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짬이 고(故) 신영복 교수의 강의 : 나의 고전독법을 읽어보고 있는데 서문을 지나서 본문을 읽다 보니 시경(詩經) 국풍(國風) 주남(周南)에서 여분(汝墳)이라는 시를 처음 소개하고 있습니다.
汝墳
遵彼汝墳 伐其條枚 未見君子 惄如調飢
遵彼汝墳 伐其條肄 旣見君子 不我遐棄
魴魚頳尾 王室如燬 雖則如燬 父母孔邇
신영복 교수의 강의 라는 책에 의하면 모시(毛詩) 서(序)에서는 은나라 말의 폭군 주(紂)왕의 사역이 여분(汝墳)이라는 시의 배경이라고 하는데, 현대에서는 서주(西周) 말로 보는 것이 통설이라고 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느 때의 시(詩)로 생각되십니까? 사실은 저는 위 시를 처음 보는데 저는 서주 말 보다는 은나라 말의 폭군 주(紂)왕의 사역이 여분(汝墳)이라는 시의 배경으로 생각되네요. 그 근거는 방어(魴魚) 라는 물고기 때문입니다.
방어라는 물고기 외에도 魴魚頳尾 王室如燬 雖則如燬 父母孔邇 라는 장(章)을 보시면, 왕실여훼, 부모공이 라고 적혀 있지요? 맹자가 만승지국 시기국자 필천승지국... 어쩌고 저쩌고 하던 때가 전국시대였습니다. 맹자가 전국시대의 일을 맹자에 적었을까요? 아마 춘추시대에 있었던 일들은 맹자에 적었지 않나 싶습니다. 서주 말이라면 바야흐로 춘추시대로 접어들 시기라는 말인데, 그래도 춘추시대 들어가지 전 까지는 주나라 왕실이 그나마 좀 안정적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서주 말에 호경 남쪽(현재의 시안 또는 약간 더 서쪽)에서 채록된 시에 방어의 생태를 알고 있는 사람이 살았다? 참 신기한 일이네요. ^^;;
방어 꼬리가 붉은 것은 방어가 피곤하면 그렇게 변한다고 하는데, 바다에서 잡은 방어를 중국 내륙에서 키웠을 리는 없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방어가 피곤하면 꼬리가 붉어진다는 생태적 특징까지 관찰했습니다. 그런데 방어는 한반도 동해나 남해, 그도 아니면 대만 근처에서 잡힌다고 하거든요? 3000년 전이나 2022년 지금이나 방어는 방어가 살던 데서 살지 않겠습니까. 이상하지 않으세요? 요즘처럼 냉동탑차가 있나... 3000년도 더 전에 살아 있는 채로 바닷고기를 주나라 호경까지 가지고 갈 방법도 없었을텐데, 물론, 여수(汝水)라는 물이 회수로 들어가는 지류라고 합니다. 지리적으로는 은나라와 더욱 가깝다는 말이지요. 게다가 방어는 크기가 1M에 이르는 물고기인데다 등푸른 생선 아닌가요? 살이 붉답니다. 소금을 대빵 쳐야 된다는 말이기도 하지요.
공자는 노(魯)나라 출신입니다. 노나라는 산동성에 있는데 공자가 여분(汝墳)이라는 시를 산동성 근처에서 채록했다면 말이 될 듯합니다. 산동성은 바닷가에 있잖아요. 그러나 방어의 생태까지 알 수 있는 정도면 도무지 은나라 말기라는 것도 이해가 안되고 주나라 말기라는 것도 이해가 어렵네요. 은나라 말기라면 그나마 가능성은 있습니다. 곡부와 은나라의 수도 은허는 가깝거든요. 그러니 바닷고기들의 생태를 직접 봐서가 아니라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알려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은 해 봅니다.
안동 간고등어 아세요? 안동이 내륙이라 생선을 잘 먹을 수 없어서 안동까지 소금으로 염장을 해서 가져가야 했답니다. 그래서 안동 간고등어가 생겼지요. 그런데, 곡부나 은허는 중국 동부 해안에서의 거리가 동해바다에서 안동까지의 거리보다 훨씬 더 멉니다. 게다가 태백산맥이 있지요? 남쪽으로 거리를 따져도 아무래도 중국 동부 해안에서의 거리가 훨씬 더 멀다는 말입니다. 역시 중국 동부해안와 곡부 사이에는 태산(泰山)이 놓여 있기도 하지요.
만약이지만 주나라 말이 배경이라면... 글쎄요. 시를 짓는 분들은 사물에 대해서 많은 것을 관찰하고 뭐 그러는 것으로 아는데, 에궁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시어에 방어를 썼는데도 공자는 그걸 또 시경에 포함시켰습니다. 요즘처럼 어업이 현대화 되었으니 방어를 횟감으로 쓰기도 하고 그런다지만 무려 3000여년 전에, 그것도 서주의 수도는 호경 (지금의 시안이나 약간 그 서쪽)지역에까지 방어의 생태가 알려져 있었다? 놀랄 노자네요. ㅡ,.ㅡ
모르겠습니다. 한문학을 한 것도 아니고 시경에 대한 자세한 해설서가 있는 것도 아니고 현재 제가 알고 있는 상식으로서는 이해가 조금 힘드네요. 약간 얼척 없는 것은, 중국 고전을 해설하는 여러 책들을 보면 공자의 생각을 훤히 꿰뚫고 있는 분들이 여럿 계신 듯하다는 것입니다. 가령, 제가 가지고 있는 시경 해설서에는
공자는 이 시가 멸사봉공하여 구세제민의 사업에 열중하는 남편과 부모님께 효성을 다하려는 아내가 각각 직분에 충실한 점을 평가하여 시경에 편입했다.
라고 해설이 되어 있거든요. 진짜로 그랬을까요? 공자의 생각을 어찌 그리 잘 알고 있는지 참 궁금하기도 하고 그렇더라고요. 당장 여분(汝墳)이라는 시를 읽어 봐도 군자(君子)가 남편인지 모르겠지만, 남편이 자기를 버리지 않았다고 안심하고 그러는데 직분에 충실했다? 물론 해설자의 관점에서 이해를 해 본다면, 아직 우리 남편이 멸사봉공의 길에 나서서 아직 죽은 것은 아니구나! 라고 이해할 수는 있겠네요.
하필 고려 시대 어느 때부터 유학이 도입되어 조선왕조 내내 주자 성리학을 외우던 나라였던 까닭인지 권장도서에 사서나 오경이 빠지지 않아서 뭔가 읽어보려 한 적이 있거든요. 그런데 보면 희안하게 해설자들이 공자 맹자 뿐만 아니라 제자백가들의 사상을 완전히 다 알고 있는 것처럼 해설을 해 놓은 경우를 여럿 본 것 같습니다. 위 예에서 보는 것처럼 공자나 맹자는 이런 생각으로 이런 말을 한 것이다 라며 거의 확실하다는 듯이... 참 이해가 어려웠습니다. 지금도 잘 이해가 안되고... 아무에게나 자(子)를 안붙이거든요. 공자 맹자 순자 주자 묵자 노자 장자 등등 자(子)자 붙은 사람들의 생각을 훤히 하는 분들이 하나 둘이 아닌데, 공자든 맹자든 모두 이상사회를 건설하려 하지 않았나요?
어쩌다 예기 경해(經解) 편을 읽어 본 적이 있는데, 책을 펴고 몇 줄 읽어보지도 않았건만
어라, 이건 조작인데? ㅡ,.ㅡ
하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물론 저는 평범한 서민 독자라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고 그런데, 제가 만약 한문학과나 동양학 분야의 학생이었다면 그런 생각을 못했을 것이고, 설령 그런 생각을 했더라도 말도 꺼내지 못했겠지요. 중국이 동북공정 하면서 마구 우기는 거 아시지요? 한문으로 된 고전을 읽다 보면 무려 수 천년 전인데 어찌 이런 생각을 그 시절에 했을까? 싶은 내용들이 있는가 하면, 위 여분(汝墳)이라는 시의 해설 같은 것을 만나면 어이가 없기도 하고 이해가 안되기도 하고 뭐 그런 경우도 있습니다. 한국의 여러 유명 시인들이 자신의 시(詩)를 소재로 만든 문제로 시험 봤는데 전부 0점 맞았다고 하던가? 뭐 그런 이야기도 있지요? 동양고전은 확실히 신비한(?) 뭔가가 있나 봅니다. 하지만 저는 여러 해설자들처럼 그렇게 확신에 빠질만큼 되고 싶지는 않네요.
주나라 호경(지금의 시안 또는 약간 그 서쪽)에서 방어(魴魚)의 생태를 아는 시인이 있었다? 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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