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문에 대해서 뭘 검색하다가 가수 에릭 남의 사례를 들면서 천자문의 마지막 글자가 뭐냐고 묻는 질문에 乎라고 답하여 틀렸다고 합니다. 불과 한 세대 정도 차이가 나는데 천자문에 대해서 전혀 모른다는 것이 의외이기도 하네요. 하지만, 그 보다는 천자문 마지막 구에 적힌 焉哉乎也가 아무런 뜻이 없는 것을 늘어놓았다고 설명하는 것 역시 의외입니다. 실제로 주해 천자문 싸이트에도 그렇게 설명해 놨습니다. 글자를 맞추려다가 남는 것으로 압운을 맞추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실제 언제호야(焉哉乎也)는 뜻이 없는 허사(虛辭)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태어나면서 하늘에 뭐가 있는지 땅에 뭐가 있는지를 알았을까요? 시대를 1000년이나 2000년, 3000년 등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서 생각해 본다면, 그리하여 1만년이나 2만년까지 거슬러 올라갔을 때, 그 때를 살던 사람들이 하늘이 검고 땅이 노랗다는 생각을 했겠느냐는 말입니다. 28수? 차가운 기운이 가고 나니 따뜻한 기운이 온다? 그럴리가 없지 않겠습니까.
얼마 전에 튀르키에에서 큰 지진이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습니다. 지진이 아니라도 해일이나 산사태 등등 자연재해 앞에서, 과학이나 기술이 이렇게나 발달한 현대인들조차도 무력할 뿐입니다. 그럼 시간을 다시 과거로 1만년 2만년 거슬러 올라가면요. 지금보다 더욱 무력했을 것이다. 신기하고 당황스럽고 놀랍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고...
焉哉乎也
네 글자는 하필 의문, 단정, 감탄 등등을 표시하는 허사입니다. 자연을 보고 느꼈던 원시인 그들의 정서를 나타낸 것일 수도 있습니다. 무엇이 무엇인지 알아야 단정할 수 있습니다(也), 무엇이무엇인지 궁금해야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乎), 무엇이 무엇인지 크게 체감한 후에 감탄할 수 있습니다. (哉) 大哉! 易也. 사람이 세월을 살아내며 익숙한 것과 익숙치 않은 것 등을 겪으면서 여전히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도 있습니다(焉). 따라서, 천자문 마지막 구는 아무 뜻이 없는 것이 아니라 아무 것도 알지 못하던 고대인들의 지식과 정사를 나타낸 것일 수 있습니다.
요즘이야 학교 입학하기도 전에 유치원에서 한글 다 떼고 들어간다면서요. 그러고서는 태양계도 배우고 은하계도 배우고 보이저 2호가 태양계를 벗어났다거나 하는 뉴스를 보는 세상이지만, 불과 100년 전만 해도 꿈에서조차 생각할 수 없었던 일들 아닌가요?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과 영상통화를 할 수 있게 되리라고 50년이나 100년 전에 예상한 사람 있나요? 반면, 300년 500년 전에 태양계 라는 개념이 있었습니까? 스마트폰, 컴퓨터, 포크레인, 지게차 등등 그런 것들이 있었습니까? 그 이전으로 돌아가면요. 3000년 5000년... 焉哉乎也에 아무런 뜻도 없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무지를 뜻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천자문에 대해서 검색을 하다 보니까 어떤 글에서는 허사를 나열했으니, 천자문으로 배운 글자를 바탕으로 글짓는 법을 익히라는 뜻은 아니겠는가? 라는 의견을 말씀하신 분이 계시더군요. 저도 그렇게 생각한 것이 불과 몇 년 되지 않습니다. 천자문 한 권으로 글자 1000자만 익히는 것이 아니라 간단한 한문 공부도 가능하겠구나 라는 것을 느낀 것이 그닥 오래되지 않았지요.
천자문의 마지막 글자가 也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럴리가요.... ㅡ,.ㅡ
인간의 기술과 과학, 학문과 지식은 계속 발전해 왔습니다. 하늘을 보는 관점이 지금보다 나중에는 또 바뀔 수 있습니다. 300년 전을 살던 사람이 태양계를 알았겠어요? 지금은 우주에서 보이는 지구를 사진으로 전송하는 시절이라 우주공간에서의 지구 모습을 연상하기도 하는 시절인데, 300년은 고사하고 100년만 과거로 돌아가도 그러지 못했습니다. 여러 수천 년 동안 하늘은 그냥 까맸지요(玄). 하지만, 누가 요즘 하늘을 검기만 하다고 여기겠습니까. 그러므로 천자문의 제일 마지막 글자는 也가 아니라 天자일 수도 있는 것이지요.
아래는 제가 쓴 천자문을 역순으로 외우는 것에 대한 내용인데, 이문구님의 작품 관촌수필에 나오는 내용 때문에 "왜 손자들에게 천자문을 거꾸로 외우게 했을까?"를 고민하다 나름의 단초를 발견하고 "역순으로 배열해도 말이 되겠는데?" 라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야(也)자는 여성의 성기라고 설문에 설명되어 있다고 하는데, 사람은 누구나 어머니로부터 태어난답니다. 사람에게 문자가 생기고 지식이 누적되어 축척되기 전에 여러 수천, 수만 년을 계속해서 사람은 태어났지요. 세계사 교과서에 따르면 오스트랄로피테쿠스로부터 적어도 400만년 동안 계속 태어났답니다.
https://gnomecharm.tistory.com/8389699
이상의 내용은 천자문에 대해서 생각하는 저 나름의 생각을 적은 것이므로 반드시 정확한 설명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2023년인 지금도 사람들은 焉哉乎也 라는 무지와 주관 등의 범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앞으로 수천 년, 수만 년이 흐른다고 해서 焉哉乎也의 범주를 벗어나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요. "내가 벼락거지也" 싶어서 빚내서 집 샀는데, "집산거지焉" 된 사람들 많지 않습니까. 빚을 갚을 수 있을지 고민하면 "집산거지乎" 스스로 집산거지라고 인정하면 "집산거지哉(아 내가 집산거지가 되어구나!). 빚 갚으려고 애를 쓰는데 가계부 왁꾸가 안맞으면 "집산거지焉"...
부동산만 그럴까요? 일본에서 방사능 오염수 바다에 방류한다잖아요? 그 뉴스 보면서
뭐라고? 방사능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한다乎?
또는
역시 일본이 일본하는구나(哉)
역시 일본은 일본이也.
등등으로 단정하고 감탄하기도 하고 우려하기도 하고 의문을 가지고 살지 않겠습니까. 한문법이 언제 생겨났는지 모르지만, 언재호야(焉哉乎也) 글자가 허사라는 문법적인 역할 이전에 인간의 기본정서일 수도 있습니다. 추위가 가니까 따뜻해지더라는 것을 알고 얼마나 감탄했을까요(哉, 감탄). 수백 수천 가지 채소 중에 겨자와 생강이 가장 유익하더라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는 몇 년이나 걸렸을까요(也, 단정, 결정). 그렇게 그렇게 수천 년을 체험하고 느끼고 살아오면서 문자도 만들어지고 옷도 지어 입고 사람의 도리를 말하기도 하면서, 지내왔는데, 살다보니 전쟁도 하고(진초갱패 조위곤횡, 기전파목 용군최정), 사기도 치고(가도멸괵, 정명가도)... 하늘과 땅 사이에 사람이 있는데, 사람이 만든 모든 제도와 학문 등은 焉哉乎也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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