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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佛敎)는 오랑캐의 법도다?

참그놈 2023. 4. 15. 18:52

중국이라는 나라가 유학(儒學) 또는 유교(儒敎)의 나라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제가 알기로 중국은 도가(道家)의 나라로 알고 있습니다. 나라에서 유학 경전으로 관리들을 선발하고 그러지만, 민간에서는 도교(道敎)가 성했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나라를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황제, 왕, 공후백자남, 공경대부, 상사중사하사와 같이 위계가 있는 유학이나 유교가 보다 유용했을 것을 감안하면 저 자신이 중국 왕이 된다고 하더라도 유학이나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삼겠습니다. 줄 세울 수 있잖아요. 신분, 서열, 계급으로... 그러나, 도교나 불교는 그런 위계가 현실적으로 유학이나 유교보다는 약하지요.

 

무협만화 보시면 구파일방이 나오거든요. 소림과 아미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주로 도교쪽이지요. 무당, 공동, 곤륜, 전진, 점창파 등등. 사람은 유유자적 하고 싶으나 현실(유교)이 과중한 세금을 원하니 출가하는 편이 나았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https://www.youtube.com/watch?v=1pl-4Xcq--Q 

 

 

당나라는 종교에 관대했다고 할까? 아니면 종교자유화를 추구했는지 모르겠는데, 어쨌거나 중국 당나라 시기에 불교만 성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도교가 밑바탕에 있고 불교가 더욱 융성하고 경교(景敎)라고 해서 기독교 역시 전파되었던 시기입니다. 각종 종교가 난무했다기보다 성행했다고 봐야 하는데, 중국 전통의 지식인 입장에서는 그런 것이 못마땅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중에 송나라 시기가 되었을 때 소위 주자라고 하는 주희라는 인물이 그 상황을 정리하는 시기가 도래합니다. 오경을 기반으로 돌아가던 유교를 논어 맹자 대학 중용 등 사서를 기반으로 하는 신유학(新儒學)이 등장하게 되는데, 그 배경이 된 것이 한유의 원도(原道)라는 글로 알고 있습니다. 나중에 또 다른 인물(이고?)이 복성서(復性書)라는 글을 쓰기도 합니다. 두 문헌이 배경이 되어서 주자가 대학장구서문에서 말하는 복기성초(復其性初)를 주장하게 됩니다. 그런데, 대학장구 서문이나 대학을 주석까지 있는 책을 읽어보시면 불교나 유교나 뭐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기도 하더군요.

 

불교 선종의 도맥을 자세히 모르지만, 달마로 시작하여 혜가, 승찬... 등으로 이어지다가 홍인, 혜능으로 이어지거든요. 홍인대사인가? 아니면 혜능대사의 라이벌이라고 할지 어떤 인물이 있었다고 하는데,

 

마음에 먼지 쌓이지 않게 부지런히 털고 닦으세

 

라고 게송을 남겼다고 합니다. 하지만, 혜능 대사는

 

본래무일물인데 먼지 낄 데가 어디냐?

 

라고 게송을 남기셨다고 합니다. 대학을 읽어보면 "먼지 쌓이지 않게 부지런히 털고 닦다보면 활연관통(豁然貫通)하게 된다" 라고 적혀 있답니다. 저는 그렇게 이해가 되더군요. ㅋ  하필 승려들은 결혼을 하나 정치를 하나, 그저 수행을 열심히 하는 것으로 아는데, 유교는 장가도 가야지 아이도 낳아야지 정치도 해야되지... 불교적 입장에서 보면

 

사대부 = 대처승

 

일 수도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절에 가면 불이문(不二門)이 있는 것일까요? 스님들도 술도 한 잔씩 자시고 고기도 먹고 고스톱(Gostop)도 가끔씩 치고 뭐 그런다잖습니까. 사람사는데가 다 거기서 거기... ㅡ,.ㅡ   에궁 송구합니다. 어쨌거나

 

돈오냐 점수냐 그도 아니면 돈수냐....

 

유학이나 유교는 돈오 쪽은 아니고 점수파일 것 같네요. 그래서 요즘도 점수가 중요하잖습니까. 수능 만점이 500점인가요? 제가 학력고사 보고 그럴 때는 340점이 만점이었는데...  그 점수(漸修)가 그 점수(點數)가 아닌가요? ㅋ

 

중국 역사에는 대동란의 시기가 여럿 있었는데, 그 때마다 인구의 과반 이상이 사망하는 처참함과 혹독함이 반복되었다고 합니다. 이상적인 사회윤리를 추구하려는 차원에서는 유학이나 유교가 보다 이상적인 모델로 생각되었을 수 있습니다. 신유학이 출현한 것은 필연이었을 수도 있지요. 당나라 시인 두보의 시 중에

 

귀족들 담장 안에서는 고기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데

서민들은 굶어서 얼어죽는다

 

고 적힌 것이 있습니다. 이상과 현실과의 괴리를 좁혔던 그런 역사가 중국에는 그닥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백성은 먹을 것을 하늘로 여기므로 백성을 굶기는 것이라면 유교든 도교든 오랑캐의 법도일 수 밖에 없지요. 정명석 교주 봐요. 성경을 진짜로 2000번 읽었는지 모르겠는데,

 

"내가 너를 꿈에서 보았다"

 

그 한 마디에 뻑이 가서는, 특히 여성들에게는 10달 동안 그냥 배가 부를 수 있는 특별한 재능이 생기기도 하고 그러잖아요. 그런데 도무지 정명석 교주를 군자나 성인이라고 하지 않거든요. 우리는 세종대왕님께 특히 감사드려야 한답니다. 구텐베르크와 마르틴 루터에게도 감사드려야 하고요. 왜 그래야 되느냐면... 옛날에는 사람들이 읽고 쓸 수 없었답니다. 읽고 쓸 수 있는 사람이 소수였지요. 하지만, 구텐베르크와 마르틴 루터로 인해 구라가 까발려졌거든요. 고가에 판매되었던 면죄부가 사실은 죄다 공수표였다는 것이 드러난 것이랍니다. 세종대왕님이 얼마나 대단한 분인지 아시겠어요? 그러므로 우리는 읽고 생각하고 논의하고 토론하고 협력해야 하고 뭐 그렇게 되지 않을까요?

 

가까운 나라에도 오랑캐의 법도가 있답니다. 칼을 목에 들이대고서는... 맞아 안맞아? 신사참배 할래 안할래? 했던...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