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 중 대학을 읽다 보면 명명덕(明明德)을 설명하면서 오직 주(周) 문왕만이 능히 그 덕을 밝힐 수 있었다는 설명이 있습니다. 유학이 뭔지 모르고 성리학은 더더욱 모르면서 대학을 주석까지 있는 다 있는 책을 읽어보다가, 주(周) 문왕의 역사가 요즘 시대에 자세히 알려진 것도 아니고 무려 3000여년 전에 살았던 어떤 왕을 이렇게나 높이 평가하고 그것을 대대손손 이어가며 칭송하는 까닭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대학을 세 번째 읽다 보니 "탕임금만 성스럽고 경건하여 날마다 덕이 높아졌다는" 번역이 이제서야 보이네요. 첫번째 두 번째 읽을 때는 모르는 글자도 찾아야 하고 저 자신이 해석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지, 한문의 구절마다 제대로 이해를 하고 있는지 뭐 그런 것을 번역문과 비교하며 봤던지라 봤던 구절이면서도 그런 구절이 있었는지 기억을 못했었습니다. 아래는 주 문왕과 탕 임금에 대한 각각의 주석입니다.
朱子曰, 此克字, 雖訓能然, 比能字有力. 見人皆有是明德, 而不能明. 惟文王能明之, 克只是眞箇會底意.
備旨 : 由康誥, 遡而上之則湯. 觀尙書大甲, 有曰天之明命. 是天之昭然予我, 而我之所以爲德者, 但忽玩者多. 惟成湯, 聖敬日躋, 顧諟上天所付之明命.
그러니, 요순이나 주문왕 주무왕을 삼왕(三王)이라 하면서 수천 년간 칭송한 것이 아니라, "어떤 시대에 명덕(明德)을 능히 밝힐 수 있는 누군가가 있었다"는 것으로 이제서야 이해가 되네요. 시대적으로는 탕임금이 주 문왕보다는 몇 백년 앞섭니다. 요순우 임금으로 계, 태강, 중강 뭐 그러면서 왕위가 이어지다가 걸 임금 때 와서 탕임금이 왕이 되고, 그 다음에 반경이 나온다던가 그렀습니다. 그러다가 주(紂)임금이 나면서 말희가 나오고 주지육림에 포락이라는 형벌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고, 주문왕 이야기가 나오거든요. 그런데, 100여년 전에 갑골문이 대거 발굴된 것 아시지요? 그 갑골문들을 해석해 보면 주
(紂) 임금이 그렇게까지 폭군은 또 아니었다고 하는 것 같더군요.
수천 년 전의 일을 누가 무슨 수로 어찌 알겠습니까만, 예전에 육도삼략 초반부에 대한 번역을 봤거든요. 주 문왕이 강태공을 만나면서 "태공(할아버지, 주 문왕의 할아버지)이 고대하던 사람이다"라고 해서 강태공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즉, 주 문왕은 야망이 있는 사람이었을 수도 있고, 역성혁명이라는 것이 실패하면 역모라고 해서 구족이 멸족을 당하거나 하는 그런 사건들이 옛날에 있었습니다. 역사가들도 그렇게 기록하지요. 반면, 역성혁명에 성공하면 기존 왕조가 부도덕하고 타락했다면서 갖은 나쁜 기록들이 남게 되지요. 단재 신채호 선생께서도 조선상고사에 그렇게 적었습니다. "나중의 왕조가 이전의 왕조를 미워하여..." 그러면서... 그러니 어쩌면 주 문왕이 나름 노력도 하고 애는 썼겠지만, 은나라 말기의 주(紂)왕과 주문왕과의 권력 투쟁이 있었다는 말일 수도있고, 주지육림이니 포락이라는 가혹한 형벌 같은 것도 조작일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것이지요. 단, 저는 100여년 전에 발굴된 갑골문에 주(紂)왕이 어떤 왕으로 기록되었는지는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다만, 관련 위키(Wiki)에는 그런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기는 하더군요.
유학 관련 고전에서 삼왕(三王)을 말할 때 요임금 순임금 주 무왕, 또는 주 무왕 이라고 해설하는 경우가 있는데, 대학을 읽어보다가 요즘 서경도 펴보고 시경도 펴 보고 그러거든요. 서경을 읽어봤더니 삼왕은 요순우 3명인 것으로 생각이 되더군요. 육도삼략 첫부분을 보시면 주 문왕이 강태공을 처음 만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장면에서 주 문왕이 삼왕(三王)을 말합니다. 즉, 주 문왕이나 주 문왕은 삼왕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말이지요. 물론, 육도삼략이라는 책에 나오는 여러 어휘들이 춘추전국시대에 등장한 어휘들이 일부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사실은 후대에 기록된 것이라는 말인데, 그렇게 치면 요순우 또는 요순탕이 삼왕(三王)이지 않겠습니까.
서경을 펴봤더니, 진짜 당시 고대 중국 백성들과 함께 뻘짓을 한 임금은 우임금이시더군요. 13년간 홍수를 해결하려고 집 앞을 세 번이나 지나치면서도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그런 내용이 있는데, 홍수를 해결하기 위해 9주를 매일 여기저기 떠돌아 다닌 것이 13년이라면, 그 만큼 당시 중국 사회 전체는 매우 곤궁한 상황이었을 수 있습니다. 말이 좋아 9년 홍수지 요즘처럼 쌀이나 보리 콩 등 농산물을 수입할 수 있는 시절도 아니었습니다.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면 홍수를 해결하고자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면서 굶어죽는 사람들도 봤을 것이고, 기아에 허덕이는 사람들도 봤을 것입니다. 널부러지 사람 시체 뿐만 아니라 동물들의 사체를 많이 봤을 수도 있습니다. 당연히 서경에 적혀 있는 그 내용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그렇습니다. 그리고, 우임금에 대한 기록을 보면 "평생을 검소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는 홍수를 해결하고자 전국 방방곡곡을 떠돌며 백성들의 삶을 보고 겪었다는 말일 수도 있는 겁니다. 그런 시대적 상황을 생각해 봤더니 요임금보다는 순임금이 순임금보다는 우임금이 더욱 대단한 분으로 이해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임금이 중국에서는 더 이상 나오지 않았지요. ㅡ,.ㅡ
그런 내용들을 보면서 삼왕(三王)이라는 말을 보게 되면 저는 요순우 세 임금을 꼽으려고 합니다. 이는 성리학에서 말하는 도통(道統)의 전승이라는 차원에서는 어긋나는 생각일 수 있습니다. 성리학에서 중요한 것은 도통(道統)이거든요. 그래서 요순 임금을 이어 주 문왕이나 주 무왕을 끼어 넣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소리를 조선시대에 태어나서 했다면, 저는 사문난적으로 몰려서 뒈졌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이 성리학의 시대는 아니잖습니까. 우임금을 제외하고 삼왕(三王)을 말하면 곤란하다는 그런 생각도 합니다.
대학과 관련해서 쓴 포스트에 성리학이 좋으면 성리학을 하고 양명학이 좋으면 양명학을 하시라고 적은 거 있습니다. 저는 성리학도 모르고 양명학도 모릅니다. 그냥 뭣도 모르는 놈이 사서 중 대학을 좀 더 잘 이해해보려고 서경도 펴보고 시경도 펴보고 하면서 든 생각입니다.
서경의 기록이 사실이라고 할 때, 백성들과 고락을 함께 한 우임금... 그리하여 평생을 검소하게 살으신... 백성들의 고난과 고통을 함께 보고 겪은... 백성들과 한 솥밥을 자셨겠지요? 농경 시대에 9년 홍수가 어떤 의미인지 잘들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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