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에 갔다가 칠조어론 1권을 구입해서 집에 왔습니다. (25년 전ㅡㅡ? 기억 안나네요) 당시만 해도 표지가 너무나 특이해 보여서 펴들고 잠깐 읽어 봤는데, "촌승금일 사불획기 곡순인정 방등차좌(한자 생략)"로 시작하는 작품의 내용이 어렸을 때 길거리에서 보던 약장수들이 떠올라 "이거 재밌겠는데!" 하는 생각에 무작정 구입을 했었습니다. 박상륭이라는 작가에 대해서도 그 이전 작품에 대해서도 전혀 알지 못할 때입니다. 하지만 정작 집에 가지고 와서 읽기 시작하면서 몇 달동안 생똥을 쌌습니다. 젠장 이게 무슨 말이야... 그렇게 칠조어론 4권을 읽는데 6개월이 걸렸습니다. 표지그림이 특이하지 않았다면 서점에서 펼처 볼 하등의 이유조차 없던 책이었습니다. 무식하고 무지했기에 칠조(七祖)라는 말도 몰랐고 작가인 박상륭님에 대해서도 전혀 알지 못했으니까요.
그렇게 박상륭이라는 작가의 이름이나마 알게 되었고 동 작가의 작품 중에 "죽음의 한 연구"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칠조어론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라 이전 작품을 구입해서 읽은 것이지요. 문학도 소설도 모르지만 어떤 작가의 작품은 연속성을 띄지 않겠어요? 칠조어론이 이해가 쉽게 되는 작품이었다면 죽음의 한 연구는 또 몰랐을 수도 있습니다. 혹시 "죽음의 한 연구"를 읽어보셨나요? 그냥 감동이었습니다. 칠조어론은 이게 무슨 말이야 싶어 골치만 앓았지만 죽음의 한 연구는 난해한 가운데 그나마 읽고나니 "우와~~~~~~~~" 하는... 그런 감동이 있었습니다.
죽음의 한 연구를 읽을 때, 처음에는 다른 책을 읽는 것처럼 눈으로 읽었지만 문장이 너무 길어서 읽다가 혼란에 빠지기가 한 두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상권 절반 정도를 보다가 결국에는 책을 덮고 처음부터 다시 펴서 소리 내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헷갈리지 않으려고 제가 택한 읽기 방법이었습니다. 문장이 길다는 까닭으로 책읽기의 내공이 빈약한 저로서는 그럴 수 밖에 없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소리 내어서 마지막 장까지 다 읽었을 때 저는 감동에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책을 많이 읽지는 못했지만 살면서 제게 큰 감동을 준 책 중의 하나가 "죽음의 한 연구"입니다. 그리고 생각하는 것이지만 이 책은 어떤 외국어로도 번역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도 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까닭 중 하나를 여기다 쓰겠습니다. 작품 첫 머리에...
"공문(空門)의 안뜰에 있는 것도 아니고 바깔뜰에 있는 것도 아니어서, 수도도 정도에 들어선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세상살이의 정도에 들어선 것도 아니어서, 중도 아니고 그렇다고 속중(俗衆)도 아니어서, 그냥 걸사(乞士)라거나 돌팔이중이라고 해야 할 것들 중의 어떤 것들은, 그 영봉을 구름에 머리 감기는 동녘 운산으로나, 사철 눈에 덮여 천년 동정스런 북녘 눈뫼로나, 미친 년 오줌누듯 여덟 달간이나 비가 내리지만 겨울 또한 혹독한 법 없는 서녘 비골로도 찾아가지만, 별로 찌는 듯한 더위는 아니라도 갈증이 계속되며 그늘도 또한 없고 해가 떠 있어도 그렇게 눈부신 법 없는데다, 우계에는 안개비나 조금 오다 그친다는 남녘 유리(羑里)로도 모인다."
라며 대략 400여자에 이르는 첫 문장이 나옵니다.
이 첫 문장에서 눈여겨 보아야 할 단어가 "아니고" 라는 단어라고 생각합니다. "아니고"는 Not, No 또는 Never라는 뜻일 수도 있지만 Inner(內, 안이고) 라는 뜻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즉, 아니라는 부정사(Not or Never)와 안(Inner)이라는 의미를 우리말의 특성을 활용하여 중첩해서 쓴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걸 무슨 수로 외국어로 번역을 할 수 있을까요?
칠조어론 1권 제일 앞 부분에 안과 밖에 대한 이야기를 부연설명(?)하고 있습니다. 에궁 책 펴서 찾으려니... 저는 책 표지가 특이해서 박상륭이라는 작가를 알게 되었지만, 아는 사람만 아는 작가인 것 같더군요. 생판 모르는 저야 표지 그림이 희안하고 약장수 생각이 나서 재밋겠다는 생각에 푼전을 주고 샀다지만... (칠조어론 1권 뒷부분에 "누가 이런 책을 읽겠다고 푼전을 쓰겠는가?" 라고 작가가 말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저는 진짜 재미있을 줄 알고 샀어요. ㅠㅠ
최인훈님의 "광장"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이런 작품은 외국에 소개가 된다면 한반도의 특수한 상황을 전달할 수는 없을지언정, 즉, 이념투쟁의 한 갈래라는 관점에서 어쩌면 서구사회에서 "음, 이런 작품도 있네!" 라는 생각을 할 지도 모릅니다. 그 만큼 인류사에 대한 보편적인 관점을 함유하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 젠장 문학은 고사하고 소설도 모르면서 이런 포스트를 쓰려니... ㅡㅡ ... - 그러나 죽음의 한 연구는 도무지 어떤 외국어로도 번역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한 것이 20년이 넘었고 이 작품이 해외에 번역되어 소개되었다는 뉴스도 본 적이 없습니다. 두 작품, 광장/구운몽과 죽음의 한 연구를 동시에 비교한다면, 광장은 읽는 이로 하여금 한 없이 회의하게 만드는 작품이라면, 죽음의 한 연구는... 글쎄 읽어들 보세요. ^^;;
죽음의 한 연구를 소리 내어서 읽고 난 후 나름의 감동을 느낀 후 해설을 보았습니다. 김현님의 해설과 또 다른 한 분의 해설 두 편이 있었습니다. 뭔가 제가 읽은 후 이해가 되는 해설은 김현님의 해설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마음은 김현님의 해설 쪽을 선호(?)한다고 해야 하나?
김현 님은 우리나라 최고의 문학평론가이셨다고 합니다. 제가 죽음의 한 연구를 읽을 무렵까지도 김현이라는 이름조차 잘 알지 못하던 때입니다. 몇 가지 소설에서 김현님의 해설을 읽어 본 적이 있는데도 그렇습니다. 작품 해설을 김현 교수가 해 놓은 해설을 읽으면서도 김현 교수가 어떤 분인지 뭐 그런 것은 전혀 몰랐던 것이지요. 뭐 지금도 잘 모릅니다.
어쨌거나 김현 교수의 해설에 "죽음의 한 연구"를 소리내어서 읽어 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저는 책읽기의 내공이 부족한지라 앞에 읽었던 부분과 이어지는 부분을 헷갈리지 않으려고 소리내어서 읽은 것이었는데, 그렇게 소리내어서 끝까지 읽은 뒤 작품 해설에 "소리 내어서 읽으라"고 권하는 글을 보게 된 것이지요. 저는 김현 교수가 왜 소리내어 읽으라고 했는지 모릅니다.
한때 소설가 지망생들이 "죽음의 한 연구"를 옆구리에 끼고 다니며 경전처럼 읽었다는 이야기를 어디서 읽었습니다. 저는 문학도 소설도 모르고 그런 지망생도 아니었다보니 그런 분들의 안목이나 문학가적 소양? 뭐 그런 것은 전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 작품 "죽음의 한 연구"는 외국어로 절대 번역되지 못하리라는 생각을 한 두 번째 이유는 "우리말의 리듬(?)" 때문입니다. 내 마음은 호수요 같은 문장 기법상의 수사법이 아니라, 박상륭 님의 작품들은 문장이 다 깁니다, 문장호흡이 길어서인지 소리내어서 읽을 때 눈으로만 읽을 때 느끼지 못하거나 느낄 수 없는 이외의 어떤 느낌(?)을 줍니다. 바로 그 느낌! 그 느낌 때문에 박상륭님의 작품 "죽음의 한 연구"는 어떤 외국어로도 번역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또, 소리내어 읽어야 할 작품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혼자 느끼는 것이지만, 한글을 배운 한국인이라면 꼭 한 번 소리 내어 읽어 보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오선지나 정간보로 표시하지 않은, 또는 못하는 가락이 죽음의 한 연구 속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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