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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 신윤복만 알고 있었는데, 기산 김준근이라는 화가가 있었다

참그놈 2023. 5. 5. 08:27

풍속화 하면 단원 김홍도나 혜원 신윤복을 주로 연상합니다. 교과서든 뭐든 주로 인용되는 그림들이 그 분들 그림이었는데, 풍속화가 중에 기산 김준근 이라는 분이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는데 서양에는 2023년 지금도 수천 점의 작품이 남아있다고 합니다.

 

영상을 보니까 "조선의 부끄러운 부분, 나쁜 부분 등을 그렸다"면서 부정적으로 생각했다는데, 뭣도 모르는 서민이지만, "아니 그런 분이 계셨어?"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리고 영상 보시면, "서양인들이 우월감을 느끼기 위해서 기산 김준근에게 그림을 그려달라고 했다"는 얄랑궂은 설명도 나옵니다. 참 얼척없는 설명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RxyLWurc4UY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를 읽어 보면 백인들이 흑인들의 지능을 연구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백인 우월주의의 입장에서 흑인들은 백인들보다 열등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연구였다고 합니다. 그 부분을 읽으면서 어떤 생각을 했느냐면, "백인들이 바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백인들이 연구한 결과가 어쩌면 흑인들이 더욱 똑똑한 것으로 나왔을 수도 있고요. 선천적으로 지능이 우월하다는 생각을 하다니 어이가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그런 시절이 있었지요. 백인들이 흑인들을 노예로 삼으려 흑인(사람)들을 사냥하러 다니던 시기도 있었으니까요. 그 외에 흑인들을 전시한 경우도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2023년, 현대에 이르러 여전히 흑인들이 사는 지역은 첨단기술이나 기타 과학 기술 등이 열악한 곳 역시 없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흑인들이 선천적으로 지능이 떨어져서 그런 것일까요? 그 문제는 총균쇠 라는 책을 읽고 스스로들 생각해 보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19세기 말은 제국주의 열강의 시대입니다. 식민지 개척과 관리를 위해 열강들의 당국은 애를 썼겠지만, 선교활동도 활발하고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풍부한 사람들이 여행을 하기도 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마 그 시절에는 사람들마다 카메라를 가지고 다닐 만큼 흔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럼 무엇으로 자신들이 보고 느낀 것을 간직할 수 있었을까요? 바로 그림 아니겠습니까. 그런 것을 두고 서양인들이 우월감을 느끼기 위해서 그림을 그려달라고 요청했다는 식으로 이해를 하다니... ㅡ,.ㅡ

 

자신들이 보고 느낀 신세계를 그림이 아니면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었겠습니까. 글(문자)이 있다고 하지만, 글로 옛 조선을 살던 우리 선조들이 입고 먹고 일하고 활동하던 것을 설명하려면, 자신들의 나라에 도무지 없는 복장이나 복식, 풍습 등을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영국 사람이 미국에 가서, 또는 그 반대의 경우라면, 글로 어떤 광경이나 사람을 묘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복장이나 복식, 풍속 등이 비슷했을 것이니까요. 하지만, 옛날 우리나라에는 갓(모자)만 4000여종이 있었다고 합니다. 선비들이 쓰던 큰갓 외에도 부보상(보부상)이 쓴 갓, 형리가 쓰던 갓, 포도대장, 내금위장 등등 신분과 계급, 역할에 따라 엄청 많은 갓이 있었다네요. 그런 모습들을 생소한 나라에서 자신들의 글인 영어(The English Language)로 충분히 묘사하고 설명하는 것이 간단했겠습니까.

 

그림을 모르고 살지만, 그래도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오원 장승업, 겸재 정선 등은 이름이라도 알고 있고 몇몇 작품만 알고 있지만, 기산 김준근 이라는 분이 그린 그림 작품이 수천 점이나 있다니 오히려 대단히 반가웠습니다. 조선의 부끄럽거나 나쁜 것을 그린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그렸다고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살면서 어쩌다 법학과 수업을 몇 번 들은 적이 있습니다. 교양 선택과목이 있어서 그랬는데, 법학과 수업을 들으면서 의아했던 것은 경국대전이나 대전통편, 대전회통 같은 우리 법전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도 들을 수 없었습니다. 물론 교양선택 차원에서 수강한 과목이고 과목 수도 두엇에 불과하지만, 그리고 우리나라에 적용된 근대법이 우리 선조들이 남긴 법전과는 거리가 있다고 하지만, 대륙법이니 영미법, 로마법 하면서 법의 연원을 설명하고 연구하는 것 같더라고요. 이해가 어려웠지요. 경국대전은 법이 아니었을까요? 일본이야 무슨 법이 있었는지 모르겠는데, 우리에게는 우리 고유의 법전이 있었지 않습니까.

 

이덕일 박사의 역사 관련TV를 보면 일본서기의 역사 시작을 기원전 667년인가로 잡는다고 하는데, 그것이 서기 1852년에 결정되었다고 합니다. 일본의 역학자(歷學者)가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여 그렇게 결정이 났다고 하는데, 1852년 당시 일본 내에서 통용되던 달력들조차도 날짜가 달랐다는 이덕일 박사의 설명을 듣고 어이가 없었습니다. 1852년까지 일본에서는 달력조차 만들 만한 능력이 없었다는 것이니까요. 그런 일본에게 근대화는 몹시도 찬란한 어떤 것이었을 수 있습니다. 또 그런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아서인지, 조선에서는 한의학이 외면되고 무시당하는 세태가 2023년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도 알고 있습니다. 서구적 근대화를 수용하지 않았다면면, 일본이라는 나라는 역학(曆學), 의학(醫學), 법학(法學) 할 것 없이 도무지 자체적으로 아는 것이 없었다는 말이 될 수도 있는 것이지요.

 

세상에는 강약과 우열의 질서로만 세상을 바라보는 이들만 사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사람들만 살고 있었다면, 예수께서 말씀하신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는 그 말씀을 무슨 수로 전하겠습니까? 이웃인 저 새끼는 나 보다 열등하고, 반대쪽 이웃인 그 분은 나 보다 높고? 복음 선교가 가능했겠습니까? 적어도 선교사들이 우월의식을 가진 채 선교활동을 하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여행을 다니거나 했던 분들도 역시 그랬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니, 우리나라에서는 존재조차도 모르는 기산 김준근이라는 분의 그 많은 작품들이 남아 있지 않겠습니까. 기산 김준근 이라는 분의 작품이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네요. 

 

 

포스트 마무리 하려다 몇자 추가합니다.

영상 보시면 천로역정이라는 작품의 삽화 42개가 있다는 것과 여러 풍속을 그린 것도 있지만, 형벌을 집행하는 그림들도 있습니다. 그것이 로마법이겠습니까? 아니면 대륙법이나 영미법이겠습니까. 아닐 것이잖아요. 경국대전이나 대전통편, 대전회통에 적힌 조선 자체의 형법에 따라 집행된 것이 분명할 것입니다. 19세기까지도 대명률을 우선했는지 뭐 그에 대해서는 모르긴 하지만요. 얼마나 가치있는 그림입니까. 뭣도 모르고 살지만 그렇게 생각되네요.