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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기 26 경해, 중국 한(漢)대의 조작?

참그놈 2020. 9. 2. 18:09

예기(禮記) 라는 책이 있습니다. 사서오경 중의 하나이고 총 49편인데 대학(大學)과 중용(中庸) 두 편이 별개의 책으로 분리되어 47편이 남아 있습니다. 그 중 26편이 경해(經解) 라는 편입니다. "경(經)을 풀이한다, 해설한다" 뭐 그런 뜻입니다. 내용은 다음과 같이 시작합니다.

 

孔子曰 入其國其敎可知也. 其爲人也溫柔敦厚, 詩敎也. 疏通知遠, 書敎也. 廣博易良, 樂敎也. 絜靜精微, 易敎也. 恭儉莊敬, 禮敎也. 屬辭比事, 春秋敎也. 故詩之失愚, 書之失誣, 樂之失奢, 易之失賦, 禮之失煩, 春秋之失亂.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어떤 나라에 가게 되면 그 나라 교육의 전체 수준을 알 수 있다. 사람이 온유하고 돈후한 것은 시(詩: 詩經)의 가르침이고, 오래 전의 일을 아는 것은 서(書: 書經)의 가르침이며... 이후 해석 생략.

 

 

예기를 전부 읽어 본 것은 아니지만 경을 해설한다는 편명때문에 펴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읽는 순간 "이건 조작이네!" 라는 생각이 불쑥 들었습니다. 시경이나 예기, 또 서경, 춘추 등에 대한 해설을 보면 모두 모두 공자가 편수했다는 설명이 있습니다. 서경의 경우 전해오는 문적들 중에서 100편을 골라 만들었는데 진시황의 분서갱유에 불타 복생이 전한 28편이 남았다. 시경의 경우도 몽땅 모아다가 311편?만 남겼다. 춘추도 노나라 사가들이 쓴 기록을 모아다가 지었다 등등.

 

공자가 책들을 편수한 당시에 중국 전역 - 당시 중국의 영토는 지금의 절반 정도였을까요? - 에 요즘의 베스트 셀러 같은 폭풍같은 전파력으로 모두에게 알려졌다는 말이 됩니다. 3일만에 유튜브 조회수 1억뷰를 찍듯이 전파되어서 온 나라가 감동하여 모든 사람들이 숙지했다? 말도 안되죠. 공자가 살던 시기는 제자백가가 백가쟁명 하던 시기인데...   공자 자신도 여러 나라를 떠돌잖아요. 

 

게다가 당시에는 종이도 없었습니다. 죽간에 기록을 하던 때입니다. 게다가 한자도 지금같은 체가 아니라 공자시대에는 과두문자라는 것을 쓰던 때입니다. 요즘 흔히 보는 한자의 모양을 해서(楷書)라고 하는데 이런 서체는 한(漢)대를 지나서 훨씬 후에 개발된 것으로 압니다. 진시황때에 예서(隸書)로 통일했고 그 이전에는 나라마다 글자들도 제각각 달랐지요. 진시황의 업적 중에 문자와 도량형을 통일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5경을 모두 모으면 글자 수가 한 20만자 될까요? 춘추시대에 나라가 수 백개였는데 대규모 출판을 위해서 그걸 대나무쪽에 새긴다? 책을 만들어 공공연히 출판을 하던 시기는 더욱 아니었습니다. 공자가 살 당시에는 나라마다 글자도 다를 때인데...

 

춘추라는 역사책도 문제가 됩니다. 춘추시대 노나라에서는 역사를 춘추(春秋)라고 했지만 진나라에서는 승(乘)이라고 했고 초나라에서는 도올(檮杌)이라고 했습니다. 나라마다 역사를 칭하는 이름이 달랐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미 춘추가 중원 전 지역이 본받는 책이다?

 

한(漢)나라는 유학(儒學)을 통치이념으로 삼았습니다. 민간에서는 도교가 보다 널리 전파되어 있었지만 국가의 통치나 행정은 유학을 따랐지요. 진시황이 분서갱유로 모든 책들을 불사른 것과 달리 한나라는 진나라와 다른 정책을 추진한 것입니다. 유학을 통치이념으로 삼으면서 필요한 이념이나 교훈 등을 전파하기 위한 서적들을 공자와 맹자에 가탁하여 조작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유학(儒學)도 모르고 한문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가 알고 있는 상식으로 판단한 것이므로 사실 여부는 알 수 없기는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