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책을 보다가 도산 안창호 선생이 쾌재정(快哉亭) 이라는 곳에서 연설을 하신 것이 있다고 해서 혹시 전문을 볼 수 있을까 하여 검색을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녹음기도 없고 누군가 기록하지 않아서 쾌재정 연설의 전문은 남아 있지 않다고 합니다. 아래 두 단락이 제가 검색해서 찾아볼 수 있는 전부였습니다.
"쾌재정(快哉亭 : 이하 한자 생략) 쾌재정 하기에 무엇이 쾌한가 했더니, 오늘 이 자리야말로 쾌재를 부를 자리올시다. 오늘은 황제 폐하의 탄일(생일)인데, 우리 백성들이 이렇게 한데 모여 축하를 올리는 것은 전에 없이 처음 보는 일이니, 임금과 백성이 함께 즐기는 군민동락(君民同樂)의 날이라 어찌 쾌재가 아니고 무엇인가? 감사 이하 높은 관원들이 이 축하식에 우리들과 자리를 함께하였으니 관민동락(官民同樂)이라 또한 쾌재가 아닐 수 없도다. 남녀 노소 구별없이 한데 모였으니 만민동락(萬民同樂)이라 더욱 쾌재라고 하리니, 이것이 또한 오늘 쾌재정의 삼쾌(三快)라 하는 바로라.
세상을 바로 다스리겠다고 새 사또가 온다는 것은 말뿐이다. 백성들은 가뭄에 구름 바라듯이 잘살게 해주기를 쳐다 보는데, 인모(人毛) 탕건을 쓴 대관, 소관들은 내려와서 여기저기 쑥덕거리고 존문(存問)만 보내니, 죽는 것은 애매한 백성뿐이 아닌가? 존문을 받은 사람은 당장에 돈을 싸 보내지 않으면 없는 죄도 있다 하여 잡아다 주리를 틀고 돈을 빼앗으니, 이런 학정이 또 어디 있는가? 뺏은 돈으로 허구한 날 선화당에 기생을 불러 풍악 잡히고 연광정에 놀이만 다니니, 이래서야 어디 나라 꼴이 되겠는가? 진위 대장은 백성의 생명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 책임인데 보호는 커녕 백성의 물건 빼앗는 것을 일삼으면 우리나라가 어떻게 되겠는가?"
도산 안창호 선생의 쾌재정 연설 전문이 남아있지 않다고 해도 위 두 단락만으로도 핵심 내용은 부분적으로나마 짐작이 되네요. 그러나, 아시다시피 도산 안창호 선생은 독립운동에 헌신하셨습니다. 위 두 단락만으로는 당시 조선이 부패했음을 알리는 단서 밖에 볼 수 없는 것이 아쉬운 부분이라고도 하겠습니다. 물론, 위 연설은 1897년에 하셨다니 조선이 일본에 강제병합을 당하기 이전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병인양요나 신미양요 등이 연설 이전에 있었고 외국으로부터 통상 요구가 많이 있고 그럴 때 아닌가요? 부분적으로만 짐작이 가능하다고 하는 것은 그런 부분입니다.
안중근 의사께서 동양평화론을 쓰셨다고 합니다. 문고판으로 된 것을 읽어봤는데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요즘 기준으로 말하면 한중일 삼국이 아시아 경제공동체 같은 것을 만든다거나 하는 그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일종의 아시아 연합체를 구성하고 서구 제국주의 열강을 견제하자는 내용이었지요. 안중근 의사께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것이 1909년이라고 검색하니까 나오네요. ㅡ,.ㅡ 사실은 몇 년도인지 정확하게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토 히로부미가 누굽니까 당시 일본에서 제일 잘 나가는 인사였는데, 당시 일본에서 제일 잘 나갔으면 세계적인 인물이었다는 것이지요? 요즘 일본과 당시 일본은 국제적인 위상이 다르답니다. 요즘 일본인들은 노벨상을 받아도 미국인이라고 한다잖아요. 하지만 당시는 노숙자라도 일본 노숙자라고 했을만큼 일본은 국제적으로 알아주는 나라였어요. 어쨌거나 안중근 의사께서 그런 인사를 저격했다는 것은 안중근 의사께서 나름 파악하고 있는 국제정세라고 해야 할까? 뭐 조국의 안정과 발전 및 더 나아가 인접국들간의 WinWin 전략과 같은 그런 안목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이토 히로부미는 그 반동의 길을 가고 있었다고 판단하셨나 봅니다. 한편, 도산 안창호 선생께서는 어떤 생각을 하고 계셨을까요?
현재 전하고 있는 쾌재정 연설 일부만으로는 병인양요나 신미양요, 제물포 조약 등등 조선을 중심으로 하는 당시의 국제정세를 전혀 파악할 수 없습니다. 단지 조선의 관리들이 부패했다는 것만 알 수 있는 내용만 남은 것이지요. 일본이 조선총독부를 세워서는 조선인들을 가르치면서 조선인들이 자신들의 부조(아버지와 조상)를 업신여기도록 가르치라고 했다던데, 하필 쾌재정 연설에 관한 내용이 조선총독부가 좋아할만한 내용만 남은 것 같기도 합니다. 조선의 관리들이 부패한데다 행패나 부리고 기생 불러 풍악이나 논다는 내용만 남았으니까요. 그러나, 도산 안창호 선생께서 평생을 독립운동에 헌신하셨다는 내용을 우리가 알고 있으므로 전하지 않는 쾌재정의 다른 부분을 유추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지만 저야 원체 생각없이 살아온 세월이라 그런 자질도 부족하고 능력도 안되는 것이 한이네요. ㅡ,.ㅡ
썩어빠진 조선(?), 안창호 선생께서도 조국을 떠나 미국에 거주하셨지요? 그 자녀분들도...
쾌재정 연설의 전문이 원래는 다 전하고 있었는데 혹시 누군가 의도적으로 뒷부분은 전하지 않는다며 감추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식민지 근대화론 같은 말도 되지 않는 학설 같은 것들과 궤를 맞추려고 고의로 버렸을 수도 있고, 아니면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 따라 실제로 쾌재정 연설의 뒷 부분이 전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어찌 되었건 조선사회가 썩어빠쳤다는 내용만 남은 것은 아쉽네요. 한일 강제병합 이후 폭력적이고 강압적이긴 하지만 어쨌거나 근대화 과정을 거친 것은 사실이니까요. 일본은 칼잡이들의 나라였지만 조선은 문필의 나라였습니다. 사서나 오경 당시 송시 등을 몽땅 외우던 나라였지요. 단재 신채호 선생의 기억력에 관한 일화를 생각해 보면, 당시 조선의 모든 선비들이 단재 신채호 선생만큼의 기억력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을망정 연설문 하나를 기억하지 못할만큼 당시 상황이 다급하고 혼란스러웠을까요? 이 부분 역시 납득이 잘 안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글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야사 논쟁을 비밀리에 개최한다 (0) | 2021.11.02 |
---|---|
국로추사(菊露秋寫)... (원문 PDF) (0) | 2021.11.02 |
일본서기의 모양새 (0) | 2021.10.29 |
단군을 일본에서 역사로 기술했다고...@@? (0) | 2021.10.26 |
고구려 평양성에서 바라보는 초주와 해주 (0) | 2021.10.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