어떻게든 단군조선을 지우려고 애를 쓰나 봅니다. 한국사, 즉 우리 민족의 역사인데 한민족이 주인공이지 않은 교과서라는 말입니다. 영상 속에서는 한민족 정체성론이 바탕이라는 설명이 있기는 하지만 교과서를 집필하는 사람들이 그런 사상을 추종하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등학교 졸업한 이후 혹시 국사 관련 공부를 하신 적 있으십니까. 중고등학교 다 합쳐서 6년인데, 그 6년이 지나면 따로 국사나 역사 관련 공부를 사실상 안하지 않습니까. 공무원 시험이나 기타 공사 시험 등에 나오는 국사 과목도 결국은 국사 교과서와 일관성이 있을 것이므로 우리는 엉터리 역사를 배우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역사를 잘 모르지만 출토되는 동검이 동물 문양이 새겨져 있다는 것만 보아도 중국식 유물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어려워 보이건만...
서경(書經)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서(書)라고도 하고 상서(尙書)라고도 하는데, 중국 최고(最古)의 경전입니다. 유교를 비롯한 중국의 모든 사상들이 서경에서 유래한다고 하더라고요. 서경의 특징을 딱 하나 꼽으라고 한다면, 바로 "농경"입니다. 고대로부터 중국 청나라까지의 중국 역사를 한 마디로 축약하면 "농경"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서경 요전을 읽어 보시면 요임금이 희씨와 화씨에게 천문을 살피게 하고 어쩌고 저쩌고 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농사짓는데 천문 관찰과 연구는 필수불가결하지요. 농경민족이 청동검에다 각종 동물 문양을 새겨넣었다? 그런 것만 보아도 동물문양이 새겨져 있다는 청동검은 중국 문물일 수 없어 보입니다.
천문 이야기가 나왔으니 한 마디 덧붙이겠습니다. 김부식의 삼국사(삼국사기)를 읽어 보시면 고구려, 백제, 신라가 모두 일식이나 혜성 등 갖가지 천문 현상을 나라별로 각각 기록한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가 각각 자주국이었다는 뜻입니다. 춘추(春秋)를 혹시 읽어보셨다면 왕정월(王正月)이라는 말이 종종 나오는데, 옛날 중국에는 주나라 왕이 만드는 달력을 제후들에게 나누어주고 각 제후들이 모두 주나라 달력에 따라 정사를 운영했습니다. 반면, 고구려, 백제, 신라가 존재하는 동안에는 삼국(고구려, 백제, 신라)이 모두 주체적이고 자주적인 역법을 가지고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신라가 발흥하면서 고려시대까지는 어떤 역법을 썼는지 모르겠고, 조선왕조가 들어서면서 중국 명나라에게 달력을 받아와 종묘에 고이 모셔두고는 중국 명나라와 청나라 달력에 따라 정사를 펼치게 되었지요. 칠정산(七政算)을 칠정력(七政曆)이라고 하지 못하는 것도 조선왕조 보다 중국 왕조를 더 높이 쳐서 그렇다고 한다더군요. 한자 글자 한 자 차이인데... 역법은 천자의 고유권한이었거든요.
한 가지 이해가 어려운 것은 세종대왕께서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문자와로 서르 사맛디 아니할쎄...
라시며 한글만 창제하신 것이 아니라, 중국과의 시차가 달라서 별도로 천문을 연구하고 칠정산을 만들기도 하고 그러셨는데, 중국에서 그런 노력을 했다는 내용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중국 땅이 얼마나 넓습니까. 지역에 따라 위도나 경도가 달라서 농사를 지으려면 시차(時差)가 발생한다는 내용이 어느 한구석에라도 있어야 정상이 아니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중국 역사를 5천년이라는데 무려 5천년 동안이나 그런 논쟁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수상하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내가 짱이야, 천문은 황제거야... 이러면서 쪽수를 앞세워 역사조작질이나 해 댄 것은 아닐까? 싶은...ㅋ 더구나 중국은 농경국가라서 시차에 의한 지역별 생산량의 차이 또한 상당히 발생했을 가능성도 있지 않습니까. 혹시 중국 농서에 지금의 상해나 절강은 시안보다 몇일 있다 파종하라거나 하는 그런 내용이 있나요? 명나라 청나라 때는 북경이 수도였으니 사천은 북경보다 몇일 있다 파종하라거나...
세종대왕께서는 중국이 북경을 수도로 하고 있을 때 조차도 위도와 경도 상의 차이로 농사를 짓는 시기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연구를 추진하셨건만 중국은 수천 년간 "천문은 천자의 고유권한"이라는 것만 강조했다는 그런 내용일 수도 있답니다. 북경과 한양(서울)간의 간격보다 북경과 사천성 성도 간의 간격이 훨씬 더 넓잖아요. 농경을 주업으로 하면서 위도나 경도에 따른 시차별 농사시기가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던 중국...
청동검에 새겨진 동물문양이나 역법 등에 관한 내용은 블로그 주인의 뇌피셜성 이야기입니다. 그런 부분은 그냥 재미삼아 보세요.
'글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 겨레 박물관 - 광개토태왕비는 통일기념비다 (0) | 2022.11.13 |
---|---|
김혜수 이년, 네년이 네 죄를 알렸다? (0) | 2022.11.12 |
종이신문의 몰락 (0) | 2022.10.29 |
금리와 환율 알고 갑시다 - 김영익 (1) | 2022.09.27 |
홍경민, 흔들린 우정 (1) | 2022.09.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