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문에 관한 해설서들을 읽어 보면 각 서적들마다 여러 부분으로 단락을 구분하고 있습니다. 가령, 천자문 주해가 공개되어 있는 동양고전DB에는 천자문을
第一章 天地人之道
第二章 君子修身之道
第三章 王天下之基
第四章 處身治家之道
語助
등 총 다섯부분으로 나누었습니다. 그 외에도 각 책마다 11단락, 12단락, 13단락, 17단락 등등 해설하는 분들에 따라 천자문을 각각 다르게 단락을 구분짓고 있습니다. 그런 단락 구분들을 반드시 따라서 이해를 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령, 천지현황 우주홍황이라는 천자문 첫구를 18번째 구인 화피초목 뇌급만방까지의 강령이라며 몇몇 천자문 해설서에는 공통으로 단락을 구분하고 있는데, 이어지는 구 개차신발 사대오상이나 공유국양 기감훼상 등의 뜻을 생각해보면 어느 동물이나 식물이 사대오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자기 자신을 해치려 하겠습니까. 동물이 자살하는 경우가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물론 식물은 스스로 움직이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지만, 나무의 가지를 자른다거나 하면 스스로 치유하고 치료하는 작용을 한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즉, 나무 역시 생명으로서 스스로를 해치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나무는 자라면서 아래에 생기는 가지는 말리고 보다 위에 뻗는 가지를 키운다고 합니다. 식물 역시 스스로를 성장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지현황 우주홍황이라는 구가 화피초목 뇌급만방까지의 강령이라는 설명은 반드시 정확하다고 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하늘과 땅이 없다면, 암수묘명 같은 구에 나오는 산굴이 있을 수도 없을 것이고 선위사막에서 보이는 사막도 없을 것 아니겠습니까.
보통의 해설서가 천자문 첫번째 구인 천지현황 우주홍황을 화피초목 뇌급만방의 강령으로 해설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하늘 天을 단지 자연적인 하늘이 아니라 임금, 지아비와 같은 인간사회의 이해로 끌어들였고, 언제부터인지 옛날에 적힌 한문 문헌에는 성인이나 제왕이 나오면 사람 뿐만 아니라 동물이나 식물까지도 모두 혜택을 입는다는 사상이 있어서 그렇게 해석하고 설명하려는 듯합니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에서 성군으로 정치가 계속 이어진 적은 없습니다. 지금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전쟁 중이고 일본도 중국과 3차 중일전쟁을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 외에도 중국 역사에서 흥했다 망한 나라가 알려진 나라만 해도 100개국이 넘습니다. 요임금이 성인이라고 하고 순 임금도, 주 문왕이나 무왕, 주공, 공자도 다 성인이라는데, 성인은 원래 한때 반짝였다 꺼지는 숯불과 같은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삼겹살도 구워먹고 쇠고기도 구워먹는 넉넉한 시절이 잠깐은 있는 것이지요. 그런 한 때의 시절을 근거로 성인이나 임금의 덕택으로 천자문 전체를 해석하고 이해하는 것은 왕조사관에 근거한 방향이 아닐까? 합니다.
지금은 왕이 있는 나라도 별로 없고, 왕이 있어도 직접 통치하지 않는 시절입니다. 따라서 천지현황 우주홍황이라는 구가 화피초목 뇌급만방까지의 강령이라는 해설은 우리나라로 치면 조선왕조시대까지는 적절한 해설이었을 수 있으나, 군사부 일체라는 말처럼, 하늘과 임금을 같은 존재로 생각하던 시기였으니까요. 의회민주주의가 대세이고 입헌 민주주의가 상당한 작금에는 적절한 해설이라고 보기 어려워 보입니다. 그러니, 천자문을 읽는 분들이라면 기존 해설서의 단락 구분에 너무 의존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천자문 51번째 구는 견지아조 호작자미입니다. 고아한 지조를 지키면 좋은 벼슬이 자연히 따라온다는 뜻인데, 해당 구를 설명하는 내용에는 천작(天爵)과 인작(人爵)이 나옵니다. 천작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임금이 아니겠습니까. 인작은 임금이 내려주는 벼슬이고요. 실제 주나라 역사에서 주 문왕과 주 무왕을 성군으로 칭송하지만, 주 문왕과 무왕이 있기까지 그 조상들이 300여년을 견지아조 했다는 내용은 주 왕조에 대해 설명하는 책을 읽어보면 희씨들의 족보(주나라는 성이 희씨였습니다)를 예로 들면서 상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해 천자문 사이트에는 천작을 설명하기는 하지만, 천작보다 인작을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가 됩니다. 왜냐하면, 천자문의 단락구분을 그렇게 해 놨기 때문입니다. 성품을 잘 간직하고 수양을 하여 성적이 우수하면 학우등사라고 하여 고아한 지조를 지키면 좋은 관직에 등용될 수 있다(호작자미)고 단락을 구분지었기 때문이다.
반면, 천자문 단락을 50번째인 수진지만 축물의이에서 끊고 견지아조 호작자미로부터 새 단락이 시작된다고 한다면, 서백 창과 그 아들 발이 주 나라라는 천작을 받고 성장하여 도읍을 동서 이경으로 나누고 낙양 북망산을 뒤로하고 낙수 근처에 도읍하여 궁궐과 전각을 빽빽히 짓고 벽마다 온갖 기화이초와 신수(神獸)들을 그린 내용 등으로 이어지는 계기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천자문을 두고 이것저것 생각을 하다 보니 천자문은 한 글자 한 글자가 다 단락이고 2글짜식 묶으면 500개가 그냥 단락으로 보이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전체로는 천자문이라는 한 단락이고... 한문을 잘 모르지만, 1000글자 정도로 지어진 글은 단편 아닌가요? 사자소학도 320구로 1280자라고 하는데, 좀 더 글자 수가 많은 책들 논어나 맹자나 기타 다른 책들을 보면 편마다 수천 자 이상으로 되어 있는 것도 있습니다.
가령, 하늘 天 한 글자를 乾이라고도 표시하는데, 그 두 글자에 대한 해설만 찾아도 A4 용지로 아마 여러 수십 장의 종이가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구천이나 불가의 33천, 도가의 하늘까지 천(天)자 한 글자를 설명하는 내용을 다 모으면... 그렇다고 땅(地)은...? 현대과학이 이렇게나 발달했지만, 보이저 2호가 태양계를 벗어났다는 말은 들었어도 태양 속으로 들어가 삼족오가 살고 이는지 아닌지 확인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 외에도 천자문에 포함된 어느 글자라도 각각의 글자 하나씩이 모두 단락이 될 수 있다는 생각도 해 봤습니다. 천지라는 한 단어만 해도 나머지 998자가 모두 천지간(하늘과 땅사이)에서 일어난 일 아니겠습니까.
천지현황 우주홍황이 화피초목 뇌급만방까지의 강령이라는 해설이 왕조적 사고에 근거한다는 제 생각이 틀린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쩌자고 그럼 임금의 은택이 계속 이어지지 못하고 진초갱패 조위곤횡하는 일이 생기고 기전파목 용군최정 하는 일이 생겼으며, 하준약법 한폐번형 하는 일이 다 생겼을까요? 하필 우리나라에서 제일 유행하는 한문 소설이 삼국연의인데, 앞부분 잠깐을 빼면 허구헌날 치고박고 싸우다가 다 뒤지는 내용이랍니다. 임금의 은택이... 그렇게도 미치는지... ㅡ,.ㅡ
중국 한나라가 삼국시대로 분열하기 전에는 인구가 6000만명 정도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삼국시대가 끝난 후 인구조사에서 남은 인구가 700만명 정도였다고 중국 역사기록에 적혀있다고 합니다. 거의 90%가 사망한 겁니다. 에궁... 너무 험한 이야기네요. 어쨌거나 역사나 문화, 전통 등이 있으므로 기존 천자문 해설서의 단락구분을 무시할 이유는 없지만 또 그런 구분을 반드시 따를 필요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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