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연의에 등장하는 수 많은 인물 중에 유독 관우는 수염이 깁니다. 그리고 관우를 그린 그림을 보면 멋있다고 해야 할까요? 최근 박기봉 역 삼국연의를 보던 중에 한나라 헌제가 관우의 수염을 아름답다고 칭찬하는 부분을 읽었습니다. 그러면서 미염공(美髥公)이라는 별명이 생기지요. 그 부분의 모종강 협평에 한필(閑筆)이라고 해 두었더군요. 한필(閑筆)의 뜻을 "한가하게 잠시 쉬어가는 부분으로 첨가했다" 뭐 그렇게 이해를 해야 할까요? (이하 그냥 삼국지라고 하겠습니다)
어릴 때 삼국지를 볼 때는 별 생각없이 읽고 지나갔습니다. 제가 자랄 때는 이미 수염을 기르고 있는 분들이 거의 없던 시기였기도 했고, 사극에서 수염이 있는 사람들을 보게 되면 "옛날에는 저랬나 보다"라고 단순하게 생각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어쩌다 수염을 기른 분들을 가끔 보기는 했습니다만 드물었기 때문에 수염의 의미에 대해서 딱히 생각해 보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삼국지를 또 읽어 보니 "관우의 수염은 보통 수염이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삼국지 전체에 수염이 언급되는 사람은 조조와 관우 장비 등을 제외하면 몇 명 없는 것으로 압니다. 그 중 조조는 도망치다 수염이 잘리는 등의 수모를 겪기도 하지요. 관우가 가죽 주머니에 수염이 빠질까봐 보호(?)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삼국지(삼국연의)의 시작은 십상시 즉, 환관의 횡포에서 시작됩니다. 환관은 수염이 없습니다. 또 어린 아이들과 여성은 수염이 없습니다. 남성이라면 누구나 수염이 나고, 나이가 들수록 수염 역시 점점 길어집니다. 게다가 예전에는 수염을 자르지 않았습니다. 수 천년 전부터 불과 100여년 전까지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라고 하는 유가의 가르침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위로 황제로부터 아래로 천민에 이르기까지 수염은 남성이면 누구에게나 납니다. 그런데, 모발은 사람의 영양상태에 따라 그 결이 다릅니다. 즉, 어떤 사람의 수염이 잘 자랐다는 것은 그 사람의 영양상태가 좋고 사회가 안정되어 있다는 것을 수염이 없는 환관의 횡포와 대비해서 돋보이도록 칭송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불쑥 든 것입니다. 게다가 수염은 어른이라는 의미입니다. 한 집안의 어른, 한 마을의 어른, 즉 마을을 대표할 수도 있는 상징인 것입니다. 매 집안마다 각 고을마다 잘 자란 수염을 가진 어른이 가득한 나라라는 것은 경제적인 면 외에도 제도적으로도 안정되어 있다는 뜻이 될 것입니다. 수염이 끊어지는 수모를 견딘 조조는 한 마디로 지위나 신분은 고사하고 자연적으로 부과되는 체통마저도 지킬 수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헌제가 관우에게 가죽 주머니를 치워보라고 하자 수염이 배(腹)를 지나서 늘어집니다. 백성은 먹을 것을 하늘로 여긴다고 하는데, 관우의 수염이 배(腹 : 음식물이 저장되는 곳)를 지나서까지 자란 모습을 보고, 그 모습이 아름답다고 황제가 칭송하는 겁니다. 먹을 것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나라, 먹을 것 걱정이 없는데 입을 것 걱정을 할까요? 혹시 헌제는 당시를 살았던 한나라 사람들의 수염이 모두 그렇게 아름답기를 바랬던 것은 아닐까요? 황제 자신 뿐만 아니라 3공9경으로부터 천민 남성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미염공 같은 수염을 가진 나라라면, 그런 나라라면 어떤 시대 어떤 지역에서도 세계 최강대국의 면모를 보일 것이니까요. 뭐, 엉뚱한 생각일 수 있습니다만...
한편, 관우는 의기와 충절의 상징입니다. 한밤에 촛불을 켜놓고 수염을 쓸어내리며 경서를 읽는 관우의 모습은 영양 상태 뿐만 아니라, 그 태도 역시... 의기니 충절이니 다 팽개치고 수염이 잘리는 것도 모른 채 도망치기 바빴던 조조와 극명한 대비를 보여주는 장치라고도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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