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문의 첫번째 구이지만 마지막 구일 수도 있습니다. 이문구님의 관촌수필에 천자문을 앞에서부터 순서대로 다 외운 뒤에 뒤에서부터 다시 외웠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천자문 마지막 구가 위어조자 언재호야인데 야호재언 자조어위로 읽고 외웠다는 말입니다.
실제 사람이 천지현황 우주홍황이라는 글(사상)을 추출해 내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렸을까요? 사람이 문자를 쓰기 시작한 것이 1만년 정도라고 했을 때, 최초의 인류는 진화학이나 고고학에서 400만년 정도(오스트랄로피테쿠스)를 추정하니까, 천지현황 우주홍황이라는 구를 추출해내는데 399만 몇 천년이 걸렸을 수 있습니다.
사람이 문자를 발명하자마자 곧바로 천지현황 우주홍황이라고 했을까요? 아마 그렇지 않을 겁니다. 100여년 전에 발굴된 갑골문에도 점을 치고 그 결과를 적은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고 하더군요. 갑골문이 쓰인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수 천년 전입니다. 그렇게 문자를 쓰면서 또 적지 않은 세월이 흘러서야 비로소 천지현황 우주홍황이라는 결론적 사고를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한편, 세상은 계속 발전해 왔습니다. 천자문이 처음 쓰였을 당시의 하늘은 중국에서 보이는 중국 주변의 하늘을 일컫는 글자였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세상은 지구촌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므로 작금의 하늘은 남반구 북반구 남극 북극을 모두 아우르는 하늘(天)일 수 있습니다. 그런 까닭으로 사람의 사고력과 인식능력이 향상될수록 하늘과 우주는 새롭게 정의될 수 있기 때문에 천지현황 우주홍황은 천자문의 첫구절이 아니라 마지막 구절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목에 첫번째 구를 뜻하는 1을 앞에 두고 마지막 구를 뜻하는 125를 제목 마지막에 붙였습니다)
하늘 천天자에는 말 그대로 눈에 보이는 하늘 외에 만물의 근본, 진리, 임금, 아버지, 남편 등등의 뜻이 있습니다. 작게는 가정에서부터 크게는 국가, 더 크게는 온 세상을 주재하는 주재자로 설명됩니다. 한편, 하늘에 대해 참전계경에서는 눈에 보이는 하늘과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늘을 구별하며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늘이 진짜 하늘이라는 설명도 있습니다. 성경에도 태초에 하느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라고 하셨으니 아마 하느님이 계시는 곳은 천지 창조 이전의 어느 곳이라는 뜻일텐데 혹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늘일까요?
천자문의 하늘天은 눈에 보이는 하늘이 아니라 저 우주宇宙 끝까지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테두리를 우(宇)라고 한답니다. 빛의 속도로 백년 천년을 가도 아직 얼마든지 빛은 더 달릴 수 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하늘이며 우주는 도대체 얼마나 큰 것일까요?
예로부터 동양에서는 하늘을 작게는 네부분에서 아홉부분 또는 서른 세 부분으로 나눠서 생각했나 봅니다. 그래서 구천(九天)이라거나 구중천(九重天) 삼심삼천(三十三天)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예전에 자전에서 하늘 천에 대해서 찾아본 적이 있는데 불가의 하늘과 유가의 하늘이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구천(九天) : 하늘을 中央 四正 四隅의 아홉 분야로 나눈 칭호.
중앙 鈞天(균천)
四正 : 東(동) - 蒼天(창천), 西(서) - 昊天(호천), 南(남) - 炎天(염천), 北(북) - 玄天(현천).
四隅 : 동북 - 旻天(민천), 동남 - 陽天(양천), 서북 - 幽天(유천), 서남 - 朱天(주천)
이 외에도 불가의 33천이나 도가의 33천이 있는 것으로 알지만 너무 복잡해서 ㅡㅡ;;; 생략합니다.
천자문 해설에 玄(아득할 현)을 검다고 해석하면서 黑(검을 흑)이라고 쓰지 않았습니다. 단지 색깔만을 표시하는 것이라면 黑을 썼을텐데 검게 보이는 색깔 이상의 무엇인가가 있다는 뜻일 겁니다. 새벽이나 해질녘에 보이는 하늘은 붉고(赤) 낮에 보는 하늘은 푸르며(靑, 蒼), 밤에 보는 하늘은 검고 어두우니까요(黑, 暗). 玄은 단지 검은 것이 아니라 아득하여 헤아릴 수 없다는 뜻일 겁니다. 파란 건물도 빨간 건물도 자꾸자꾸 거리가 멀어지면 결국 까만색으로 보이거든요. 玄은 그런 검은 색으로 보입니다.
사막에서 모래를 한 줌 쥐고는 흙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모래가 수분과 각종 유기물, 광물이나 바이러스 등이 뒤섞여 있어서 각종 식물을 키워낼 수 있는 흙(土)이 됩니다. 반대로 흙 한 줌을 사막 한가운데 두게 되면 결국 푸석푸석해져서 언젠가는 아마 모래가 될 겁니다. 과학적으로는 지각이 분해되었다고 하는데 인간이 지구에 살게 된 지 얼마나 되는 지 알 수 없으나, 수 없이 비가 오고 햇볕이 내리쬐고 바람이 불면서 풍화작용을 거쳤을테지요.
흙은 사람이나 동물이나 식물에게 없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식물이 자라야 그 식물을 먹는 동물이 있고 또 그 동물을 인간이 활용하니까요. 어쨌거나 세상은 흙으로 가득합니다. 그 흙 중에서 사람이 농사를 짓거나 목축을 하며 거주하고 영역으로 인식하는 부분을 땅(地)라고 합니다. 天玄而地黃 이라고 하였으니 地黃의 黃(누를 황)은 단지 모래가 아니라 각종 영양분이 뒤섞여 뭔가를 키워낼 수 있다는 뜻을 나타낸다고 생각합니다. 즉, 황(黃)은 땅의 색깔이 아니라 식물이 자라게 할 수 있는 근간이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래야 초식동물이 풀을 먹고... 먹이사슬은 생략.
현대적인 기계과학 기술이 발달하기 전에 땅(地)은 모든 생산의 근원이었으므로 보다 많은 땅을 확보한다는 것은 보다 부유하고 강한 나라가 된다는 뜻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수 천년 동안 더 많은 땅을 확보하기 위해 황무지를 개간하거나 인접국가와 땅을 뺏기 위한 전쟁을 하기도 했습니다.
땅이 평평하면 평지(平地)라고 합니다. 재산권을 행사하기 위해서 구획을 짓는데 쓰는 글자도 평(坪)입니다. 한 평 두 평 하지요? 사람이 경작하지 않지만 초목이 자라는 땅은 野(들)이라고 하고, 땅도 척박하고 자갈도 많은 등 경작을 하기 힘들거나 한 땅을 황무지(荒蕪地)라고 합니다. 사람의 의식이 개발되기 전에는 곳곳에 제사를 지냈습니다. 하늘에 땅에 큰 산에... 곳곳에서 제사를 지냈는데, 제사를 지내기 위해 흙을 모아 壇(단)을 만듭니다. 또 홍수 등을 막기 위해서 堤防(제방)을 쌓기도 합니다. 평지보다 높은 언덕(丘)이 있고 그 보다 더 높은 山(산)이 있습니다. 산의 툭 튀어나온 부분을 峰(봉)이라 하고 산 등성이를 崗(강)이라 합니다. 산꼭대기를 頂(정)이라고 하지요.
평지를 기준으로 높이 쌓이거나 솟은 땅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땅을 파서 흙덩이(塊)를 꺼내면 구덩이 塹(참)가 생깁니다. 그 구덩이에 사람(人)을 묻으면(埋 묻을 매) 墓(묘)가 됩니다. 더 깊고 넓으면 호수(湖)가 되기도 하고 연못(澤 or 淵)이 되기도 하죠.
이상에서 땅(地)을 사람이 활용하는 용도에 따라 갖가지 글자가 파생되어 나온 것을 보았지만, 만물을 키워내는 땅의 속성을 나타내는 글자는 坤(땅 곤)입니다. 그와 상대되는 하늘의 속성을 뜻하는 글자는 乾(하늘 건)입니다. 흔히들 乾坤(건곤)이라고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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