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 오경 중 서경(書經)에 사근동후(肆覲東后)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거기에서 東后가 누구냐를 두고 고대 순임금의 나라에 있던 동방 제후국 군주들이라는 설과 단군이라는 설이 있다고 합니다. 저는 후자가 맞다고 생각합니다. 東后는 단군이라는 뜻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역사논쟁이 지속되고 있는 시점에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한자(漢字)는 신분과 계급에 따라 몹시 가려쓰던 글자였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순임금이 지방의 제후들을 소집했다면 侯(제후 후)자를 썼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지요. 서경 원문을 보시면 后라고 적혀 있습니다. 윤내현 교수께서 시경 한혁편에도 그런 예가 있다고 언급하신 것도 있습니다. (윤내현 고조선 연구 참조)
https://www.youtube.com/watch?v=zd9oT_G_rrw
또 하나, 서경 순전 원문을 읽어보시면 위 영상에서 말하는 것처럼 달력이나 도량형을 맞추었다는 내용 있습니다. 2020년대인 요즘이야 달력이 흔하니 달력이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영화 천문(天問)을 보시면 달력을 만들어 배포할 수 있는 것은 황제의 고유권한 이라는 것을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장영실이 장 80도를 맞고 역사에서 사라졌다는데, 달려의 권위에 도전한다는 것은 절대자에게 도전한다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죽음이지요. 요즘에는 흔해빠졌는데...
서경 순전을 읽어보시면 순임금이 선기옥형을 만듭니다. 혼천의(渾天儀)라고도 하는지 모르겠는데, 천문관측 기구입니다. 동후(東后)에게 조회했는데, 천문을 관측할 수 있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천문이 황제의 절대적 영역이었다는 것과는 너무도 판이한 행위인데, 우리는 그 모습을 김부식의 삼국사(삼국사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이 모두 천문을 관측하여 일식이나 혜성 등에 관한 기록을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이 각각 남겼다는 것입니다. 즉, 단군조선은 천문이 관측되는 위치에 따라 다르게 관찰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구려가 당나라에게 패한 이후 천문은 완전히 황제만의 독점 권력이 됩니다. 그리하여 조선시대에 와서는 명나라에서 적어주는 달력을 종묘에 모셔놓고 명나라 달력에 따라 농사도 짓고 제사도 지내고 뭐 그랬지요. 이거 생각 잘 하셔야 합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는 단군조선이 없던 시기에도 천문은 지역에 따라 관측결과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뜻이니까요.
주나라가 건국된 것이 지금으로부터 기원전 3000여년 전입니다. 서경을 읽어보면 상나라 하나라 등이 지속된 기간도 500년 이상이고 요임금이나 순임금이 각각 100살은 넘게 사셨다고 나오거든요. 그렇다면 적어도 4000여년 전이라는 말인데, 순임금이 선기옥형을 만든 것이 순임금의 독창적인 사업일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천문이 오직 황제만의 권리라고 말하는 것은 무지에 기반한 오만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는 것이지요.
미국이라는 나라는 영토가 넓어서 동부와 서부간에 시차가 있다고 합니다. 중국 땅도 넓습니다. 당연히 시차가 있겠지요? 지금이야 근대과학이 발달해서 그런 시차를 극복할 수 있다지만, 근대과학이 도입되기 이전인 시대라면요? 물론 낙양이라는 곳이 경도상으로는 중국 영토의 중간쯤에 위치해 있어서 시차나 그런 것이 고대 중국 전체를 고려했을 때 별 차이가 없었을 수도 있지만, 시차라는 것은 24절기 72절후의 차이를 뜻하는 것입니다. 농업이 근간이던 시기에 절기를 놓치면 농사를 망치게 되지요. 모르긴 합니다. 그런 까닭으로 중국에서는 대동란이 반복되었을 수도 있고요. 농사에 실패하면 힘쎈 놈은 더 많이 가지고 약한 놈은 뺏기게 되고 뭐 그렇잖습니까.
당나라가 고구려를 이겼을 수는 있지만, 천문(天文)은 알지는 못했다는 묘한 내용이 되지요. 황제의 고유권한이라고 생각하고는 낙양을 근거로 농사를 지었으니까. 같은 시기 고구려 백제 신라는 제각각 천문을 기록했는데. 오만으로 가득하지만 정작은 무지하고 무식했다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지금도 그런 오만은 계속되고 있지요?
김부식이 지은 삼국사(삼국사기)에 고구려 백제 신라의 일식기록이나 천문기록이 각각 기록되었다는 것 절대로 간과하시면 안됩니다. 김부식 삼국사(삼국사기)를 읽어보시면 특정 시기에 중국에 조공했다는 기사들이 집중적으로 보이는 곳이 있습니다. 이덕일 역사TV를 보시면 그 내용에 대해 설명해 주는 것이 있는데, 중국에서 오는 사신들이 김부식의 삼국사(삼국사기) 곳곳을 들여다보면 중국사서와 비교해서는 "니들 조공했잖아!" 라며 갑지을 한 결과였다고 하더군요. 그런 갑질을 졸라 해댔음에도 고구려 백제 신라가 각각 천문현상을 기록했다는 것은 전혀 몰랐다는 말이 되는 거거든요. 고구려 영토가 하북성 어디였다거나, 신라가 만주에 있었다거나 백제가 해상세력이었다거나 하는 그런 내용보다 더욱 핵심적인 내용일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힘만 쎄면 다 내꺼야!
라는 무식하고 천박한 역사가 1000년을 넘게 이어왔다는 말이기도 하고... 쪽바리나 짱깨나... 대한민국 역사학계도 그렇지... 에라이... 십원짜리 욕이 마구 튀어나오려고 한다. 젠장할...
영상 내용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역사에 조금 관심이 있는 서민의 뇌피셜입니다. 그냥 재미삼아 보시고 참고삼아도 보세요. 서경을 읽어보셔도 좋고... 서경 읽어보시면, 주나라가 은나라의 계보를 계승했고 자신들은 서쪽 사람들이라는 것을 강조합니니다. 그런 부분이 나와요. 그런데 주나라를 건국한 세력이 서이(西夷)라고 하지요? 꼬박꼬박 은나라를 챙기는 모습도 보인답니다. 서경을 읽어보시되 어떤 관점으로 보는 것이 중요할텐데, 위 영상에서 기존의 서경 해설의 관점이 중국 유학의 관점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리하여 오역이 반복되었다고... 그러니, 잘 보셔야 되지요.
말이 나온 김에 쓰지요. 뭐, 은나라 마지막 왕 주와 달기?가 주지육림에 포락형을 하고 뭐 그랬다면서 졸라 무식한 임금으로 나오거든요. 하필 주나라가 건국된 것이 기원전 10세기 무렵인데, 청동기가 활발히 보급되는 것이 그 무렵 아닌가요? 당연히 생산력이 늘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저금리 시대에 대출 졸라 받아서 풍요롭게 사는 모습을 고대라는 환경과 비교할 수 있는데, 청동기의 보금으로 농업생산력이 증가한 상황을 은나라 마지막 왕인 주임금과 그 세력이 향유했을 수도 있는 겁니다. 갑골문 발견된 것 아시지요? 정작 갑골문에는 주임금이 그렇게까지 포악한 임금이 아니었다고 적혀 있다더라고요.
주나라가 은나라를 멸하고도 은나라의 예를 계속 이었다거나 하는 것을 보면 - 서경 읽어 보시면 그렇게 적혀 있습니다 - 어떤 생산력 증가에 따른 일시적 호황을 누리던 모습이 이해불가한 모습으로 보였을 수도 있고 뭐 그렇지 않았을까? 라고 추측해 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역사를 모르는 서민의 뇌피셜입니다. 김부식의 삼국사(삼국사기)에 기록된 천문기록을 간과하지 말라는 것은 진심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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